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스웨덴 가구 업체 이케아가 70년간 선보여온 종이 카탈로그는 다양한 인테리어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어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합니다. 그런데 지난해 이케아는 미국 시장에서 종이 카탈로그 발행을 중단한다고 발표한 데 이어 최근 오디오북 형태의 ‘듣는 카탈로그’를 내놓았습니다. 낭독자가 300페이지에 가까운 카탈로그를 한 장 한 장 설명하느라 무려 4시간이 소요되는 이 오디오 콘텐츠는 팟캐스트 형식으로 스포티파이, 오더블 등을 통해 공개됐습니다. 이케아 측은 이 콘텐츠에 대해 “팬데믹 기간, 오디오북과 팟캐스트 청취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집에서만 지내기 지루한 이들을 위해 색다른 콘텐츠를 고민한 결과”라고 설명했습니다. 최근 희곡을 오디오 드라마 형태로 제작해 공개하고 있는 국내 극작가 동인 ‘괄호’는 귀로 듣는 오디오 콘텐츠를 ‘귀대면’으로 표현했는데 비대면 시대의 귀대면 콘텐츠가 상업적 용도로도 적극 활용되게 된 셈입니다.
『티핑포인트』 『아웃라이어』 등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 말콤 글래드웰과 같은 지식인들이 작품 발표와 독자 소통을 위한 주 수단으로 오디오를 선택했다는 점도 눈길을 끕니다. 글래드웰은 통상 인쇄본의 책이 나온 뒤 반응을 보고 오디오북을 만드는 출판계 관행을 깨고 최신작 『폭격기 마피아(The bomber Mafia)』를 먼저 오디오북 프로젝트로 기획했습니다. 최근 그는 아예 팟캐스트 회사를 차려서 오디오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글래드웰은 “우리는 눈으로 생각하고 귀로 느낀다(We think with our eyes and feel with our ears)”라며 “독자들이 보이는 단어가 아닌 들리는 소리를 통해 이야기가 주는 힘을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팟캐스트, 오디오북 등으로 최근 몇 해간,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크게 늘어나긴 했지만 오디오 콘텐츠가 전 세계적 신드롬으로 부상한 된 계기는 ‘클럽하우스’입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시대, 모처럼 찾아온 교류의 장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격하게 이 서비스를 반기자, 이를 나 혼자 소외될까 두려워하는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현상으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클럽하우스가 최근 주춤해지면서 오디오 SNS는 반짝인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흘러나왔습니다. 하지만 페이스북, 트위터 등 대형 SNS 전문 기업들이 이 시장에 잇따라 출사표를 던지면서 이미 새로운 생태계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또한 애플이 지난해 AI를 활용한 팟캐스트 추천 서비스 기업을 인수하는 등 오디오 플랫폼 시장 내 기술, 서비스 전쟁도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당분간은 ‘귀대면’ 시대가 대세일 수밖에 없는 이유들입니다.
지난 3월 클럽하우스 대화방에 등장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는 오디오 콘텐츠 시장이 폭발하는 원인에 대해 “오디오는 비디오와 달리 멋지게 보이려 준비할 필요가 없고 화면을 안 봐도 돼서 멀티태스킹에 유용하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또한 소셜미디어 분석가인 제레미아 오양은 오디오 SNS의 인기를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이상적인 상태’를 가리키는 ‘골디락스(Goldilocks)’로 표현했습니다. “격리 생활 중인 이들이 문자로만 소통하는 것은 비인간적이고 (impersonal), 화상 시스템은 사생활을 침해당하는 듯해서 부담스럽다(invasive). 그래서 오디오가 딱 좋다”는 의미입니다.
오디오는 누군가에겐 ‘추억’, 누군가에겐 ‘감성’입니다. 영국 밴드 ‘버글스’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란 노래가 히트한 1980년 초와 달리 그 시대 이후 태어난 MZ세대는 오디오를 오히려 신선하고 감성적인 매체로 여긴다는 점은 오디오 콘텐츠의 미래 시장성을 긍정적으로 점치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됩니다.
소리가 감성과 정서를 전달하는 가장 강렬한 커뮤니케이션 도구인 것은 진화심리학적으로도 검증된 바 있습니다. 팬데믹을 함께 견뎌 나가면서 인류애와 연대 의식이 극대화된 시기인 만큼 가장 집중력 있게 진정성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소리의 매력이 부상한 것이라는 해석도 눈길을 끕니다. ‘Voice, be ambitious.’ 목소리가 산업이 되는 시대, 야심만만하게 비즈니스 전략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김현진 편집장•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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