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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2. 피버팅, 혼란 최소화하면서 성공하려면

사업 폭넓게 정의하고 실패 땐 빨리 인정
피버팅 대명사 ‘슬랙’도 그렇게 탄생했다

배태준 | 313호 (2021년 0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흔히 피벗의 결과는 사업의 성공일 것이라고 쉽게 간주되지만 계획을 변경해 사업을 재정의하는 피벗에 대한 부담감과 역효과 또한 만만치 않다. 또 피벗을 삐딱하게 보자면 초기 계획의 실패에 따른 일탈 행위로 간주될 가능성도 많다. 하지만 이런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창업자들이 피벗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해관계자들의 비판과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피벗에 성공하려면 1) 사업을 폭넓게 정의하고 2) 큰 틀의 가치를 유지하고 3) 실패하더라도 빠르게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해 신뢰를 잃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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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벗이란?

스마트폰이 없었던 1996년, 팜(Palm)이라는 회사가 파일럿(Pilot)이라는 개인 휴대 정보 단말기(PDA)를 시장에 선보였다. 2년 뒤 겨울, 실리콘밸리의 두 청년이 이 휴대기기에 열광해 급기야 팜 파일럿에 특화된 암호 정보 처리 스타트업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암호 처리 시장은 냉랭했고, 두 청년은 급히 방향을 바꿔 보안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이마저도 신통치 않았다. 이후 이들은 여러 다른 시도와 실패를 거듭하던 차에 정보 대신 돈을 암호화해 하나의 팜 파일럿에서 다른 팜 파일럿으로 현금을 보내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하지만 이 역시 팜 파일럿 사용자가 너무 적어 실패하고 만다. 이들은 다시 한번 이 송금 아이디어를 웹 버전으로 만들어 e메일로 돈을 주고받을 수 있게 했는데, 여기서 마침내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데 성공한다. 이 스타트업이 바로 현재 매출 177억 달러(약 20조4000억 원), 직원 수 약 2만2000명의 대기업으로 성장한 페이팔이다.1

위의 페이팔 사례처럼 제품과 전략에 대한 불확실한 초기 아이디어를 의도적으로 빠르게 바꾸는 것을 ‘피벗(Pivot)’이라고 한다. 원래 피벗의 사전적인 의미는 ‘회전축’으로, 주로 농구 등 구기 종목에서 한 발이 바닥에 닿은 상태에서 좌우로 방향을 틀어 슛을 던지거나 패스를 하는 공격 형태를 일컫는 용어이다.2 피벗이 스타트업에 처음 쓰이게 된 것은 샌디에이고 출신의 연쇄 창업자이자 컨설턴트인 에릭 리스(Eric Ries)가 그의 블로그에 글을 연재하면서부터다.3 당시 벤처캐피털 클라이너퍼킨스(Kleiner Perkins)에 잠시 머물면서 블로그로 인기를 얻었던 리스는 이후 책 『린스타트업(Lean Startup)』에서 피벗을 ‘새로운 가설을 테스트하기 위한 구조화된 노선 교정’으로 정의했고, 린스타트업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피벗이라는 말이 널리 퍼지게 됐다. 4

