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甲)과 을(乙)의 문제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갑과 을이란 용어는 십간(十干)에 나오는 순서로 점술에서는 갑(甲)은 양(陽)에 속하고 을(乙)은 음(陰)에 속하는 상징이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갑을관계를 보면 백화점과 입점업체들, 본사와 대리점, 공급자와 판매자 등 유통업계에서부터 시작해 사장과 직원 등 다양한 사회관계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문제는 갑은 을에게 늘 무엇인가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어느 유제품 회사 직원의 막말 사건도 본사에서 정해 놓은 목표치를 달성하려다 보니 대리점 주인에게 강하게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회사의 성장과 매출의 증대를 위해 무리한 요구가 강해지면 그 과정에서 갑과 을의 불안정한 갈등이 벌어지는 것이다. 주도권을 쥐고 있는 갑(甲)과 그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을(乙)의 비정상적인 관계는 결국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빠른 성장과 매출을 올리려다 결국 비극으로 끝나게 되는 것이다.
<논어(論語)>에 보면 순리를 어기고 무리하게 빨리 가고자 하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뿐더러 큰 조직으로 성장하지 못할 것이란 구절이 있다. 일명 ‘욕속부달(欲速不達)’의 철학이다. ‘빨리(速) 하고자(欲) 하면 원하는 목표에 도달(達)하지 못한다(不)’는 뜻이다.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가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을 때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너무 빨리 무엇을 이루려 하지 마라(無欲速)! 조그만 이익에 너무 연연하지 마라(無見小利)! 무리하게 빨리 무엇인가를 이루려 하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고(欲速則不達), 조그만 이익에 연연하면 큰일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見小利則大事不成)!’ 마음만 급한 나머지 무리하게 목표를 세우고 원칙과 기본을 어겨가며 그 목표에 도달하려 한다고 해서 목표가 반드시 달성되는 것이 아니며 달성된다고 해도 결국 원칙을 어긴 성과는 오래 못 갈 것이다. 또한 큰일을 하려는 조직이 조그만 이익에 눈이 팔려 그 이익을 쫓다 보면 큰 조직으로 성장하는 데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공자의 이런 생각 뒤에는 순리에 따라 일을 처리할 것이며 눈앞에 조그만 이익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숨어 있다.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개인과 조직의 성장에서 중요한 과정이다. 다만 목표를 무리하게 설정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무리하게 밀어붙인다면 비록 그 목표를 달성했다 하더라도 문제가 있는 목표달성일 수밖에 없다. 돌려 막기식 성장이나 장부상의 짜 맞추기식 성과달성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비록 좀 늦더라도 달성 가능한 목표치를 세우고 윤리와 원칙을 지켜가며 거둔 성과가 진정 가치 있는 성과이며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빨리빨리’ 문화가 우리나라가 성장하는 데 큰 동력이 됐다는 점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초가 없는 무리한 속도경쟁은 결국 모래 위에 쌓은 성일 뿐이다. 양적인 팽창 뒤에는 반드시 질적인 안정이 수반돼야 차곡차곡 가치 있는 성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대나무가 자라날 때 어느 정도 성장하면 마디(節)로 마감을 해주고 또다시 자라듯이 성장은 원칙과 기본이 수반돼야 가치 있는 성장이 될 것이다.
무리하게 빨리 가려 하지 마라! 조그만 이익에 연연하지 마라! 속도가 진리고 이익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요즘, 한번쯤 돌이켜 속도를 조절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인 듯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정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왕도이기 때문이다.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 [email protected]
필자는 조부에게 한학을 배우고 성균관대에서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수학했다. 고전의 재해석을 통한 새로운 미래사회 가치를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지내고 현재 포스코 전략대학 석좌교수,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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