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추진된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 사회 전반의 온실가스 배출을 저감하는 데 한계가 존재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기존의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 방법인 스코프 1~3을 넘어 측정 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시도로 ‘회피된 배출(Avoided Emissions)’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기업은 회피된 배출을 공개함으로써 △브랜드 차별화 △금융 접근성 확보 △기후 위험 축소 및 적응 등의 이점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표준화된 기준과 보편적으로 합의된 기준이 없어 그린워싱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 회피된 배출을 공개하고자 하는 기업은 회피된 배출의 산출 및 공개 과정에서 초래될 수 있는 그린워싱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왜, 회피된 배출인가2016년 전 세계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지구 평균 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파리기후변화협약에 합의했다. 하지만 2024년까지 이미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온도 상승폭이 1.5℃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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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추진된 기후변화 대응 정책은 주로 기업 차원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초점을 맞췄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산업 생태계 전반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저감하는 데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업 활동이 직접적인 생산 과정뿐 아니라 복잡한 공급망과 가치사슬에서 이뤄지는데 자체적인 온실가스 배출 감축 노력이 주로 스코프1과 2에 집중되고 스코프3에 해당하는 가치사슬 전반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은 효과적으로 관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더 나아가 기업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직간접적인 온실가스 배출뿐만 아니라 가치사슬 밖에서 발생하는 배출 관리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스코프 1~3(표 1)을 넘어 배출량 측정 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시도로 등장한 개념이 바로 ‘회피된 배출(Avoided Emissions)’이다.
최근 과학 기반 감축 목표 이니셔티브(Science-Based Target initiative, SBTi)는 ‘가치사슬 너머의 배출량 감축(Beyond Value Chain Mitigation, BVCM)’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가치사슬 너머의 배출량 감축’이란 기업이 가치사슬(스코프 1~3)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함으로써 자사의 과학 기반 감축 목표를 넘어서 글로벌 넷제로 전환을 가속화하는 메커니즘을 의미한다. SBTi는 지난 2월 넷제로 표준의 BVCM 설계 및 실현을 위해 2개의 보고서를 발간하고 기업을 대상으로 넷제로 이행 과정에서 가치사슬 외부에서도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세계 각국의 금융회사와 정부도 기업 경쟁력 향상 및 사회 전반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을 확대하는 관점에서 회피된 배출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슈로더(Schroders), 로베코(Robeco), 미로바(Mirova) 등 11개 글로벌 금융회사는 기후금융 지원을 위해 회피된 배출 측정을 위한 이니셔티브를 만들고 있다.2
미로바의 탄소 전략 책임자이자 탄소발자국 문제 전문가인 마누엘 코슬리에는 “글로벌 넷제로 달성에서 금융 부문이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면서 “기업의 탄소 배출 감축 기여도에 대한 명확하고 실질적인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회피된 배출 측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앞으로 각국 정부는 사회 전반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데 기여하는 신제품 및 신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에 더 많은 지원책을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올해 3월 산업계의 탄소중립 기술에 총 60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산업 공정에 탄소 포집·저장, 열 배터리, 전기로, 수소 환원 공정 등을 적용해 사회 전반의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는 기업들은 보조금 수혜를 받을 수 있다. 독일은 올해 3월 ‘기후 보호 계약’ 정책을 발표하고 최대 230억 유로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기업들이 기존 화력 공정에 비해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청정 기술을 사용할 경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추가 비용을 보전해 주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올해 4월 산업계의 에너지 효율 개선 및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돕는 신기술을 제공하는 기업에 최대 1억 위안을 제공하겠다는 탈탄소화 지원책을 발표했다.
기업은 회피된 배출 측정 및 보고를 대비함으로써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음에서 회피된 배출의 개념과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회피된 배출의 개념회피된 배출은 제품의 수명주기 또는 가치사슬 외부에서 발생하지만 제품의 사용 결과로 나타난 탄소배출량 감소로 정의된다. 세계자원연구소(World Resources Institute, WRI)에서 처음 소개한 개념으로 ‘스코프4(Scope 4)’ 또는 적극적 탄소 저감 노력인 ‘탄소 손자국(Carbon Handprint)’으로도 불린다.
회피된 배출은 측정 대상·범위·방식 등에서 스코프1~3과 차이가 있다.(표 2) 스코프1~3은 개별 기업을 측정 대상으로 하는 반면 회피된 배출은 사회 또는 산업 전반을 측정 대상으로 한다. 또한 스코프1~3은 측정 범위가 기업의 가치사슬 및 공급망 내부인 데 반해 회피된 배출은 가치사슬 및 공급망 외부에서 발생한 배출량을 측정한다. 측정 방식의 경우 스코프1~3이 기업의 전년 대비 온실가스 감축량을 산출한다면 회피된 배출은 사회 전반의 온실가스 감축 기여도를 측정한다. 회피된 배출은 재생에너지 기술의 발달, 전기차·에너지 효율·스마트 그리드 등의 기술 혁신이 가져오는 환경적 이익을 측정하고 이를 수치화해 명확한 정부 정책 수립과 기업 투자 결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기업들은 회피된 배출을 통해 다음과 같이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기여할 수 있다. 예컨대 전기차를 판매하는 기업은 내연기관차에 비해 감소한 배기가스 배출량을 기준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할 수 있다. 에너지 효율 등급이 1등급인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가정에서 감소한 전력 소비량을 기준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할 수 있다. 건물 에너지 사용 최적화 솔루션을 개발하는 소프트웨어 회사는 감소한 에너지 수요를 기준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할 수 있다.
