유대인 창조경영
편집자주
유대인은 전 세계 인구의 약 0.2%에 불과한 소수민족입니다. 역사적으로도 모진 핍박과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은 천재적인 두뇌와 시대의 흐름을 볼 줄 아는 안목을 바탕으로 전 세계 각 분야에서 최고위층의 지위에 오르는 데 성공했습니다. 비주류에서 주류로, 주변부에서 핵심부로 올라선 유대인들의 지혜를 통해 초경쟁 시대의 생존 전략에 대한 통찰을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1940년대 미국 뉴욕의 빈민가였던 브루클린을 대표하는 프로야구팀은 지금은 LA로 연고지를 옮긴 다저스였다. 박찬호에 이어 류현진 선수가 활약하고 있는 덕에 우리에게도 친숙한 팀이다. 야구는 미국인에게 사랑받는 스포츠 중 하나다. 그런 만큼 다저스 같은 명문팀 선수들의 사인을 받는 것은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큰 자랑거리다. 당시 브루클린에서도 다저스 선수들이 오가는 길목엔 언제나 사인을 받기 위한 어린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런데 이 중 유별난 소년이 하나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사인을 받으려고 열을 올릴 때 이 소년은 “당신은 왜 오늘 번트를 댔느냐”고 물어보는 등 끊임없는 질문을 던져 선수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 소년이 바로 훗날 미국 방송 역사상 가장 인터뷰 잘하는 사람으로 성장한 래리 킹이다.
래리 킹은 2010년 은퇴하기 전까지 CNN의 간판 스타였다. ‘래리 킹 라이브’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은 물론 세계 각국의 대통령이나 화제의 인물들을 불러내 매일 생방송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래리 킹은 언제나 국제 뉴스의 중심에 우뚝 서 있었으며 국제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쳤다. 래리 킹의 인터뷰가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물 흐르듯 매끄럽게 진행하는 그의 군더더기 없는 질문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다. 러시아 출신의 가난한 유대인 이민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신문배달과 우체국 점원 등 허드렛일을 하며 보냈지만 ‘모든 사안에 대해 궁금해 하는 호기심과 이를 해결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끊임없는 질문들’이 그를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지난 칼럼(DBR 126호 ‘시티그룹 회장이 유치원 이사장인 이유는?’ 참고)에서 유대인은 어려서부터 ‘질문을 중시하는 교육’을 한다고 했는데 질문을 잘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미디어 산업을 장악한 유대인
‘호기심과 질문’으로 무장된 유대인 방송인은 래리 킹만이 아니다. 세계 최대의 뉴스케이블인 CNN에서 래리 킹과 함께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은 스타 앵커 울프 블리처와 아론 브라운이 모두 유대인이다. 이들의 대선배로 여성으로서 국제적인 거물들을 늘 독점 인터뷰해 화제를 몰고 다녔던 미국 방송계의 전설 바버라 월터스도 유대인이다.
유명 앵커만 유대인일까. 미국 언론계에서는 섬너 레드스톤 바이어컴 회장, 여배우 제인 폰더의 남편으로도 유명한 테드 터너 CNN 회장,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을 3대 미디어 재벌로 꼽는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이 모두 유대인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혈통뿐 아니라 실제 경영 활동에서도 유대인적인 특성을 잘 드러낸다.
레드스톤 회장의 예를 들어보자. 보스톤의 전통적인 유대인 가정에서 자란 그는 하버드 법대를 나온 변호사였지만 1954년 부친이 하던 극장일을 물려받으면서 미디어 사업에 진출한다. 세상을 개선하겠다는 ‘티쿤 올람(Tikun Olam, DBR 128호 ‘앤디 그로브: 창의성의 원동력은 두려움’ 참고)’ 이란 유대인 특유의 철학이 몸에 밴 그에겐 ‘변호사란 직업으로는 세상을 바꾸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한몫했다. 1980년대 중반 CBS 방송 자회사였던 바이어컴인터내셔널 인수를 시작으로 모회사인 CBS와 음악방송 MTV 등 전 세계 30여 개 언어로 방송되는 160여 개의 TV 채널을 포함해 영화, 출판, 광고, 온라인 등을 망라하는 초대형 복합 미디어 그룹을 일궜다.
