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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tegic Communication

단점 먼저 인정하고, 상대를 내틀에 가둬라

최철규,김한솔 | 107호 (2012년 6월 Issue 2)


 

편집자주

개인과 기업, 국가를 막론하고 협상 능력에 따라 경쟁력이 달라지는 시대입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 사회에서 협상의 중요성은 더욱 커져가고 있습니다. 경쟁의 강도가 치열해 질수록 사회는불통(不通)’분열(分裂)’로 치달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소통(疏通)’에 대한 명확한 철학과 과학적 방법론이 절실한 때입니다. 기업 대상 맞춤형 전략 커뮤니케이션 전문 교육기관인 HGS 휴먼솔루션그룹이 협상 전략과 기술, 갈등관리 등 소통의 과학에 대해 소개합니다.

 

때는 1912, 미국 대선 현장.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 후보 선거 사무실이 발칵 뒤집혔다. 300만 부나 제작한 홍보 팸플릿의 사진 아래에 ‘Copyright by 000’라는 문구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손바닥 만한 작은 사진으로 봤을 땐 글자가 보이지 않았는데 사진을 확대하니 저작권자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개인 사진사가 찍은 사진을 참모진의 실수로 무단 사용한 셈. 만약 이 사진을 그대로 사용하려면 저작권법에 따라 최소 300만 달러 이상의 저작권료를 사진사에게 지불해야 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사진사에게 알리지 않고 이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한다면 자칫 저작권 도용에 따른 도덕성 시비가 터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다시 사진을 찍고 팸플릿을 제작하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여기서 질문. 만약 당신이 선거 운동 본부장이라면 사진사와 어떻게 협상할 것인가? 진심을 담아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게 최선일까? 만약 상대가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방식이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이번 기회에 한몫 챙겨야겠다고 독한 마음을 먹었다면? 300만 달러가 아니라 훨씬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어떻게 됐을까? 선거 운동 본부장은 사진사에게 단 1달러도 지불하지 않았다. 대신 후원금으로 250달러를 챙겼다. 덤으로 사진사에게미안하다는 사과까지 받아 내면서 말이다. 어떤마술을 부렸길래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방법은 이랬다. 선거 운동 본부장은 사진사에게 연락해 대뜸축하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는루스벨트 대통령 후보의 선거 팸플릿 300만 부에 당신의 이름이 박힌 사진이 실렸습니다. 이제 당신은 유명 사진사가 될 겁니다. 우리가 이런 호의를 베풀었으니 당신도 선거 기금으로 1000달러 정도를 후원하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했다. 이를 통해 선거 운동 본부장은 사진사의 생각을사진 저작권료가 아닌개인 홍보라는 틀로 바꿔 버렸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1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은 버넌 스미스(Vernon Lomax Smith)와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이 공동 수상했다.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카너먼 교수는 경제학자가 아닌 심리학자였기 때문이다. 심리학자인 그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이유가 뭘까? 바로프레임(Frame)’ 때문이다. 카너먼 교수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사람은 항상 합리적으로 판단한다고 가정하던 기존 경제학의 통념을 뒤집었다. 그리고 사람이 어떤 선택의 프레임, 속에 놓이느냐에 따라 똑같은 조건에 대해 전혀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바로 이것이행동 경제학이다.

 

협상에서도 마찬가지다. 협상 상대가 가진 생각의을 나에게 유리하게 만들면 협상은 너무도 쉬워진다. 그래서 협상 3.0의 고수들은 고민한다. 협상의을 만드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나에게 유리한 협상 틀을 만들기 위한 3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1.Anchoring을 걸어라

많은 사람들이 협상을 앞두고 고민한다. “첫 제안을 할 땐 상대가 받아들일 만한 적당한 조건을 불러 빨리 타결시키는 게 좋을까, 아니면 세게 불러야 하나?” 적당한 조건을 요구하자니 상대가 나를 얕보고 손해를 보진 않을까 걱정된다. 그렇다고 세게 부르자니 상대가 내 제안을 거절해 협상이 깨질까 두렵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답은 뭘까? 프로 협상가들은무조건세게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협상학에선 이를 ‘Aim high’라고 한다. 목표를 높게 잡고 강한 첫 제안을 해야 한다는 것. 그 이유는 강한 첫 제안을 통해 협상의 범위를 결정짓는준거점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

 

미시간대에서 있었던 협상 실험이 앵커링 효과를 아주 잘 보여준다. 학생 40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같은 물건을 판매하라는 미션을 줬다. 모든 조건은 동일했다. 단 하나 다른 것은첫 제안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 A 그룹에게는첫 제안을 700달러 이상으로 하라고 했고 B 그룹에겐 “700달러 이하로 첫 제안을 하라고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A 그룹 학생들은 평균 625달러로 물건을 팔았다. 반면 B 그룹 학생들의 평균 판매 가격은 425달러였다. 첫 제안이 달랐을 뿐인데 200달러 정도의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제일 처음 제시된 숫자, 즉 앵커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처음 제시된 숫자가 700 이상인지 그 이하인지가 큰 영향을 미쳤다.

