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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에서 배우는 경영

클수록 좋은 ‘개미지옥’ 구멍 먹이 없어 옮길 땐 작아진다

서광원 | 162호 (2014년 10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개미귀신은 함정을 만들어놓고 먹잇감을 기다린다. 이것은 개미귀신의 생존전략이다. 어찌 보면 기업이 매장을 개설하고 손님을 기다리는 것과 비슷하다. 개미귀신의 생존 경쟁력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개미귀신은 지옥을 크게 만들면 만들수록 먹이를 잡는 데 필요한 수고를 덜고 더 많은 먹이를 손쉽게 잡을 수 있다. 매장이 클수록 손님을 많이 유치할 수 있는 원리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모든 개미귀신들은 지옥을 크게 만들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아무리 기다려도 먹잇감이 걸려들지 않으면 개미귀신들은 근거지를 옮긴다. 이런 상황이 계속 지속되면 더 자주 이동한다. 흥미로운 건 이동이 잦아지는 것과 비례해 구덩이의 크기가 갈수록 작아진다는 점이다. 생존 환경이 불확실해지자 더 많은 이동을 통해 기회를 찾아내는 노력을 하면서 가능하면 적은 노력으로 성과가 나오는지 시험하도록 에너지를 배분을 한 것이다. ‘대박을 노리기보다 작은 성공을 통해 성공 가능성을 탐사하는 방식이다. 개미귀신의 생존방식은 기업 경영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옥은 어디 있을까? 살아 있음을 지향하는 생태계에서 지옥은 어디 한군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을 구렁텅이 같은 곳에 빠트리는 곳이 바로 지옥이다. 대부분의 지구 전역에서 살 정도로 번영하고 있는 개미들에게지옥은 어딜까? 개미들에게는 무수히 많은 지옥이 있다. 더구나 수시로 생긴다. 이름도 개미지옥이다. 특이한 건 작은 깔때기 모양으로 파여 있는 이 지옥들이 거의 완벽한 원뿔 형태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없던 곳에 지옥이 생겨나고 모양이 흐트러질 때마다 다시 다듬어지는 걸 보면 누군가 일부러 만들어놓은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빠져 나오기 힘들길래지옥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개미가 구덩이에 빠지는 순간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다. 위기에 빠졌다는 걸 직감한 개미는 발버둥을 치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구덩이의 가파른 경사가 발버둥을 물거품으로 만든다. 가벼운 모래알이 불안하게 쌓여 있는 경사면이어서 발버둥을 칠수록 모래알이 잘 흘러내리는 것이다. 흘러내리는 모래와 함께 개미도 쓸려 내려간다. 산비탈에서 눈사태를 당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걸음을 뗄라치면 그때마다 아래쪽에서 분수처럼 모래알들이 우수수 뿌려진다. 그러면 불안하게 쌓여 있는 경사면의 모래알들이 사태(沙汰)를 일으키고 개미는 블랙홀 속으로 쓸려 내려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개미지옥이다. 그리고 지옥의 밑바닥에서 이 모든 상황을 작동시키고 있는 저승사자는 개미귀신이다. 이 녀석들은 돌아다니는 사냥도 하지만 함정을 만들어놓고 기다리는 매복을 주요 생존전략으로 한다. 당연히지옥’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생존이 달려 있다. 지옥이라는 어감이 부정적이긴 하지만 이 전략은 상품 매장 만들기나 신사업 진출 전략과 다르지 않다. 아니 근본적으로 원리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녀석들이 정말 지옥의 귀신 같은 능력을 지닌 걸까? 그런 능력을 지녔다면 이 능력은 어디서 연유한 걸까? 미국 UCLA에서 교수를 하다 자연의 생명체들을 구체적으로 연구하고 싶어 미국 동북부의 원시림 속에 있는 통나무 집으로 들어간 동물행동학자 베른트 하인리히는 어느 날 이 작고 하찮은 녀석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찰해보기로 했다. 어느 화창한 5월의 첫날 아내와 함께 따뜻한 모래에 누워지옥의 한 철을 들여다 보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 내용은 하인리히의 관찰기록에다 다른 연구자료를 보강한 것이다.)

