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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는 한순간에 이뤄진다

박재희 | 131호 (2013년 6월 Issue 2)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는 말이 있다. 갑작스럽게 떨어지는 것은 도무지 손 쓸 틈도 없고 제어장치도 들지 않아 수직 낙하한다는 뜻으로 증권가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잘나가던 회사의 주식이 어느 날 암초를 만나 끝도 없이 떨어질 때 사용하는 이 말이 어디 증권가에서만 쓰이는 말이겠는가? 잘나가던 정치인의 지지율 추락, 탄탄했던 기업의 예상치 못한 위기와 파산, 권력의 중심에 섰던 사람의 갑작스런 몰락을 보면 정말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장자(莊子)>에는 이렇게 갑작스럽게 몰락하는 것을악성불급개(惡成不及改)’라고 정의한다. 나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손 쓸 틈도 없이 벌어진다는 뜻이다. 물론 그 나쁜 상황이 오기까지 많은 작은 잘못들이 누적돼 왔겠지만 무너질 때는 손 쓸 틈도 없이 한번에 무너진다는 것이다. <주역(周易)>에도 얼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서리가 내리고 그 서리가 수없는 사람의 발에 밟히고 나서야 비로소 얼음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리상견빙지(履霜堅氷至).’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만들어진다() <주역(周易)> ()괘에 나오는 말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고 한 겹 두 겹 쌓이고 사람들의 발에 밟혀 비로소 얼음이 만들어지듯이 세상의 나쁜 일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누적돼 왔던 것들이 터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일이 발생했을 때는 고칠() 여력도 없이(不及) 순식간에 추락하게 된다는 논리다.

 

반면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은 많은 시간이 걸린다. ‘미성재구(美成在久).’ 좋은() 일이 이뤄()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목표가 이뤄지고 성공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가진 모든 힘을 총동원해서 오랜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최고의 완성을 볼 수 있다. <대학장구(大學章句)>에는 이것을용력지구(用力之久)’라고 한다. ()을 사용()하는 것이 오래()돼야 완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활연관통(豁然貫通)의 위대한 목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과정이다. 살을 빼려는 사람이 운동하는 만큼 살이 빠진다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은 원하는 몸무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몸매는 오랜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이뤄진다. 성공에는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주역(周易)>은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 자강불식(自强不息)하라고 강조한다. 스스로() ()해져야 하는데 쉬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중용>에서는 지성무식(至誠無息)이라고 한다. 쉬지 않는 정성이 모여져서 고명(高明)한 하늘이 만들어지고, 박후(博厚)한 땅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우주는 쉬지 않는 오랜 노력과 정성이 모여져서 이룬 위대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미성재구(美成在久) 악성불급개(惡成不及改).’ 완성은 시간이 걸리나 파괴는 한순간에 이뤄진다는 <장자>의 일갈(一喝)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즘 오랜 시간과 노력을 거쳐서 만들어진 기업들과 사람들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추락하는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몇 대에 걸쳐서 조상의 공덕으로 쌓아온 기업이 어느 날 뿌리째 흔들리는 위기를 겪는 것을 보면 망하는 것은 정말 한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하는 사람도 한순간 가서는 안 될 길을 가게 되면 날개도 없이 추락하게 된다. 이루기보다는 지키기가 더욱 어렵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 [email protected]

필자는 조부에게 한학을 배우고 성균관대에서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수학했다. 고전의 재해석을 통한 새로운 미래사회 가치를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지내고 현재 포스코 전략대학 석좌교수,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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