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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개발자 시대의 자화상

김현진 | 342호 (2022년 04월 Issue 1)

“팀워크의 중요성을 잊지 말라. 그리고 ‘지식의 저주’와 싸우라.”

미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사 BTI360 등에서 근무한 유명 개발자 조엘 골드버그가 45년 경력을 마무리하면서 후배들에게 남긴 조언이 올 초 미 언론을 통해 보도됐습니다. 그는 변화무쌍한 IT 업계에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기본 덕목 여섯 가지를 다음과 같이 꼽았습니다. ‘호흡’ ‘믿음’ ‘커뮤니케이션’ ‘합의’ ‘테스트 자동화’ ‘간결하고 알기 쉬운 코드와 디자인’.

베테랑 개발자의 수십 년 노하우를 꾹꾹 담은 조언이 대체로 팀워크와 협력이란 키워드로 수렴된다는 사실에 제일 먼저 눈길이 갑니다. 개발 업무는 ‘개인기’라고 생각했던 통념과 달리 팀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 개선점을 찾고 역량을 한데 모으는 협력의 자세를 강조한 겁니다. 30여 년간 한국과 실리콘밸리의 유수 기업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개발자로 살아남기』의 박종천 저자 역시 훌륭한 개발자는 절대 엔지니어링 역량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며 ‘소프트 스킬’을 강조합니다. 그가 기본으로 꼽은 5가지 덕목은 ‘소통’ ‘협업’ ‘긍정적 자세’ ‘프로 의식’ ‘리더십’입니다. 그 역시 개방적인 소통 자세를 개발자의 미덕으로 꼽았습니다.

‘개발자 모시기 전쟁’ ‘개발자 몸값 천정부지’ 등의 헤드라인이 각종 언론을 장식하는 등 개발자와 개발 문화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로 달아오른 현재 모습은 모든 기업이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 가속화가 빚은 시대적 자화상입니다. 좋은 개발자를 뽑고, 이들로 하여금 요즘 소비자와 시장이 원하는 결과물을 내게 하는 것이 절박한 과제가 됐지만 정작 개발 인재 발탁과 성과가 사상누각이 되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바람직한 개발 문화 조성에 대한 고민은 한 발 뒤에 있는 듯합니다. 좋은 개발 문화는 잘 팔리는 결과물, 우수 개발자 채용 및 유지라는 선순환 구조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입니다.

실제로 DT 혁신에 실패하는 많은 기업을 살펴보면 개발 문화가 제대로 조성되지 않았거나 이를 이끌어줄 개발 리더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일 경우가 많다고 업계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특히 태생 자체가 소프트웨어 개발과는 거리가 먼 전통 기업에서 개발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DT를 추진하다 암초를 만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컨대 소프트웨어 개발 리더십은 일반적인 비즈니스 리더십과 매우 다르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합니다. 복잡한 기술과 프로세스를 관리해야 하기에 개발 리더가 모든 공정을 해박하게 익히고 조정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본인이 잘하는 일에만 집중하면서 동료들과 권한을 나누고 협업하는 ‘분산 리더십’이 그 어느 분야보다 더 요구됩니다. 시스템의 난도가 고도화되고, 사용자 규모가 어마어마하며, 글로벌 서비스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최근의 개발 동향을 살펴보면 개발자 개인 또는 한 명의 리더가 고군분투하며 각개전투에 승부를 걸기엔 더욱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심지어 좋은 개발자 채용의 핵심은 ‘우수한 인재를 뽑는 것’이 아닌 ‘회사와 맞지 않는 사람을 걸러내는 것’에 있다고 할 정도로 개발 시장의 인재상은 협업에 방점을 두게 됐습니다.

한편 앞서 골드버그가 지적한 ‘지식의 저주’란 ‘지식이 너무 많은 탓에 남들의 눈높이에 맞춰 전달하기 어려운 상태’를 말합니다. 개발자들 사이에서 ‘지식의 저주’는 지나치게 복잡한 코드를 만들고 결국 소비자 눈높이에 맞지 않는 상품을 내놓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또한 ‘기존 시대의 지식에 매몰돼 있으면 그 이후를 상상하기 어렵다’는 맥락으로도 해석됩니다. 카카오톡의 성공 비결에 대해 “웹 시절의 성공 기억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는 김범수 카카오 창업주의 증언도 결국 ‘지식의 저주’를 경계하라는 경고입니다.

개발 문화의 핵심을 짚다 보면 애자일, 분산 리더십, 관성 타파 등 최근 경영 일반 분야에서 선진적으로 평가받는 키워드들을 접하게 됩니다. 바른 개발 문화 조성이 어떤 업종에서도 ‘남의 집 얘기’가 아닌 ‘우리 기업의 미래’로 활용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디지털 혁신의 시대, 선진 기업 문화 조성의 내비게이터가 될 개발 문화에 눈과 귀를 여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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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편집장•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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