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싯대를 여러 개 걸쳐 놓는다 해서 고기가 다 물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력 있는 낚시꾼은 단 하나의 낚싯대로 승부를 건다. 나는 사업을 하면서 남이 터를 닦아 놓은 곳에 뒤늦게 들어가서 낚싯대를 드리우기보다는 내가 먼저 생각한 일을 남보다 앞서 하려고 노력해 왔다.… 남들이 성공하니까 욕심을 내서 무모하게 쫓아다니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1920∼2002년)은 한국을 대표하는 수송 기업을 일군 경영자다. 조 회장은 해방이 되던 1945년 11월 인천에서 트럭 한 대로 한진상사를 창업했다. 한진(韓進)은 ‘한민족의 전진’을 뜻한다. 트럭으로 시작했지만 조 회장은 궁극적으로 국제선 항공사업을 하고 싶었다. 항공사업에 성공하면 기업은 기업대로 발전의 기반을 마련하고 국가적으로도 귀중한 외화를 절약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는 생각이었다. 그는 기회를 보다가 1960년 주식회사 한국항공(Air Korea)을 세웠지만 정부가 국영기업인 대한국민항공사(KNA)를 지원하기로 하는 등의 정치적인 이유와 항공사업 경험부족으로 결국 이듬해 문을 닫았다.
이후 베트남전을 겪으면서 숱한 난관을 극복하고 기회도 잡았던 그는 1967년 대진해운을 세우고 삼성물산으로부터 동양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를 인수한다. 보험회사를 인수한 이유는 베트남에서 운송 및 하역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인력과 장비, 차량 선박의 피해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손해보험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했기 때문이다. 막대한 보험료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업종으로 보면 운송과 보험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가치 창출 과정에서 필요한 영역이기 때문에 무분별한 확장과는 거리가 멀다. 이때부터 그의 꿈인 ‘육해공 종합 수송기업’의 틀이 만들어졌다. 이후 조 회장은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대한항공으로 키웠고 항공기와 선박 제조(한진중공업) 사업에도 진출한다. 모두 관련된 분야였다.
그는 모르는 사업을 하기보다 수송 전문화에 집중했다. 주변에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무역회사를 만들자고 권유하기도 했지만 조 전 회장은 “그들(무역회사)이 우리 비행기를 타고 우리에게 화물을 맡기겠느냐”며 반대했다. 그는 한진의 핵심 고객이 무역회사인데 한진이 무역업에 진출하는 순간 이들이 경쟁사가 된 한진을 배척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 회장은 25세에 한진상사를 창업한 후 수송 외길을 걸어온 것이나 다름없다. 비관련 다각화를 일삼으며 문어발식 경영으로 기업을 확장해온 많은 국내 대기업들 속에서 조 회장과 한진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본업과 비슷한 분야에 진출해 신규사업을 벌이는 것을 말하는 관련 다각화가 유통업체가 전자산업에 뛰어는 것과 같이 전혀 상관 없는 분야에 진출하는 비관련 다각화보다 좋은 성과를 낸다는 것은 1970년대에 리처드 루멜트 UCLA 교수가 통계적으로 입증했다. 또 컨설팅업체 베인&컴퍼니의 크리스 주크는 2002년에 내놓은 책 <핵심에 집중하라>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회사들의 대부분은 극소수의 핵심사업에 집중하고 있으며 다각화된 기업의 시장가치가 핵심사업에 집중하고 있는 기업보다 낮다고 지적했다.
돌이켜보면 한민족의 전진이라는 뜻의 ‘한진’만큼 경영자로서 조 회장의 철학을 잘 나타내는 단어는 없을 듯하다. 조 회장은 수출주도형 한국 경제에 수송이 중요할 것이라 간파하고 한국이 전진할 수 있도록 육해공 모든 분야에서 입체적으로 수송산업을 일으켰다.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은 이제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송 및 물류회사 반열에 올라왔다. 그는 입버릇처럼 말했던 ‘수송보국(輸送報國)’이란 가치를 흔들림 없이 실천한 기업가다.
김선우 기자 [email protected]
필자는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에서 인문지리학을 전공하고 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MBA 학위를 받았다.
2001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사회부, 문화부, 경제부, 산업부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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