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은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변화를 탐구하고 예측하는 학문이다. 실제로 주역의 본질적 의미는 해[日]와 달[月]을 상징하는 한자가 합쳐져 변화를 뜻하는 한자인 ‘바뀔 역(易)’에 담겨 있다. 서양에서 주역을 ‘변화의 책(Book of Change)’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일상에 묻혀 살다 보면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이런 변화를 놓치기 십상이다. 기업을 경영하는 최고경영자(CEO)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그날그날의 매출 실적이나 자금 사정에 매몰되다 보면 변화에 대한 대처는 뒷전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뒤늦게 변화를 인지하고 분주하게 움직여보지만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곤 한다. 기업과 국가 등 거대 조직의 흥망성쇠에는 예외 없이 이러한 법칙이 적용된다. 외부 환경의 변화에 둔감한 조직은 도태되고 변화를 기민하게 포착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조직은 흥한다.
시간을 생산하는 주체는 해와 달로 대표되는 자연이다. 주역은 바로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변화를 탐구하고 예측하는 학문이다. 이는 주역의 역(易) 자가 해를 상징하는 날 일(日) 자와 달을 상징하는 달 월(月) 자를 합친 것이라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복희씨는 해가 뜨면서 하루의 시간이 시작되고 달이 뜨면서 하루의 시간이 마감되는 것으로 인식했고, 그러한 시간표를 국가 경영에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주역을 고안했다.
변화의 책, 주역
시간의 가장 중요한 속성은 변화다. 일출과 월출이 교차되면서 생성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주역이라는 학문 체계가 완성된 시기를 나타내는 주나라 주(周) 자는 단순한 지시대명사에 지나지 않으며 변화를 뜻하는 바뀔 역(易) 자가 주역의 본질적 의미를 구현한다. 조선시대의 군왕들과 선비들은 주역을 그냥 ‘역’이라 불렀으며 서양에서 주역을 ‘변화의 책(Book of Change)’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주역 점을 치는 것은 지나간 시간인 과거를 돌아보면서 다가오는 시간인 미래를 예측하는 행위다. 여기서 방점이 찍히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좋은 대학에 입학할 것인지, 좋은 배우자를 만날 것인지, 새로 시작한 사업이 성공할 것인지 등 미래를 내다보기 위해 치는 것이 주역 점이다.
점괘를 구성하는 효(爻) 가운데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는 효를 변효(變爻)라 하는데 주역에서는 이 변효를 중심으로 미래를 예측한다. 효(爻)라는 글자는 모양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주역 점을 칠 때 사용하던 산(算)가지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효는 긴 막대기 하나(-)로 된 것을 양효라 부르고, 작은 막대기 두 개(--)로 된 것을 음효라 부른다. 이것은 주역의 기본 원리가 되는 동양의 음양 이론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것인데 음양 이론에서는 팽창하려는 기운이나 에너지를 양이라 정의하고, 이를 억제하려는 반대편의 속성을 음이라 정의한다.
만물은 예외 없이 두 가지 속성을 가진다. 대소, 장단, 고저, 냉온, 남녀, 홀짝, 전후, 좌우 등에서 보듯이 하나의 속성이 있으면 그 반대편의 속성도 반드시 존재한다. 이런 단순한 원리를 기반으로 우주 만물의 생성 변화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주역이다. 양효(-)와 음효(--)는 0과 1로 구성되는 이진법과 수학적 원리가 같다. 실제로 라이프니츠는 중국에 파견된 선교사가 보내준 주역 효의 문양을 본 후 이진법 체계를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컴퓨터 알고리즘의 기초인 이진법 체계는 그 원조가 주역인 셈이며, 현대 지식정보화 사회의 DNA 속에는 5000년 전 동양의 지혜가 녹아 있다.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실리콘밸리로 간 노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