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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하버드, 소수서원에서 배워라

박재희 | 44호 (2009년 11월 Issue 1)
경상북도 영주에 있는 소수서원. 국가가 인정한 조선 최초의 사립대학인 소수서원은 조선 500년간 최고의 인재를 양성하는 지방 명문 사학이었다. 입학 정원이 33명이었지만 뽑을 인재가 없으면 정원에 연연하지 않았다. 입학생을 3명만 선발한 해가 있었다는 기록을 보면, 이 학교가 얼마나 엄격하게 인재를 선발하고 관리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소수서원에는 모든 학생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 있었다. 강의실 격인 보물 1403호로 지정된 강학당(講學堂)의 좌측 누각 현판에는 소수서원 학생들이 지켜야 할 학칙이 새겨져 있다. 이 5가지 학칙은 오늘날 대학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나아가 우리가 어떻게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소수서원의 첫 번째 학칙은 인간관계의 윤리였다. 부모와 자식 간의 친밀함(父子有親), 군주와 신하 간의 의리(君臣有義), 부부 사이의 역할(夫婦有別), 어른과 아이 사이의 질서(長幼有序), 벗과 동료들과의 신뢰(朋友有信),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주 평범하지만 가장 위대한 이 5가지 인간관계에 대한 윤리는 지식의 습득에 앞서 학생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두 번째 학칙은 학문 방법에 대한 항목이다. 어떻게 지식과 인성을 연마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으로, 박학(博學·배움은 넓어야 한다), 심문(審問·물음은 깊어야 한다), 신사(愼思·생각은 신중해야 한다), 명변(明辯·판단은 명확해야 한다), 독행(篤行·실행은 독실해야 한다)의 5가지를 말한다. 넓게 파서 깊이 파고들고, 신중함과 명확함을 무기로 독실하게 행하라! 전율이 느껴지는 학문연구 방법론이다.
 
세 번째 학칙은 언행과 감정조절, 자기반성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언행에 대해서는 언충신(言忠信)이라고 했다. 말을 할 때는 진심(忠)을 다하고, 신뢰(信)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행동에 대해서는 행독경(行篤敬)을 권했다. 행동할 때는 독실하고(篤), 공경(敬)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다. 감정조절에 있어서는 징분(懲忿·분노를 징계하라)과 질욕(窒慾·욕심을 막아야 한다)을 강조했다. 분노가 지나치면 평생 후회할 일이 생기고, 욕심이 지나치면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반성에 대해서는 개과천선(改過遷善), 즉 잘못을 고치고 늘 선한 곳을 지향하라고 강조하여 자신의 과오를 돌아볼 줄 알고 나의 선한 본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적고 있다.
 
네 번째 학칙은 이익보다는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고, 결과보다는 인생의 바른 길을 묵묵히 가라는 것이다. 명기의(明其義·일에 앞서 옳음을 중요시 여겨라), 불모기리(不謀其利·이익에 연연해 행동하지 마라). 정기도(正其道·오로지 자신이 가야할 길을 묵묵히 가라), 불계기공(不計其功·그 결과에 대하여 계산하거나 따지지 말라)이라고 했다. 이익을 추구하고 공을 이루는 일이 반드시 그른 것은 아니다. 다만 옳은 것을 배제하고 오로지 이익에 탐닉하고,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떤 길이든지 갈 수 있다는 생각은 그르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다섯 번째 학칙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책임의식이다. 어떤 일이든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면 타인에게 강요하지 말 것이며, 세상의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책임감을 강조하고 있다.(己所不欲勿施於人, 行有不得反求諸己). 일명 ‘내 탓이오’ 철학이 소수서원의 마지막 학칙이다.
 
이익과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팽배하고 있는 요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기본이 살아 있는 사회는 지식에 앞서 인성을 갖추고, 이익에 앞서 옳고 그름을 따지며, 다른 이를 탓하기 전에 자신의 책임을 먼저 살피려는 세상이다. 이런 이상을 조선 최초로 군왕이 인정한 사립대학인 소수서원의 학칙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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