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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모형 스핑클 7

의도 관찰 공유, 통찰에 눈뜨는 3가지 태도

신병철 | 74호 (2011년 2월 Issue 1)

 
편집자주 탈레스, 아리스토텔레스, 갈릴레오, 레오나르도 다빈치, 에디슨….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놀라운 통찰로 표면 아래의 진실을 발견했다는 점입니다. 10년간 통찰력 분야를 연구한 신병철 WIT 대표가 8000여 개의 사례를 분석해 체계화한 ‘스핑클’ 모형을 토대로 기업인들의 통찰력을 높이는 실전 솔루션을 소개합니다.
 
특별한 세탁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세탁기는 문을 앞으로 여닫는다. 영국 웨일스에 살고 있는 리즌(Reason)이라는 남자는 세계 최초로 서랍처럼 앞으로 여닫히는 세탁기를 개발했다. 그 디자인과 사용방법을 보면 혁신적인 사고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어떻게 리즌은 이런 세탁기를 생각하게 됐을까? 리즌은 운동을 좋아했다. 운동을 하고 나면 땀에 젖은 옷을 세탁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더 편리하고 효과적인 세탁이 가능할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고민의 과정 중 그는 수많은 세탁기 사용자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그리고 소비자 행동 중에서 몇 가지 의미 있는 발견을 하게 된다. 그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세탁물을 넣고 뺄 때면 다리를 쪼그려 앉아야 한다.
 
2.세탁조 안에 무엇이 남아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3.세제를 얼마만큼 넣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이처럼 세탁할 때 공통적으로 겪는 소비자들의 불편함을 발견한 리즌은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결론은 위에서 세탁물을 넣는 기존의 세탁기와 드럼세탁기를 결합하는 방법이었다. 이 세탁기는 문이 앞에서 여닫히므로 세탁물을 넣고 뺄 때 다리를 쪼그려 앉을 필요가 없다. 세탁물을 투입하고 꺼내기도 여타 세탁기에 비해 훨씬 쉽다. 더군다나 무게를 자동 감지해 세제량을 알아서 조절해 주므로 주부의 일손도 덜어준다. 그 결과 그림과 같이 이전에 없던 전혀 새로운 세탁기가 탄생하게 된다. 이 제품은 2009년 2월 ‘이전에 만나본 적 없는 최고의 세탁기’라는 슬로건과 함께 시장에 출시돼 높은 관심 속에 전량 경매(www.reasonwashingmachine.com)로 판매되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 세탁기가 얼마나 훌륭한지는 잘 모른다. 워낙에 소량 생산이고 경매로 판매하기 때문에 아직 우리가 제대로 성능을 시험하고 그 결과를 평가하는 데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탁기는 통찰의 관점에서 매우 유용한 사례임에 틀림없다. 리즌의 관점은 지금까지 세탁기를 만들고 개선하고자 하는 수많은 엔지니어들의 생각과 달리 매우 독특하다. 리즌은 어떻게 이런 세탁기를 생각하게 됐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리즌은 △충분한 의도 △행동의 관찰 △경험의 공유라는 3가지를 수행했다. 즉,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충분한 의도를 가지고 소비자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경험을 공유해 훌륭한 통찰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리즌의 혁신적 세탁기 발명처럼 충분한 의도와 행동의 관찰, 경험의 공유, 이 세 가지가 잘 녹아있는 흥미로운 사례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여보, 아버님 댁에 보일러 하나 놓아드려야겠어요”라는 카피로 유명한 경동보일러 광고다.
 
이 광고의 아이디어를 기획한 사람은 우리나라 최초의 광고 기획가(CM Planner)이자 대한민국 광고인으로는 유일하게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1세대’ 광고인인 이강우 선생이다. 어느 날 그가 경동보일러로부터 TV 광고 기획 의뢰를 받았다. 그는 제품의 특장점을 꼼꼼히 살펴보고 보일러 사용자들을 면밀히 관찰했다. 좋은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보일러 판매상도 몇날 며칠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딱히 맘에 드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재래시장의 보일러 가게에서 신혼부부를 발견하게 된다. 이들은 시골에 계신 부모님의 오래된 연탄보일러를 바꿔주러 온 부부였다. 이강우 선생은 우연히 이들 부부의 대화를 듣게 된다. “여보, 날도 추워지는데 시골에 계신 아버님께 보일러나 하나 바꿔 드리자” “그래, 그럽시다. 나이도 많으신데 춥게 지내시게 할 수는 없으니까…” 시골에 계신 부모님 댁에 보일러를 바꿔드리려는 효자, 효부의 얘기였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무심코 지나칠 말이었지만, 며칠간 어떻게 아이디어를 낼까 고민을 거듭하던 이강우 선생은 안 풀리던 문제가 번뜩 풀리는 순간을 맞게 된다. 그리고는 시안을 만들고 협의해 TV 광고를 만들었다. 이게 바로 지난 10여 년간 이어져 내려온 경동보일러 광고, “여보, 아버님 댁에 보일러 하나 놓아드려야겠어요” 편의 탄생 히스토리다. 이 광고는 시골에 부모를 두고 있는 자식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고, 그 결과 경동보일러는 몇 년 치 재고 분량까지 모두 파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프로젝트마다 충분한 의도를 갖고 소비자의 행동을 관찰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걸 원칙으로 삼는 이강우 선생의 광고 기획 철학이 빛을 본 사례다.
 
충분한 의도
무언가 훌륭한 결과물을 이뤄내는 사람들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들은 이 얘기에 동의할 것이다. 왜냐하면 성공은 그 목표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충분한 의도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대개 실패하는 사람은 적당히 노력하다 안 되면 포기한다. 그러나 성공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의도에 의해 이뤄진다.
 
