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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엽편 소설: 우리가 만날 세계

2110년, 지구를 떠나며…

이경 | 378호 (2023년 10월 Issue 1)

스페스(Spes) 호에 탑승하신 승객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스페스 호의 선장입니다. 먼저 모두 지정된 자리에 앉아 계신지, 좌석 안전벨트는 단단히 고정돼 있는지 확인해 주십시오. 만일 지정된 자리에서 이탈했거나 안전벨트에 문제가 있다면 지금 바로 가까운 승무원에게 도움을 요청해 주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안전이 확인된 다음, 엔진을 점화할 것입니다.

우리 스페스 호는 오늘 2110년 1월 19일 현지 시각 오전 9시 정각 리우데자네이루 우주공항을 출발해 지구로부터 5.1광년 떨어져 있는 루스(lux) 행성까지 운행할 성간 이동 우주선입니다. 정원 550명, 현 승선 인원은 저와 승무원을 포함해 총 203명입니다.

루스 행성에 도착하기까지는 약 7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존 핵융합 엔진의 120배 출력을 지닌 반물질 엔진을 탑재한 덕분이지요. 이 엔진을 이용하면 우주선의 최고 운행 속도를 광속의 75%까지 올릴 수 있습니다. 선체와 승객의 안전을 가장 우선해 속도를 조절할 예정이므로 총 이동 시간을 정확히 예측해 안내 드리기는 어려운 점 양해 바랍니다. 모든 상황이 순조롭다면 우리는 6년 10개월 후 루스 행성에 도착할 것입니다. 또한 여행 중 여러분이 느끼는 시간은 약 6년으로 체감되리라는 점,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상대성 이론에 따른 시간 지연 효과 때문이지요. 우리가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일수록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답니다.

여러분, 승무원의 점검이 진행되는 동안 잠시 창밖을 봐 주십시오. 긴 풀이 살랑이는 초원이 마치 바다처럼 무한히 펼쳐져 있군요.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우주공항 근처에는 커다란 나무나 건물이 들어설 수 없습니다. 경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게 펼쳐진 평평한 땅뿐이지요. 반물질 엔진이 내뿜는 어마어마한 열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보시는 아름다운 초록의 물결도 엔진이 점화되면 한순간에 잿가루로 변할 겁니다. 가장 낮은 출력으로 출발한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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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email protected]

    소설가

    필자는 서울대 국문과에서 현대소설을 공부하고 신소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소설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로 2022 문윤성SF문학상 중단편가작을 수상했다. 소설집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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