가설 주도 창업과 피벗

피벗은 린스타트업과 궤를 같이하고 있는 가설 주도(Hypothesis-driven) 창업에서 핵심적인 활동이다.5 가설 주도 창업은 고객의 요구에 꼭 맞는 제품과 서비스를 사전에 미리 알고 시작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출발한다. 이유는 다름 아니라 모든 것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런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않고 사전에 계획이 돼 있다는 이유로 시간과 돈을 들여 제품을 만들었다가는 자칫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는 제품을 출시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따라서 가설 주도 창업 방식은 초기에 복잡한 사업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대신에, 검증되지 않은, 반증 가능한 가설들을 정리해서 비즈니스 모델 캔버스에 그리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고객 개발(Customer Development)이라고 불리는 방식으로 가설을 테스트한다. 쉽게 말하면, 잠재 고객, 파트너, 공급자 등 주요 이해관계자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을 말한다. 이 과정을 거친 후, 스타트업은 빠르게 최소 기능만을 갖춘 프로토타입(MVP, Minimum Viable Product)을 만들어 고객의 실제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런 테스트를 거친 후 고객의 반응을 바탕으로 초기 가설을 검증, 또는 기각하면서 학습을 한다. 만약 가설이 기각됐다면 기존 가설을 수정해 나가는 반복적인 과정을 수행하게 된다. 6 이를 통해 최초 계획했던 모습과 많은 부분이 달라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피벗이다. [그림 1]에 자세한 과정이 묘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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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 주도 창업을 통해 실제로 피벗이 일어나는 모습은 블루리버 테크놀로지(Blue River Technology)의 창업 사례에 잘 나타나 있다. 이 회사는 농업 자동화 기술에 특화된 스타트업으로 트랙터에 머신러닝 엔진을 탑재한 잡초 제거 로봇을 개발했다.7 0.02초 만에 0.635㎡ 반경의 농작물과 잡초를 정확히 구분해 필요한 부분에만 제초제를 살포함으로써 약 90% 비용 절감을 가능케 했다. 이른바 ‘보고, 살포하는(See & Spray) 기술력’을 인정받아 2017년 세계 최대 농기계 기업 존디어(John Deere)로부터 3억500만 달러(약 3500억 원)에 인수됐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 회사가 농업 분야를 염두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2011년 창업자인 호르헤 헤로드(Jorge Heraud)와 리 레든(Lee Redden)은 사실 골프장, 스타디움 또는 공원을 겨냥한 자동 잔디깎이 로봇을 만들 생각이었다.8 이들은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창업자 스티브 블랭크(Steve Blank) 9 가 개설한 린 런치패드(Lean LunchPad)라는 스탠퍼드 MBA 과목을 수강하면서 그들의 사업을 구체적으로 발전시킬 계획이었다. E245라고 불리는 실전형 창업 수업인 린 런치패드는 가설 주도 창업을 강조하는데, 이에 따라 블루리버 테크놀러지의 창업자들은 매주 10∼15명의 잠재 고객을 인터뷰했다. 그 결과 4주 차가 됐을 때 처음 생각했던 골프장은 시장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대신 농장에서 잡초를 제거하는 로봇의 수요를 발견했다. 이에 창업자들은 과감하게 시장을 변경했다. 5주와 6주 차 때는 본격적으로 농장을 방문해 잡초 제거 기술을 테스트하고 당근로봇(Carrotbot)이라는 프로토타입을 개발했다. 동시에 잠재적인 유통 채널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판매상을 통한 판매 방식에서 직접 판매 방식으로 다시 한번 계획을 변경했다. 수업 7주 차에는 농장주들과 다시 한번 심도 깊은 인터뷰를 통해 이번에는 농장에 로봇을 팔려고 했던 계획을 버리고, 필요할 때마다 빌려주고 잡초 양에 따라 요금을 다르게 매기는 방식으로 수익 모델을 바꿨다. 이렇듯 세 번에 걸친 피벗으로 블루리버 테크놀로지는 처음 계획했던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9개월 후 약 300만 달러(약 35억 원)의 벤처 투자를 받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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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태준[email protected]

    한양대 창업융합학과 부교수

    필자는 한양대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미국 루이빌대에서 박사학위(창업학)를 각각 취득했다. 벤처산업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고 동부제철에서 내수 영업 및 전략기획을 담당했다.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뉴욕 호프스트라대 경영대에서 조교수로 활동했고 세계 한인무역협회 뉴욕지부에서 차세대 무역스쿨 강사 및 멘토를 지냈다. 현재 한양대 일반대학원 창업융합학과 주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창업 의지, 창업 교육, 사회적 기업, 교원 창업 및 창업 실패(재도전)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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