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지구를 벗어나 달을 정복하고 무한한 창공 너머 우주를 꿈꾸게 된 것은 (조금 과장은 있지만) 천체 망원경 덕택이다. 또한 인간의 몸 속에 살고 있는 바이러스를 연구하고 병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과장이 있지만) 현미경 덕분이다. 천체물리학과 의학을 단순화시키려는 의미는 아니다. 요지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안다’는 것이다. 이 말을 기업경영에 적용해도 마찬가지다. 유기체로서의 기업이 보는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실행을 시킨다는 것은 평범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통용되는 진리다.
벤처기업을 사람에 비유하면 가장 성장이 빠른 유년기-청소년기에 속한다. 조직의 규모가 작아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고 학습 속도도 그만큼 빠르다. 벤처기업에 필요한 것은 성장에 기본이 되는 ‘아는 것’을 늘리는 일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종종 ‘보는’ 관점을 확대하는 일이 중요하다. 십 수년째 투자업무를 맡아 오면서 수많은 벤처기업가들을 만났는데 경험적으로도 천체 망원경을 가진 것처럼 저 멀리까지 보는 사람과 남들은 지나치기 쉬운 아주 작은 부분까지 함께 챙기는 사람들의 성장 속도는 남달랐다. 벤처기업가들의 성공을 돕는 입장에서 할 수만 있다면 그들에게 천체 망원경과 현미경을 하나씩 선물하고 싶다.
망원경과 현미경은 기업의 관점에서는 각각 ‘전략’과 ‘실행’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전략은 대체로 거시적인 시각과 관점으로, 기업의 비전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향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제대로 된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거시경제에 대한 이해, 글로벌 경영환경에 대한 식견, 목표시장의 흐름과 목표고객의 라이프스타일 등등에 대한 분석력을 지녀야 한다. 이는 한마디로 내 앞에 있는 나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숲을 보고, 천체 망원경으로 지구를 넘어 은하계를 관찰하는 일과도 같다. 시야가 넓어질수록 전략의 방향을 정조준하고 좀 더 탄탄한 전략을 세울 수 있다.
다소 식상하지만 애플의 디지털 콘텐츠 생태계 구축전략을 떠올려 보자. 컴퓨터 회사였던 애플이 2001년 아이팟(iPod)이라는 MP3플레이어를 발표하고 오디오 재생 프로그램이자 디지털 콘텐츠를 관리하는 프로그램인 아이튠즈(iTunes)를 내놓은 데에는 단순히 컴퓨터에 이어 MP3 시장을 공략하려는 것 이상의 ‘전략적 판단’이 숨어 있었다. 그 전략 안에는 음원시장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10년 앞을 내다보는 디지털 콘텐츠 환경에 대한 혜안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천체 망원경을 보듯 확대된 시장에 대한 비전이 있었기에 애플은 단순히 MP3 시장을 석권하는 것을 뛰어넘어서 하나의 완성된 생태계를 구축하고 이동통신과 컴퓨터의 기능을 결합한 스마트폰 시장으로 진화,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장기적인 비전에 바탕을 둔 전략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이 필요로 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전략이 있다고 해도 기업 내부에서 그것을 만들어낼 역량이 있는지, 소비자 변화에 맞게 대처해나갈 실행력을 갖추고 있는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기업 전체를 보기보다 낱낱이 살펴보는 세심함이 필요하니 마치 현미경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까지 가려내야 하는 것과 같다.
일반적으로 규모가 큰 기업은 회사의 전략을 수립하는 조직과 그러한 전략에 기반해 실행을 하는 조직이 별도로 있다. 하지만 벤처기업은 창업자 한두 명이 그 모든 짐을 짊어져야 한다. 시장을 거시적으로 내다보고 장기적으로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우는 일이든, 그것을 현재의 시점에서 가능케 만드는 실행력이든 말이다.
최근 들어 벤처 창업 붐이 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투자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성공 신화를 꿈꾸며 도전하는 벤처기업가들에게 비록 실물로는 망원경과 현미경을 쥐어줄 수 없겠지만 ‘망원경과 현미경’의 지혜를 선물하고 싶다. 전략과 실행력을 갖추는 것이 성공 가도에 진입하기 위한 통행권이라 믿기 때문이다.
필자는 고려대를 졸업하고 미국 드렉셀대에서 MBA를 받았다. 삼보컴퓨터를 거쳐 미국 소프트뱅크벤처캐피털의 투자심사역을 통해 벤처투자에 발을 들여놓았다. 2002년에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의 대표이사로 취임한 후 국내외 초기벤처를 발굴하고 있다.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 대표이사 [email protected]
필자는 고려대를 졸업하고 미국 드렉셀대에서 MBA를 받았다. 삼보컴퓨터를 거쳐 미국 소프트뱅크벤처캐피털의 투자심사역을 통해 벤처투자에 발을 들여놓았다. 2002년에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의 대표이사로 취임한 후 국내외 초기벤처를 발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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