 

이름하여 귀신이니 녀석들의 능력은 기본적으로 지옥을 만드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어떻게 거의 완벽한 원형을 만드는가 하는 건 아직 규명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손가락 한 마디 정도밖에 안 되는 평균 길이 40㎜ 정도 되는 작은 녀석들이 마치 트랙터나 불도저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며 파 들어가 완벽에 가까운 원뿔 구덩이를 만든다. 파 들어가면서 굵은 알갱이는 밖으로 던져버리고 가벼운 모래알갱이들은 경사면에 뿌린다. 이 치밀한 장치 덕분에 개미뿐만 아니라 다양한 먹이들이 지옥에 빠져든다. 하인리히가 222마리의 먹잇감을 분류해보니 개미는 35% 정도였다. 다음으로 녀석들이 많이 사냥한 먹잇감은 거미(24%), 딱정벌레(14%), 모기붙이(12%), 작은 말벌(9%) 순이었다. 개미에게만 귀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 다들 갖추고 있는 능력이다. 능력이 같다면 경쟁력은 다른 곳에 있다. 경쟁력은 어디서 나올까? 왜 어떤 녀석은 잘 살아가는데 어떤 녀석은 그렇지 못할까? 하인리히는 마치 파브르가 그랬던 것처럼 126회에 걸쳐 이 구덩이 속에서 생과 사가 엇갈리는 순간을 일일이 관찰했다. 더불어 구덩이의 크기를 소--대로 구분하고 개미들과 개미귀신의 몸집도 소--대로 구분했다. 역시 재미있는 상관관계가 관찰 기록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몸집이 작은 개미는 작은 몸집 때문에 쉽게 구멍에 빠졌다. 하지만 작은 덩치가 마냥 불리한 것만은 아니었다. 큰 구멍에 빠졌을 때 작은 개미들은 바로 그 덕분에 큰 진동을 일으키지 않았고 그래서 들키지 않고귀신같이빠져나갈 수 있었다. 개미귀신들은 모래알로 전해지는 진동을 통해 사냥감이 걸려들었음을 포착한다. 중간 크기의 개미는 작은 구멍에서 잘 빠져나갔다. 그러나 모래를 뿌리면서 방해공작을 펴는귀신을 뿌리치느라 하마터면 죽을 뻔한 순간을 겪어야 했다. 한 개미귀신은 모래를 57번이나 뿌린 끝에 개미를나락으로 끌어내리는 치열한 전투를 치른 후 사냥을 성공으로 끝냈다. 큰 개미는 덩치가 있어 작은 구멍쯤은 대수롭지 않게 건너갔다. 작은 개미귀신도 이 덩치 큰 녀석들을 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잘못 덤벼들었다가는 되레 반격을 당하는 불상사가 있을 수 있는 까닭이다.

 

구덩이를 만든 개미귀신 쪽에서 보면 중간 크기 구덩이를 지키고 있던 개미귀신의 경우 큰 개미가 걸려들면 열심히 모래를 던졌으나 허탕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덩치가 큰 덕분에 쉽게 빠져나갔던 것이다. 큰 구덩이 속의 개미귀신은 보통 열 번도 안 되는 모래 던지기로 함정에 빠져든 개미를 잡았다. 지옥을 크게 만들면 만들수록 모래 던지기를 덜 하면서도 훨씬 더 많은 먹이를 손쉽게 잡을 수 있었다. 매장이 클수록 큰 손님들을 많이 유치할 수 있는 원리다. 그렇다면 모든 귀신들은 지옥을 크게 만들어야 한다. 녀석들의 유전자에도 이 본능이 깊이 박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들의 지옥은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크기가 아주 다양했다. 왜 어떤 구덩이는 작은데 다른 구덩이들은 클까? 덩치가 큰 녀석이 큰 구덩이를 만들고 작은 녀석은 작은 구덩이를 만드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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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광원[email protected]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필자는 경향신문, 이코노미스트 등에서 경영 전문 기자로 활동했으며 대표 저서로는 대한민국 리더의 고민과 애환을 그려낸 『사장으로 산다는 것』을 비롯해 『사장의 자격』 『시작하라 그들처럼』 『사자도 굶어 죽는다』 『살아 있는 것들은 전략이 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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