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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엽편 소설: 우리가 만날 세계

혐오 실험에 참가하시겠습니까?

이경 | 356호 (2022년 11월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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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오늘 면접 끝났습니다. 이번에도 인원이 금방 찼네요.”

보고를 끝내면서 영우는 눈을 비볐다. 하루 종일 면접하느라 지친 모양이었다.

“강 선생, 고생이 많아요.”

자리에서 일어선 백발의 교수는 영우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고생한 이를 위해 커피 한 잔을 손수 내려줄 참이었다.

고소한 커피 향기가 좁다란 연구실을 채우는 동안 영우는 손에 든 두툼한 파일을 다시 들여다봤다. 오늘 심층 면접을 진행한 사람들과의 면담 일지다.

“마지막 면접자가 우리 과 학생이었던 것 같은데, 맞나요?”

“네. 신입생이요.”

“어땠어요?”

“음….”

영우는 마침 교수가 건네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말을 골랐다.

“100만 원은 큰돈이니까요. 고민하더라고요.”

영우의 대답에 맞은편 소파에 앉은 노 교수가 빙그레 웃었다.

“강 선생, 이견이 없으면 그 학생은 예비 리스트에 올리는 걸로 하죠. 스무 살 대학 신입생은 지난 4차 실험까지 많이 참여해줬으니까.”

“아, 말씀이 나왔으니 말인데요.”

4차 실험이라는 말에 뭔가 떠오른 듯 자리에서 일어난 영우가 교수의 책상에 놓여 있던 다른 파일을 가지고 왔다.

“79번 피실험자, 불과 이틀 사이에 유의미하게 혐오 발언이 증가했어요. 페미니즘 이론 교양 강의, 여학생 전용 휴게실, 학내 수유실, 생리 공결 같은 토픽만 찾아보면서 적극적으로 댓글을 달고 분노를 표시하고 있어요. 아직은 에타 같은 온라인 익명 게시판상에서의 활동에 국한돼 있지만요.”

영우의 말을 들은 노 교수의 얼굴이 잠시 굳었다. 혐오 행위의 증가는 지난 실험들을 통해 충분히 예상된 바이지만 이틀이라는 시간은 상당히 짧은 편이었다. 이건 그들이 이 실험에서 마주쳐 온 많은 경고 신호 중 하나였다.

“모니터링 강화해야겠네요. 1차 실험 때, 5번 피실험자 기억나죠? 실험 개시하고 일주일 만에 캠퍼스를 걸어가다 스친 것뿐인 외국인 학생한테 실제로 욕설을 했잖아요. 혼잣말이긴 했지만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우리가 즉각 개입하고 실험을 중단했었죠.”

“3차 실험 때는 대상자의 절반 이상이나 적극적인 혐오 표현을 증가시켰죠. 저희가 설정한 기준 이상으로 넘어가 버린 사람들도 3차 때 제일 많았고요.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걸 보니 착잡하다고 할까요, 가설이 증명된 게 썩 반갑지만은 않아요.”

“그렇지요….”

마음이 무거워진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창밖의 캠퍼스를 바라보았다. 기회가 주어지면 언제든 혐오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 이 작은 캠퍼스에만도 이렇게나 많다니. 가설을 세웠지만 그 결과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바로 그 세계에서 직접 확인한 뒷맛은 썼다.



교수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영우는 방금 마친 마지막 면접을 떠올렸다. 학과 사무실 근처에서 몇 번 얼굴을 보았던 기억이 있는 심리학과 신입생이었다. 학생은 긴장을 감추려는 듯 면접실에 영우가 들어서자 “안녕하세요, 조교님. 저 2X학번 OOO입니다!” 하고 일부러 더 발랄하게 인사했다.

영우는 다른 면접에서와 마찬가지로 학생에게 실험의 상세와 진행 방식을 설명해주었다.

“이 실험은 뇌의 특정 부위에서 일어나는 특수한 활동을 선택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신약의 임상 실험이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용량의 약을 먹고 일상생활을 그대로 하면 되는데 대신 10일의 밀접 관찰 기간 동안 모니터링 대상이 된다고 생각하면 돼. 먼저 뇌파와 혈압, 맥박, 체온, 발한, 발열 같은 바이오 시그널을 수집하기 위해 패치가 두 개 지급될 거야. 두 귀밑에 붙이고 있으면 돼.”

“씻을 때도요?”

“응, 생활 방수 되니까 샤워할 때는 물론 수영 같은 운동을 할 때도 뗄 필요 없어. 이건 열흘 동안 떼면 안 돼. 만일 중간에 떼 버리면 데이터의 신뢰도가 낮아지거든.”

이해한 학생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영우는 중요한 대목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신약의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 사적인 대화를 포함한 오프라인상의 사회적 상호작용 활동, 그리고 인터넷 검색이나 댓글 작성, 채팅 같은 온라인상의 사회적 상호작용 활동 역시 열흘간 수집될 거야. 이것도 아까 말한 패치로 전부 수집 가능하니까 별도 기기는 없어.”

쉽게 말하면 100만 원의 대가로 열흘간의 말과 행동을 몽땅 기록 당한다는 말이다. 이를 이해하는 순간 모든 면접자의 얼굴은 굳기 마련이다. 그 순간 저울에 올라갈 것이 무엇인지 저마다 바쁘게 되새겨보기 때문이다.

“물론 데이터는 익명으로 수집돼요. 절대 익명이 보장될 거고, 연구 윤리 서약에 따라 실험 외의 목적으로 수집 정보를 이용할 일도 없어. 만일 학생이 생각하기에 뭔가 부당하거나 비윤리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면 언제든 여기 적힌 대학 연구윤리위원회에 제보하면 돼. 자, 지금까지 말한 내용 중에 궁금한 게 있으면 질문해줘.”

“저… 생체 신호를 수집하는 건 이해되는데요, 제 일상 활동 데이터는 왜 필요한 거예요? 이 모든 게 ‘혐오’와 어떻게 관련되는 거죠?”

실험의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이 학생은 대학원에 올 생각이 없을까? 잠시 실없는 생각을 떨친 영우는 찬찬히 대답했다.

“아까 이 신약이 뇌의 특정 부위에서 일어나는 특수한 활동을 선택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잖아. 그 활동은 바로 상상력이야. 이 약을 복용하는 동안 우리 뇌가 상상하는 능력을 일정 수준 이하로 억제할 수 있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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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email protected]

    소설가

    필자는 서울대 국문과에서 현대소설을 공부하고 신소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소설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로 2022 문윤성SF문학상 중단편가작을 수상했다. 소설집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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