회피된 배출의 측정회피된 배출은 일반적으로 3단계로 측정한다. 1단계, 기준 시나리오를 설정한다. 기업의 친환경 제품 및 서비스가 없을 경우 사용될 일반 제품 및 기술이 기준이 된다. 2단계는 기업의 친환경 제품 및 서비스, 기술 및 정책을 적용한 후 실제 발생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한다. 3단계, 기준 시나리오 배출량에서 실제 배출량을 차감해 회피된 배출량을 산출한다.
구체적인 예시를 살펴보자.(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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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사는 2023년 1대당 이산화탄소 10㎏을 배출하는 에어컨을 4대 판매해 이산화탄소 총 40㎏을 배출했다. B사는 2024년 1대당 이산화탄소 2㎏을 배출하는 친환경 에어컨을 출시했다. A사의 일반 에어컨 3대를 B사의 친환경 에어컨으로 교체한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2024년 발생한 사회 전체의 이산화탄소 총배출량은 16㎏(A사 10㎏, B사 6㎏)이다. 2023년과 비교했을 때 2024년 사회 전체의 온실가스 회피된 배출량은 24㎏으로 이는 B사의 온실가스 감축 기여도로 간주할 수 있다. 이는 2023년 이산화탄소 총배출량 40㎏에서 2024년 이산화탄소 총배출량 16㎏을 뺀 값이다. B사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23년 에어컨을 판매하지 않았기 때문에 0에서 2024년 6㎏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친환경 에어컨을 판매해 사회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에 기여했으므로 회피된 배출량은 24㎏이다. A사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23년 40㎏에서 2024년 10㎏으로 30㎏ 감소했으며 회피된 배출량은 없다.
회피된 배출의 활용최근 자사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회피된 배출을 자발적으로 산출해 보고하는 글로벌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회피된 배출량의 산출 및 보고는 투자자, 규제 기관, 소비자에게 기업의 지속가능성 전략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테슬라는 전기차를 통해 내연기관차 대비 연간 350만 t의 온실가스 배출을 회피하고 태양광 패널에서 무공해 전기를 생산해 연간 150만 t의 배출을 회피했다고 밝혔다. 애플은 저탄소 자재 사용, 에너지 효율화, 재생에너지 사용 등을 통해 연간 1500만 t 이상의 온실가스 배출을 방지함으로써 매출 증가가 탄소발자국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그 외 다이어라이트(Dialight), 리뉴파워(Renew Power), 베스타스(Vestas), 아비바(Aveva), 유미코어(Umicore), 위어그룹(Weir Group), 텔레포니카(Telefonaca), 퍼시픽가스앤드일렉트릭(PG&E) 등도 회피된 배출량을 자발적으로 공개했다. (표 3)
기업은 회피된 배출을 공개함으로써 다양한 이점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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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브랜드 차별화가 가능하다. 최근 소비자의 14%가 ESG를 최우선 구매 기준으로 꼽으며 70% 이상의 소비자가 지속가능성을 위해 합리적인 프리미엄(10~25%)을 지불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회피된 배출을 활용해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둘째, 금융 접근성을 확보할 수 있다. 최근 금융회사들이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특정 기업을 제외하는 가장 일반적인 이유로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를 꼽았다. 많은 투자자는 지속가능성을 새로운 투자 기회로 인식하는 만큼 기업은 회피된 배출을 활용해 투자자를 유치할 수 있다. 또 기업은 녹색채권 및 인프라(저공해 에너지 생산, 에너지 효율, 전력망 연결 또는 운송 네트워크)를 인수하거나 자금을 조달하는 등 새로운 지속가능성 관련 금융 메커니즘과 연결할 수 있다.
셋째, 기후 위험을 축소하고 이에 적응할 수 있다. 기업은 기온 상승, 해수면 상승, 기상이변, 자원 부족, 생태계 파괴 등 기후변화로 인해 심각한 물리적 위험과 생태계 붕괴와 관련된 시스템적 위험에 직면해 있다. 실제로 기후변화와 라니냐로 인해 2022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총 2700억 달러의 손실과 1200억 달러의 보험 손실이 발생했다. 기업은 회피된 배출을 활용해 물리적 기후 위험을 완화하고 기후 적응과 관련된 기회를 식별할 수 있을 것이다.
시사점다른 한편 회피된 배출은 아직까지 표준화된 기준과 보편적으로 합의된 내용이 없어 친환경적인 모습으로 포장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그린워싱 우려도 나온다. 특히 스코프3가 국내 ESG 공시 기준에 포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회피된 배출을 논의하는 것이 기존 스코프3 배출 관리를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될 수도 있다.
하지만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갖춘 우리나라 기업들에 탄소중립은 곧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에 기업은 자사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친환경성을 입증하고 이를 근거로 한 마케팅·홍보 등을 추진함으로써 지속가능성에 대한 진정성 있는 진전을 이뤄내야 한다.
그린워싱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기업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그린워싱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한 ‘환경 관련 표시·광고에 관한 심사 지침’을 참고하고 스스로 법 위반 여부를 점검할 수 있는 ‘셀프 체크리스트’를 활용해볼 수 있다. 또 기업 내부적으로 그린워싱 관련 법률, 각종 지침, 가이드라인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직원 교육을 실시하며 내부 컴플라이언스 부서 및 외부 자문사 등의 도움을 받아 그린워싱 여부를 검증해볼 필요가 있겠다.
마지막으로 기업은 회피된 배출을 단지 홍보 수단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이해관계자와의 커뮤니케이션 및 관계 구축 과정에서 자사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노력을 보여주고 고객·투자자·정책 결정자 등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