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인 대규모 정전사태에 온 나라가 깜짝 놀랐다. 부정확한 정보와 데이터를 믿고 잘못 판단한 결과가 예고 없는 정전으로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느닷없는 정전에 엘리베이터에 갇히거나 산업 시설이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다. 여기저기서 피해를 하소연하는 목소리도 줄을 잇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엔 발로 확인하고 뛰는 현장주의 문화가 없어지고 그저 귀로 듣고 잘못된 정보만 가지고 판단하는 ‘책상물림’ 문화가 만연해 있다. 조직을 책임지는 관리자들이 귀로 듣는 것만 아니고 나가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업무를 챙겨왔다면 이런 후진국형 정전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여러 조직의 관리자 자리에 현장에 나가본 적도 없고, 현장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저 잠깐 머물렀다 가는 자리에 연연하며 다음은 어디로 가서 생업을 도모할 것인가에만 골몰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다. 백 번 듣는 게 한 번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아무리 많은 정보와 데이터를 갖고 있어도 현장에 가서 한 번 눈으로 확인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는 의미로 자주 사용한다. <한서(漢書)> ‘조충국(趙充國)전’을 보면 한나라 9대 황제였던 선제의 명을 받아 서역을 토벌하는 임무를 받은 조충국 장군이 현장을 제대로 살펴보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며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장을 제대로 알아야 상대방보다 우위에 설 수 있다는 현장중심의 철학을 가진 조 장군의 경쟁전략이었다. 유향(劉向)이 쓴 <설원(說苑)> ‘정리(政理)’편에 보면 위(魏)나라 문후가 그의 신하 서문표(西門豹)를 업(鄴)땅의 지방장관에 임명하면서 이렇게 당부했다.
‘책상에 앉아서 귀로만 듣지 말고 현장에 나가서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하라’는 것이다. ‘이문지불여목견지(耳聞之不如目見之). 귀로 듣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만 못하다! 목견지불여족천지(目見之不如足踐之). 눈으로 보는 것은 발로 뛰는 것만 못하다. 족천지불여수변지(足踐之不如手辨之). 발로 뛰는 것은 손으로 직접 처리하는 것만 못하다.’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고 대안을 내서 다스리라는 당부였다. 업지역은 황하의 물이 범람해 늘 수재로 고통받고 있었다. 그곳의 관리는 지역 향리(鄕吏), 무당과 결탁해 황하의 신에게 제사를 올려야 한다는 명목으로 백성들의 고혈을 빨고 있었다. 서문표는 업(鄴)땅에 부임해 직접 눈으로 보고 발로 뛰어 백성들의 고통을 확인했다. 그는 이 일과 관련된 사람들을 처벌했고 정밀하고 현실적인 치수(治水)를 위해 노력했다. 이 결과 이 지역은 수재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풍요로운 곳으로 탈바꿈했다.
귀로 듣지 말고 눈으로 보라(目見)! 눈으로 보지 말고 발로 뛰어라(足踐)! 발로 뛰지 말고 손으로 직접 하라(手辨)! 리더가 돼 조직에 부임할 때 반드시 명심해야 할 화두(話頭)다. 그저 월급이나 타고 생계나 유지하겠다는 생각으로 조직의 관리자가 된다면 이것은 하늘의 재앙을 부르는 일이다.
현장에는 나가보지도 않고 책상에 앉아서 귀로만 듣고 판단하는 것은 조직을 위태롭게 하고 나아가 조직의 존망까지도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번 대규모 정전사태나 부실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도 현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오로지 귀로만 정보를 듣고 있었던 관리자들의 부실임에 분명하다. 눈으로 보고 발로 뛰고 손으로 직접 할 자신이 없는 사람은 높은 자리를 사양하고 그저 조그만 자리에 머무는 게 국가를 위해 애국하는 일이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email protected]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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