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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길러라

박재희 | 55호 (2010년 4월 Issue 2)
중국이 국제 사회에서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후진타오를 중심으로 한 4세대 지도부가 출범한 뒤 중국은 미국과 함께 ‘G2’로 불리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당당히 국제 사회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세계 경제의 중심축으로 성장한 중국은 ‘내 목소리를 내겠다’는 유소작위(有所作爲)의 외교 원칙을 대내외에 표명하고 있다.
 
중국이여! 빛을 숨기고 어둠 속에서 실력을 길러라!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다. 오로지 내실을 채우고 실력을 닦아야 할 때다!’
 
중국이 30년간 개혁 개방 정책을 추진하며 지켜온 원칙이 도광양회(韜光養晦)다. 도(韜)는 ‘감춘다’는 뜻이다. 즉, 빛을 감추고(韜光) 그믐 속에서 실력을 기른다(養誨)는 것이다. 덩샤오핑이 1980년 개혁 개방을 시작하면서 외쳤던 이 원칙이 30년간 중국 외교의 화두였다.
 
도광양회’는 역사적으로도 다양한 맥락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유비를 도와 천하를 도모했던 제갈공명의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의 기본 원칙도 도광양회였다. 지금의 쓰촨성 지역인 촉(蜀) 땅으로 들어가 때를 기다리며 위(魏)나라와 오(吳)나라를 능가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질 때까지는 빛을 드러내지 않고, 오로지 힘을 길러야 한다며 유비를 설득한 원칙이 도광양회였던 것이다.
 
청나라 때 정판교(鄭板橋)도 ‘난득호도(難得糊塗)’라는 말로 이 철학을 계승하고 있다. 잠시 빛을 감추고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전략이다. ‘호도(糊塗)’는 중국어로 ‘후투’라고 불리며, 바보란 뜻이다. 자신의 광채를 남에게 보이지 않고 바보처럼 보이며 때를 기다리는 것은 정말 어려운(難得)일이라는 것이다.
 
상대방의 의도와 모습은 밖으로 드러나게 하고, 나의 의도나 모습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한다(形人而我無形).”
 
<손자병법>도 자신의 모습과 의도를 상대방에게 보이지 말라고 충고하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상대방의 의도는 거울을 보듯이 빤히 알고, 나의 의도는 상대방이 전혀 모를 때 내 힘이 적을 압도하게 된다는 뜻이다. 결국 자신의 의도와 실체를 적에게 노출시키지 않는 사람이 이긴다는 것이다. 이것이 손자가 말하는 시형법(示形法)이다. 시형법이란 상대방에게 내 모습을 자유자재로 보이게 만드는 전략이다.
 
매가 먹이를 채려고 할 때는 날개를 움츠리며 나직이 날고, 맹수가 다른 짐승을 노릴 때는 귀를 세워 엎드리고, 현명한 사람이 움직이려고 할 때는 어리석은 듯한 얼굴빛을 한다.”
 
강태공이 지었다고 하는 <육도(六韜)>라는 병법서에 나오는 이야기다. 결정적인 찬스를 잡기 위해서는 의도를 겉으로 보이지 않아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중국이 오늘날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것도 ‘도광양회’의 정신으로 실력을 키워왔다고 자부하기 때문일 것이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리는 것은 아니냐는 논란도 나오지만, 중국의 위상은 확실히 예전과는 다르다. 미국과 각을 세우며 대립하기도 하고 제3세계 국가와의 공조와 자원 외교를 통해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도 키워나가고 있다. 지난 30년간은 중국이 할 말을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칼을 칼집에 넣고 내실을 쌓은 ‘도광양회’의 기간이 있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작위(作爲)는 도광(韜光)이 있은 후에 할 일이다. 도광양회와 유소작위의 연관 관계를 잘 설명해주는 정판교의 시를 감상해보자.
 
聰明難糊塗難(똑똑해 보이는 것도 어렵지만 바보처럼 보이기도 어렵다). 由聰明而轉入糊塗更難(총명한데도 바보처럼 보이기는 더욱 어렵다). 放一着退一步(한 가지 내려놓고 일보 뒤로 물러나면), 當下心安(하는 일마다 마음이 편할 것이다). 非圖後來福報也(그러면 의도하지 않아도 나중에 복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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