레드스톤 회장의 성공 비결은 여러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핵심 요인 중 하나는 격의 없는 대화와 토론을 뜻하는 이른바 ‘후쯔파’ 문화에서 찾는 사람도 많다. 그는 가급적 회의를 적게 했지만 꼭 해야 할 때는 참석자 모두 계급장을 떼고 난상토론을 하게 했다. 그리고 토론 중 도출된 다양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사업에 반영했다. 대화와 토론의 출발점은 ‘질문’이니 크게 보면 래리 킹의 성공비결과 다르지 않다. 이런 후쯔파 방식의 경영스타일은 특히 창의력이 중요시되는 미디어 업계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하는 버팀목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아무리 질문을 잘하고 대화와 토론에 능통하다 해도 유대인들이 미디어 산업 전반을 장악하는 데에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유대인들의 강력하고 끈끈한 협동심이 미디어 산업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을 일궈낸 핵심 중의 핵심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테드 터너 회장도 래리 킹은 물론 울프 블리처와 아론 브라운 등 스타급 유대인 앵커들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면서 CNN을 세계적인 미디어로 키웠다. 폭스TV, 영화사 등 폭스엔터테인먼트와 <월스트리트저널>이 소속된 다우존스그룹은 물론 영국의 <더선> <더타임스> 등을 포함한 세계 최대 미디어그룹 뉴스코레이션을 일군 루퍼트 머독 회장도 계열사에는 주로 유대인 경영진을 앉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미국 언론계에서는 주요 언론인들의 30% 이상은 유대인들이고 이들이 서로 노골적으로 ‘밀어주고 끌어주고’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왜 협동을 중시 여기며 이들의 단결력은 어느 정도일까. 많이 알려진 얘기지만 이스라엘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전 세계 유대인들은 직접 이스라엘로 달려가거나 돈을 보낸다고 한다. 그들의 단결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수천 년 동안 나라 없이 떠돌며 고난과 핍박을 당해온 유대인들은 처절한 경험을 통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생각을 깨우쳐왔다.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학살할 때 어떤 종파의 유대인인지를 가리지 않았고 이스라엘이 유대인을 받아들일 때 어떤 종파의 유대인인지를 가리지 않았다는 역사만 봐도 이들이 느끼는 ‘공동 운명체’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해준다.
유대인 성전 격인 <탈무드>에 “모든 유대인들은 서로를 책임진다(All Jews are responsible for one another)”고 나와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종이 다르고 언어가 차이 날지라도 지구 반대편에 있는 유대인을 돕기 위해 돈을 모으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이유다. 유대인 부모들도 자녀들을 가르칠 때 “화살 하나는 부러뜨리기 쉽지만 화살을 여러 개 묶으면 부러뜨리기 어렵다”는 점을 무척 강조한다. 중국 고사에도 나오는 절전지훈(折箭之訓)의 교훈을 제대로 실천하는 민족인 셈이다.
유대인 없이 돌아가지 않는 할리우드
유대인들의 협동정신이 어떤 성과를 나타내는지는 세계 미디어산업의 중심지인 할리우드에서 잘 보여준다. 결론부터 말하면 할리우드는 유대인들에 의해 만들어져 유대인에 의해 꽃을 피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세기 초 할리우드에는 7대 메이저 영화사가 활약했는데 디즈니를 제외한 유니버설, 파라마운트, 20세기폭스, MGM, 콜럼비아, 워너브러더스 등 6개 영화사의 창업주가 모두 유대인이다. 디즈니도 창업자는 아니지만 마이클 아이즈너 같은 유대인 경영자가 황제처럼 군림하면서 키워왔다. 드림웍스나 AOL타임워너 등 요즘 각광받는 미디어 회사들도 모두 주인들이 유대인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연예인이나 예술가들은 대체로 개성이 강한 성격들이어서 협동심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곤 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아무리 연예인이라도 자기들끼리는 끈끈한 협동심으로 뭉친다. 시나리오 작가에서부터 배우 캐스팅, 자본 투자까지 다양한 분야가 어우러져야 하는 ‘종합예술’인 영화산업에서 협동심 강한 유대인들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다. 실제 할리우드에선 제작자, 감독, 배우, 시나리오 작가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유대인이 절반이 넘는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정확한 수치를 확인하기는 힘들지만 할리우드는 유대인 없이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란 말은 분명하다. 캐린 존슨이란 흑인 여배우가 할리우드를 장악하고 있는 유대인들과 친해지기 위해 우피 골드버그라는 유대인식 이름으로 개명한 뒤 큰 인기를 얻었을 정도다.
