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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묻고 신하가 답하다: 태종-변계량

“벼슬한 햇수를 고려하는 건 옛날 인사”

김준태 | 319호 (2021년 04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조선을 건국한 태종이 중국의 앞선 제도를 모방해 조선을 다스리려고 하자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변계량은 성현의 가르침을 따르되, 조선 백성의 현실에 맞아야 한다고 일침을 내린다. 변계량은 벼슬한 햇수, 즉 연차에 따라 승진을 결정하는 방식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사 평가의 편의를 위해 연차를 기준으로 하는 것은 인사의 도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부작용도 낳는다는 지적이다. 변계량은 리더가 ‘중도’로 마음의 중심을 잡으면서도 ‘시의’, 현실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춘정(春亭) 변계량(卞季良, 1369∼1430). 권근과 더불어 조선 초기를 대표하는 석학인 그는 1382년(고려 우왕 8) 14세의 나이로 진사시, 이듬해 생원시에 합격했으며 1385년 17세 때 대과에 급제했다. 조선왕조가 건국된 후에는 주로 성균관, 예문관, 예조에서 활동하며 학문과 외교 분야에서 활약한다. 세종의 싱크탱크인 집현전의 총괄 책임자이기도 했다. 특히 그는 문형(文衡)이라 불리는 대제학을 20년 가까이 지냈는데 이는 그가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변계량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실록의 졸기를 보면 “문(文)을 관장하는 대신으로서 살기를 탐하고 죽음을 두려워했으며, 귀신을 섬기고 부처를 받들며, 하늘에 절하는 일까지 하지 않은 바가 없으니, 식자들이 조롱했다”1 라고 기록돼 있다. 그가 개인적으로 불교를 신앙하고, 2 하늘에 기우제를 지내라고 주청하는3 등 이단적인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다른 유학자들이 비하한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실력만큼은 의심하지 않는다. 탁월한 문장 실력으로 대명 외교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수많은 인재를 발굴•육성하고, 과거시험의 부정을 척결했으며, 남들이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로 여러 난제를 해결한 그의 업적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이번 글에서는 바로 이 변계량의 사상이 집약돼 있으며 1407년(태종 7) 당하관을 대상으로 실시된 중시(重試)의 답안지를 분석하고자 한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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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책문(策問)을 보자. 태종은 “당우(唐虞)와 삼대(三代)가 더할 수 없이 훌륭한 치세(治世)를 이룩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당우는 요(堯)임금과 순(舜)임금, 삼대는 하•은•주(夏殷周) 세 왕조를 말한다. 유학에서 요순은 가장 위대한 성군(聖君), 삼대는 훌륭한 정치가 펼쳐졌던 유토피아로 간주되는데, 삼대 중에서도 하나라의 우(禹)왕, 은나라의 탕(湯)왕, 주나라의 문(文)왕과 무(武)왕을 ‘삼왕(三王)’ 5 이라 부르며 높게 평가한다. 즉, 태종의 질문은 옛날 성군들이 어떻게 어진 정치를 펼칠 수 있었는가를 물은 것이다.

이에 대해 변계량은 “다스리는 도리는 마음을 근본으로 하고, 다스리는 법은 때에 따라야 합니다. 마음을 간직하여 치도(治道)를 창출하고 때에 따라 치법(治法)을 수립하는데, 그 요체는 중도(中道)를 견지하는 데 있고, 중도를 견지하는 요점은 정일(精一)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군주가 나라를 잘 다스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자. 하지만 덕성을 함양해 마음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치도], 현실 상황에 알맞은 법과 제도를 마련하지 못하면[치법]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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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태[email protected]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초빙교수

    김준태 교수는 성균관대에서 한국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 유교문화연구소, 유학대학 연구교수를 거치며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현실 정치에서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군주와 재상들에 집중해 다수의 논문을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왕의 공부』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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