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조선에 군대를 파병한 것은 일본군이 중국 땅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실리적인 선택이었다. 이를 두고 선조가 ‘재조지은’을 강조하며 명나라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 이유는 전란 극복의 공을 관민이 아닌 자신에게 돌리기 위한 궤변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후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재조지은’의 망령은 병자호란과 상해임시정부의 항일 무력투쟁 등에 영향을 미치며 전략적 사고를 방해했다. 기업도 과거의 잘못된 어젠다가 현재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노영민 주중국 대사가 신임장을 제정하는 자리에서 베이징 인민공회당의 방명록에 적은 ‘만절필동 공창미래(萬折必東 共創未來)’가 굴욕외교를 자청했다는 논란을 빚었다. 왜 이런 논란이 벌어졌을까?
충청북도 괴산군 화양동 서원에는 만동묘(萬東廟)가 있다. 만동묘는 임진왜란 때 조선 파병을 결정한 명나라 황제 신종 만력제(神宗 萬曆帝)와 마지막 황제 의종 숭정제(毅宗 崇楨帝)를 기리는 사당이다. 만동묘란 이름은 만절필동에서 두 글자를 따 온 것이라 사실은 만절필동묘를 의미한다. 만절필동은 중국의 장강(長江)이 굽이굽이 방향을 바꾸며 흐르지만 결국 동쪽에 다다른다는 뜻으로 모든 일이 순리대로 된다, 즉 사필귀정(事必歸正)을 의미한다. 그러나 조선의 선조가 임진왜란이 끝난 후 “만절필동 재조번방(萬折必東 再造蕃邦)”이라는 글을 쓴 이후 만절필동은 제후국 조선이 천자국 명나라에 바치는 변함없는 충절을 의미하게 됐다. 여기서 선조가 조선을 나라(國)가 아닌 번(蕃)으로 낮춰 지칭한 점이 눈에 띈다. 이는 임진왜란 때 명이 천자의 군대를 조선에 보내 일본군을 저지하고 멸망의 위기에 처했던 조선을 구함으로써 결국 나라를 다시 세워 준 은혜(재조지은, 再造之恩)를 잊지 않겠다는 충성의 맹세였다. 이후 중화주의에 입각한 재조지은의 망령은 선조 이래 조선의 정신을 지배하는 근본이 돼 정치, 국방, 외교, 경제, 문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고, 결과적으로 조선의 시야를 좁히면서 몰락의 길로 이끌었다. 또 상해임시정부의 항일 무력 투쟁의 전략에 이어 현재의 외교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음에서 재조지은이 왜 망령인지 그 이유와 그것이 오랜 기간 역사에 미친 영향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최중경 한미협회장은 33년간 고위 관료와 외교관을 지냈고 동국대 석좌교수, 고려대 석좌교수, 미국 헤리티지재단 방문연구원, 한국공인회계사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미 협력을 증진하는 민간 단체인 한미협회 회장과 자선단체 평가 업무를 수행하는 NGO인 한국가이드스타 이사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미국 하와이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저서로는 『청개구리 성공신화』 『워싱턴에서는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 『역사가 당신을 강하게 만든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