할리우드 유대인 인맥의 중심에는 단연 스티븐 스필버그가 있다. ‘죠스’ ‘ET’ ‘쥬라기공원’ ‘인디아나 존스’ ‘쉰들러 리스트’ 등을 제작한 ‘흥행의 마술사’로 미국의 영화계에서 현재 최고의 영화감독이자 제작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스필버그는 1947년 미국 신시내티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주 사라토가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왔다. 어린 시절엔 크리스마스 때 동네에서 유일하게 트리장식을 하지 않는 집이라는 이유로 친구들로부터 모진 ‘왕따’를 당했다. 아이들이 그를 놀리면서 1센트짜리 페니 동전을 던지곤 했는데 하도 많이 던져 친구들 사이에서 ‘페니=유대인에게 던지는 물건’이란 뜻까지 생겼을 정도였다고 한다. 놀아주는 친구가 없던 그는 아버지한테 8㎜ 소형 카메라를 사달라고 졸랐다. 오늘날 할리우드 최고의 흥행사는 그런 아픈 경험 속에서 탄생했다.
스필버그는 1994년 월트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제작자 제프리 카젠버그와 음반업계 재벌인 데이비드 게펜 등 두 명의 유대인 친구들과 함께 드림웍스를 설립해서 할리우드 영화 제작과 배급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스필버그는 영화의 주요 배역에 유대인 배우들을 자주 캐스팅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단역배우였던 해리슨 포드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로 일약 스타로 떠오른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해리슨 포드 외에도 할리우드에서 유대인 배우들의 활약은 대단하다. 우디 앨런, 폴 뉴먼, 로버트 드니로, 커크 더글러스, 더스틴 호프먼 등이 대표적 인물들이다. 여자 배우로는 ‘블랙스완’으로 2011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탄 나탈리 포트만이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유대인이고 ‘사관과 신사’에서 열연한 데보라 윙어는 젊어서 이스라엘 키부츠에서 일한 뒤 이스라엘 여군에 입대하기도 했을 정도다. 정치색이 짙어 할리우드의 민주당 대변인이란 소리까지 듣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도 설명이 필요 없는 배우다.
언론계에서의 유대인 영향력
신문, 잡지, 통신 등 전통적인 언론매체 역시 유대인 색채가 뚜렷하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3대 신문으로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저널>이 꼽힌다. 경제신문인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뿐 아니라 지구촌의 돈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경제교과서’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 발행되는 <워싱턴포스트>는 세계를 움직이는 백악관 동향에 가장 정통한 ‘세계 정치계의 나침반’ 구실을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신문은 역시 <뉴욕타임스>다. ‘인쇄할 수 있는 모든 뉴스를 전한다’는 사시를 가지고 있는 이 신문은 그야말로 무슨 책을 읽어야 하고, 어떤 영화를 보고, 어떤 와인을 마셔야 하는지, 세상 뉴스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등 미국인들의 사고와 생활의 기준을 만들어 준다고 해서 미국 사회의 비공식적 가이드라인으로 불릴 정도다. 미국 언론인들은 “미국에는 1500여 개의 신문이 있지만 이들 3개 신문에서 뉴스를 만들어내고 다른 신문은 대부분 이를 카피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처럼 미국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 3대 신문 모두 유대인 손에서 성장했다. <뉴욕타임스>는 1851년 유대인이 아닌 헨리 레이먼과 조시 존스가 설립했지만 1896년 유대인 슐츠버거 가문이 인수한 이후 지금까지 경영을 해오고 있다. 슐츠버거 가문은 <뉴욕타임스>를 모회사로 보스턴글로벌 등 33개 신문과 12개 잡지, 7개 라디오 방송국, 3개 출판사 등을 소유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도 <뉴욕타임스>처럼 유대인이 세운 회사는 아니다. 1877년 스틸슨 허친스라는 사람이 설립했으나 1905년 유대인 존 매클린이 매입했다. 그러나 1933년 대공황이 절정일 때 도산했고 파산경매를 통해 유대인 금융업자였던 유진 마이어가 인수했다. 얼마 전 작고한 캐서린 마이어 그레이엄 회장은 유진 마이어의 딸이었고 지금은 그레이엄 여사의 아들 도널드 그레이엄이 경영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도 <뉴스위크> <가제트뉴스페이퍼> 등 전국적으로 많은 언론매체를 거느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지주회사인 다우존스&컴퍼니는 24개의 신문과 경제주간지 <배론> <다우존스통신> 등을 소유하고 있으며 최근 <뉴스코퍼레이션>의 루퍼트 머독 품으로 들어갔다.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저널> 등 이들 ‘3대 신문’ 외에도 주요 언론사들이 대부분 유대인들의 손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세계 4대 통신사 중 UPI, AP, AFP가 모두 유대인 소유다. 로이터통신도 설립자는 아직도 그 이름이 사용되고 있는 파울 로이터란 유대인이다. 잡지 시장도 마찬가지다. 3대 잡지로 구분되는 <타임> <뉴스위크> <US뉴스&월스리포트> 중 <뉴스위크>가 유대계 회사인 <워싱턴포스트>의 자회사이고 400만 부 이상 팔리는 최대 잡지인 <타임>은 유대인 영향력이 강한 타임워너 소속이다. <US뉴스&월드리포트> 역시 유대인인 모르티머 쥬커먼이 소유하고 있는 미국 6대 신문인 <뉴욕 데일리뉴스>의 자매지다.
