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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ble Management

귀 기울이려면 먼저 비워라

박영규 | 295호 (2020년 4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청각에 이상이 없는 한 모든 사람은 듣는다. 그러나 듣는다고 해서 다 듣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말만 골라서 듣는 경향이 있다. 귀에 거슬리는 말은 대체로 흘려듣는다. 그래서 입으로는 “그래, 알았어”라고 말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알았으니 그만해”라고 장벽을 친다. 소통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기울여 듣는 경청(傾聽)이다. 경청의 조건은 비움이다. 수납장이 가득 차면 더 이상 물건을 집어넣을 수 없듯이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잡다한 지식이나 경험, 자의식으로 가득 찬 사람은 타인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지 않는다. 세종을 조선왕조 최고의 성군으로 만든 것은 그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던 지식이나 화려한 언변이 아니라 자신을 비운 후 신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 경청의 리더십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매우 독선적인 리더였다. 그 자신이 항상 표준이고 최고였다. 그래서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잡스의 이런 성향은 다른 경영진과의 마찰을 초래했고 그가 애플에서 쫓겨난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애플에 복귀한 후 스티브 잡스는 직원들에게 자신을 “Chief Listening Officer(CLO)”라 불러달라고 주문했다. 최고경청자란 의미다. 변방을 떠도는 과정에서 깊은 성찰이 있었고 그것이 그러한 자기반성 겸 선언으로 이어졌다. 지시하는 리더에서 듣는 리더로, 잡스의 리더십 반전이 있은 후 애플은 실리콘밸리의 또 다른 신화를 써 내려갔다.

스티븐 코비는 이렇게 말했다. “성공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대화 습관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점이 무엇인지 단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경청하는 습관을 들 것이다.” 잡스에게 딱 어울리는 경구다.

조선 최고의 성군 세종에게도 이 경구는 그대로 적용된다. 세종의 취임 일성은 “그대들의 의견을 듣겠다”였고, 『세종실록』에 자주 등장하는 문구 중 하나가 “경들의 생각은 어떠하오?”라는 표현이다. 한자로 들을 ‘청(廳)’이라는 글자는 귀 이(耳), 임금 왕(王), 열 십(十), 눈 목(目), 한 일(ㅡ), 마음 심(心)으로 구성돼 있다. 어진 임금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큰 귀와 밝은 눈으로 신하들의 말과 몸짓을 잘 듣고 잘 살펴서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데 있다는 의미다. 이 덕목을 가장 잘 실천한 임금이 바로 세종이었다.

청각에 이상이 없는 한 모든 사람은 듣는다. 그러나 듣는다고 해서 다 듣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말만 골라서 듣는 경향이 있다. 귀에 거슬리는 말은 대체로 흘려듣는다. 그래서 입으로는 “그래, 알았어”라고 말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알았으니 그만해”라고 장벽을 친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정치권에서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소통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기울여 듣는 것이다. 그래서 경청(傾聽)이다.

경청의 조건은 비움이다. 수납장이 가득 차면 더 이상 물건을 집어넣을 수 없듯이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잡다한 지식이나 경험, 자의식으로 가득 찬 사람은 타인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지 않는다. 다 아는 걸 굳이 들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리더는 조직을 경직되게 만들고 퇴화시킨다. 스티브 잡스가 깨우친 것처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채우기 전에 먼저 비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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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우고 담백한 상태로 만드는 것은 세상의 근본이자 도덕의 최고 경지다. 그러므로 제왕이나 성인이 돼야 그 경지에서 머무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면 고요해지고, 고요하면 변하게 되고, 변하면 모든 것을 얻게 된다. (虛則靜 靜則動 動則得矣, 허즉정 정즉동 동즉득의)”

- 『장자』 ‘천도’편

세종은 지식이나 학식에서 신하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았다. 역사와 철학, 음악, 과학 등 다방면에 걸친 독서와 학습으로 스스로 문리를 터득했다. 그러나 세종을 조선왕조 최고의 성군으로 만든 것은 그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던 지식이나 화려한 언변이 아니라 자신을 비운 후 신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 경청의 리더십이었다.

다양성의 인정 여부는 경청 리더십의 성패를 가늠하는 또 다른 척도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경청의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또 너야? 됐어, 그만해” 하면서 괴짜나 아웃사이더의 말에 손을 내저으면 조직 내 소통을 활성화시킬 수 없다. 삐딱한 말도 들어주는 리더라는 평판이 나야 직원들이 마음껏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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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영규[email protected]

    인문학자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실리콘밸리로 간 노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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