우리는 지금 통찰을 다루고 있다. 통찰이란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표면 아래의 진실을 발견하는 일이다. 표면 아래의 진실을 발견하는 게 쉬웠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다 아는 것 같아도, 막상 해보면 어떤 모순이 숨어있고 어떤 결핍이 내재돼 있는지 좀처럼 파악해내기 쉽지 않다.
 
이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게 충분한 의도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모순을 발견하고 더 나아가 모순의 핵심 이유를 밝혀 표면 아래의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충분한 의도가 필요하다. 충분한 의도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이 일을 성공시키고야 말겠어”라는 자신과의 약속이면 충분하다.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하려거든 충분한 의도를 먼저 가져야 한다.
 
행동의 관찰
통찰의 열매를 맛보기 위해 필요한 두 번째 조건은 소비자들의 말을 듣기보다 행동을 관찰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도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불편해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도 모를 때가 많다. 왜냐하면 늘 익숙한 대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버드 대학의 잘츠만 교수에 의하면 소비자의 욕구 중 말로 표현되는 것은 겨우 5% 정도라고 한다. 대부분은 자신의 불만사항이나 욕구를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
 
소니가 1980년 워크맨을 처음 만들고 신제품 수용도 조사를 했다. 이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평가를 받아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누가 오디오를 들고 다니면서 듣겠습니까? 이건 난센스입니다”. 그러나 소니는 워크맨을 대량 생산해 세계적인 히트 상품을 만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사람들은 점점 휴대하기 편하며 가볍고 작은 사이즈의 물건을 사용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이미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휴대하고 다녔고 더 다양한 곳에서 음악을 듣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소비자들은 말은 안 했지만, 이미 행동으로는 휴대용 오디오를 갈망하고 있었다. 오디오 기기는 크고 웅장한 거치식 기기인 게 당연하다는 고정 관념이 소비자 의식 속에 박혀있기는 했지만 실제 행동은 달랐던 것이다. 소비자의 변화된 행동을 통찰한 소니는 이에 따라 겉으로 드러난 소비자들의 반응, 즉 소형 휴대용 오디오는 난센스라는 소비자들의 반응에 굴하지 않고 개발에 착수해 20세기 최고의 히트 상품 중 하나인 워크맨을 탄생시키게 된다.
 
그렇다면 통찰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소비자들의 사용 행동을 관찰하고, 그 곳에서 그들도 아직 인식하지 못하는 불편함, 불만족 요인, 결핍을 찾아 해결해줘야 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이야기다. 소비자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야말로 통찰에 접근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통계학의 기본개념에 중심극한정리(Central Limit Theorem)라는 게 있다. 대략 개체의 수가 30개를 넘으면 그들의 특성은 정규분포를 따르게 된다는 이론이다. 따라서 30명 정도의 의견과 반응만 차근차근 살펴봐도 대부분의 결핍을 찾아내는 데 문제가 없다. 특히 대한민국은 동질성이 강한 나라다. 지역별로 트렌드가 다르지 않고 동일한 트렌드를 쫓아가는 나라다. 미국이라면 인종도 다양하고 출신국가도 제각각이라 세분 시장별로 따로 따로 물어봐야겠지만 한국은 미국에 비하면 하나의 세분시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 30명만 관찰하면 충분하다. 30명의 행동과 의견만 제대로 관찰하면 거의 정답을 알아낼 수 있다.
 
경험의 공유
필자가 미국 남가주대(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마케팅 수업을 받을 때의 일이다. 지도 교수가 학생들에게 “귀사의 고객들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해 주십시오”라고 물었다. 이 질문에 학생들은 자신의 고객에 대해 각자의 관점대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학생은 자세하게 오랫동안 얘기하고, 어떤 학생은 짤막하게 상식적인 수준의 얘기를 했다. 한참동안 고객에 대한 설명을 들은 지도교수는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다.
 
“여러분들은 고객의 경험을 공유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고 그들의 결핍을 이해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고객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지 아닌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고객과의 경험을 제대로 공유하고 있다면 아무런 자료 없이도 한 시간 이상을 얘기할 것입니다. 반대로 고객과의 경험 공유가 돼 있지 않다면 5분을 넘기기 힘들 것입니다. 아무런 자료 없이도 한 시간 이상 여러분의 고객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진정한 고객 전문가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얘기다. 고객과의 경험이 공유되지 않으면 그들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없고 그들의 필요를 원천적으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경험 공유라야 통찰적인 모순과 결핍의 발견이 가능해진다.
 
통찰에 눈 뜨는 비밀은 단순하다. 충분한 의도, 행동 관찰, 경험 공유의 세 가지를 수행하는 것이다. 성공의 열쇠인 통찰을 얻고 싶다면, 이 세 가지를 몸에 익히면 된다.
 
 
 
 
신병철 WIT 대표 [email protected]
 
신병철 대표는 고려대 대학원에서 마케팅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저명 학술지인 <Journal of Marketing Research>에 브랜드 시너지 전략과 관련한 논문을 실었다. 브랜드와 통찰에 대한 연구 및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통찰의 기술> <브랜드 인사이트> 등의 저서가 있다. 시맨틱 리서치 전문회사 WIT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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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병철

    - (현) 브릿지컨설팅 대표 (Brand Consulting Agency)
    - 숭실대 경영학과 겸임교수 (2005~현재)
    - 고려대 경영대/경영대학원,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원, 외국어대학교 경영대등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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