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보다 ‘사적(私的) 네트워크’ 신뢰
당신이 택시를 탔는데 수중에 돈이 없다. 급하게 집에서 나오느라 지갑과 휴대전화를 모두 두고 나왔다. 택시기사의 ‘관용’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인은 ‘불특정 타인’에 대해 얼마나 도움을 기대할 수 있을까? 만약 당신이 생면부지의 누군가가 도와줄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사회적 자본(사람들이 협력할 수 있게 도와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지난해까지 실시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이런 막연한 도움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25%에도 미치지 못했다.1 문제는 어려운 상황에서 국가가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막연한 타인’에 대한 기대감보다 낮다는 것이다. 9.2%만이 국가의 도움을 기대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사회적 자본은 어느 정도나 될까. 시장조사 전문기업인 마크로밀엠브레인이 6∼7월 성인 3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공공기관에 대한 불신은 매우 컸다. 73.5%는 ‘공공기관에 불신이 생겼다’고 응답했고 69.7%는 ‘정부정책 전반에 불신이 생겼다’고 답했다. 신뢰를 표명한 응답자는 4∼5%에 불과했다.2 이런 결과는 인간관계의 상호신뢰도 평가에도 영향을 끼쳤다. 가족(83.6%가 신뢰)과 친척, 회사 동료 등의 가까운 인간관계에 대한 상호 신뢰도는 대체로 높게 나타났으나 공무원(12.2%), 전문가(27.8%), 대학교수(23.5%), 법률가(19.6%) 등 공공 분야와 전문가 집단에 대한 신뢰도는 매우 낮았다.3
▶소비에서는 ’의리’보다 ‘시스템’ 신뢰
그렇다면 소비생활에서 사회적 자본은 어느 정도일까. 소비자들은 기업 등에 얼마나 신뢰하고 있을까. 48.3%는 대기업 제품을 신뢰했다. ‘백화점(45.3%)’ ‘대형마트(37.3%)’ ‘프랜차이즈 식당 또는 빵집 제품(29.1%)’ 등에 대한 신뢰도도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반면 ‘소셜커머스 판매제품’ ‘테마파크에서 판매하는 제품’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제품’ 등에 대한 신뢰도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재래시장(24%) 보다는 백화점(45.3%)과 대형마트(37.3%)를 신뢰했다. ‘개인이 운영하는 식당·빵집의 제품(31.9%)’ ‘중소기업 판매 제품(24.3%)’ ‘재래시장 판매 제품(24%)’의 신뢰도는 비교적 낮았다. 중소기업과 재래시장 등은 사회적 선의(善意)를 기대하며 소비자에게 ‘의리’를 호소할 수는 있지만 신뢰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소비자는 제품과 서비스가 ‘시스템’에 따라 얼마나 잘 관리되고 있는지에 따라 해당 제품과 서비스를 신뢰했다.4
▶‘사소한 약속’에서 신뢰 느낀다
현재 국내에서 사회적인 자본은 잘 형성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공공기관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매우 낮았고 전문가 집단도 크게 신뢰를 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낮은 사회적 자본을 높일 수 있을까. 사회적 신뢰를 높일 수 있을까. 힌트는 인간관계다. 모든 사회적 자본은 ‘인간관계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신뢰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72.5%는 ‘언행 불일치’를 꼽았다. 다음으로 ‘가벼운 입(65.1%)’ ‘배려 부족(63.2%)’ ‘상대방의 단점 이용(61.6%)’ ‘작은 약속 무시(58.3%)’ ‘다른 사람에게만 법·규칙 강요(54.1%)’ 등의 순이었다.5 핵심은 인간관계에서 다른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낮았다는 사실이다. 반면 믿음을 주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언행일치(71.2%), 작은 약속 준수(60.2%), 비밀 준수(51.8%), 일관성 있음(50.2%), 법과 규칙을 잘 지킴(49.9%), 사소한 배려(49.4%) 등에 신뢰를 보였다. 미국의 미래 정치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20년 전 저서 <트러스트(Trust)>에서 한국을 ‘저신뢰 국가’로 명명했다. 이후 한국의 사회적 자본은 늘었을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당신이 일상에서 ‘타인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윤덕환 마크로밀엠브레인 컨텐츠사업부장 [email protected]
필자는 고려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심리학과에서 문화 및 사회심리학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마크로밀엠브레인 (구 엠브레인)에서 다수의 마케팅리서치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현재 컨텐츠사업부를 총괄하고 있으며 인천대 소비자·아동학과 겸임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소비자트렌드읽기> <장기불황시대 소비자를 읽는 98개의 코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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