유대인의 언론계 영향력에 대한 상징성은 미국 언론인들이 가장 영광으로 생각하는 ‘퓰리처상’에서도 잘 나타난다. 여기서 퓰리처는 바로 헝가리 출신 유대인인 조셉 퓰리처의 이름을 딴 것이다. 1864년 17세의 나이에 헝가리에서 보스턴으로 이민 온 유대인 퓰리처는 변호사와 하원의원까지 지냈으나 이에 염증을 느끼고 1878년 세인트루이스에서 <포스트 디스패치>를 인수해 수익성 높은 신문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10년 뒤 <뉴욕 월드>를 인수하면서 미국 언론의 중심인 뉴욕으로 진출해 시사만화, 컬러사진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도로 성가를 날리기 시작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에서 성공한 월리엄 허스트가 뉴욕으로 진출, 퓰리처에게 도전장을 내밀면서 미국 언론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치열한 발행부수 전쟁이 벌어진다. 이때 퓰리처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옐로키드라는 만화를 도입, 도시 전체를 노란 홍보물로 도배를 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도를 넘는 과도한 선정적인 경쟁을 뜻하는 ‘옐로 저널리즘’이란 용어는 바로 당시 ‘옐로키드’라는 만화에서 이름 붙여졌다.
퓰리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업에 성공해 큰돈을 벌었지만 자선을 중시하는 유대인 전통에 따라 많은 돈을 자선사업에 썼다. 특히 1903년 언론인 교육에 써달라면서 뉴욕의 컬럼비아대에 상당한 금액을 기증, 사상 처음으로 정규 대학에 ‘신문방송(저널리즘)학과’가 신설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1911년 세상을 떠난 뒤엔 그의 유지에 따라 문화 언론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인 퓰리처상이 제정돼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퓰리처상은 유대인 언론인들이 많이 수상하기도 했는데 ‘세계화의 전도서’로 알려져 있는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를 지은 토머스 프리드먼은 한 번 타기도 어렵다는 이 상을 세 번(1983, 1988, 2002년)이나 받은 유대인이기도 하다.
미디어 산업의 예를 주로 살펴봤지만 공동운명의식을 갖고 있는 유대인의 협동은 모든 분야에서 놀라울 정도로 잘 이뤄진다. 특히 큰 이권이 걸려 있는 금융 등 경제 분야에서의 단결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능력 있는 개인들이 서로 협동하고 단결하면 그 소속 집단의 힘이 폭발적으로 커진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중요한 사례라고 볼 수도 있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고 해도 유대인들의 협동이 기본적으로 ‘유대인 끼리만의 협동’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다른 민족이나 이웃들이 유대인들에게 배타적이거나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수천 년에 걸친 고난의 세월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막강한 힘을 가진 만큼 유대인들에게 이웃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육동인 커리어케어 대표 [email protected]
필자는 서울대 서양사학과와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공부했다. 한국경제신문에서 뉴욕특파원을 거쳐 논설위원, 금융부장, 사회부장을 역임했다. 국회사무처 공보관 및 홍보기획관직도 맡았다. 현재 한국컨설팅산업협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유대인처럼 성공하라(2004)> <육동인, 소통 정치를 말하다(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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