 

행동경제학에서 이를 증명한 재미난 실험 결과가 있다. 1부터 8까지의 숫자를 곱한 값이 얼마 정도 될 것 같은지를 묻는다. 다만 A 그룹에는 ‘1×2×3×4×5×6×7×8 의 값, B 그룹에겐 ‘8×7×6×5×4×3×2×1’의 값을 물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숫자 ‘1’로 시작된 문제를 받은 A 그룹 답변의 평균치는 512였다. 반면 ‘8’로 시작된 문제를 받는 B 그룹의 평균치는 2250으로 A그룹보다 무려 4배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첫 숫자가 무엇인가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협상에서의 첫 제안은 이번 협상에서 오고 갈 조건의을 만든다. 나에게 유리한 준거점을 만들어 앵커링 효과를 얻는 것, 그것이 ‘Aim high’가 필요한 이유다.

 

물론 무조건 세게 부른다고 되는 건 아니다. 조건이 있다. ‘사연을 이야기할 수 있는제안이어야 한다. 사연이란근거. 내가 왜 그만큼 얻어야 하는지에 대한합당한 논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납품 단가를 정하는 협상 상황을 생각해 보자. 지금까지 납품한 가격보다 10% 이상 가격을 올려 납품하라는 지시를 받은 당신. 상대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납품하던 가격에서 10%는 인상을 해주셔야 해요. 저희 회사 방침이니까요.” 어떤가? 당신이 구매 업체의 담당자라면 ‘10% 인상이라는 말이 정당하다고 느껴질까? 구매 업체 담당자는안 됩니다. 그건 저희 회사 방침이 아니니까요라고 반박하지 않을까?

 

합당한 논거는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다른 구매 업체들은 물가 상승률과 원자재 가격의 인상폭을 감안해 10% 이상 납품 단가를 올렸다며 다른 업체와 비교를 한다거나제품의 품질을 높여 불량률을 1% 이하로 낮췄기 때문에 단가 인상 요인이 된다는 식으로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논거를 제시해야 한다. 나의 제안 뒤에 이어질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 뒤에 들어갈 마땅한 말이 없다면(‘지금까지 너무 싸게 납품해 왔으니까요따위의 이유 말고) 당신의 제안은 욕심일 뿐이다. 특히 거래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관계라면 사연의 힘은 더더욱 중요하다. 장기적 관계가 중요한 상대에게무조건세게만 부르면 나에 대한 상대의 신뢰가 깨질 수도 있다.

 

여기서 이어지는 두 번째 질문.

 

“그럼, 내가 무조건 첫 제안을 하는 게 좋겠군요?”

 

해외여행 중 골동품 시장에 들렀다고 생각해 보자. 멋진 카펫을 발견한 당신. ‘강한 첫 제안을 한다고 “10달러를 불렀다. 그러자 가게 주인이 흔쾌히 “OK”를 외친다. 이 순간 당신은 어떤 기분이 들까? ‘좀 더 낮은 가격을 불렀어야 하나하는 후회가 밀려든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답은정보에 있다. 정보가 없는 섣부른 첫 제안은이기고도 진승자의 저주를 만든다. 정보가 충분치 않다면 상대의 제안을 기다려라. 상대의 제안을 듣고 협상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 먼저다.

 

항구에 정박한 배는 항상을 내린다. 그래야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불어도 배가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 협상에서도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상대 생각의 폭을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조정할 수 있다. 정보를 가진 ‘Aim high’를 통한 앵커링(Anchoring)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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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철규

    - 현 HSG 휴먼솔루션그룹 대표
    - 한국경제신문사 경제부, 금융부 기자
    - IGM 협상스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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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한솔[email protected]

    HSG 조직갈등 연구소 소장

    비즈니스 교육 전문 기관 HSG 휴먼솔루션그룹에서 강의와 컨설팅 등을 통해 많은 기업의 소통 전략 수립을 돕고 있다. 리더의 자기 인식을 위한 진단 프로그램 '성과 백신'을 개발,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 「이기적 리더」 「1% 디테일: 성공적인 조직 커뮤니케이션의 비결」 「설득하지 말고 납득하게 하라」(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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