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자본주의’ 라젠드라 시소디아 교수 인터뷰
#1. 미국 펩시는 올해 7월 중대 발표를 했다. 2012년까지 전 세계의 초등학교에서 당분 음료를 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또 생과일주스와 타조티(tea), 트로피카나와 같은 건강 음료 제품군을 3배로 늘리고, 음료에 함유된 나트륨은 2015년까지 25% 줄이겠다고 했다. 정크푸드의 대명사로 꼽히는 콜라를 주로 판매했던 기업이 파격적인 이미지 변신에 나선 셈이다.
#2. 미국 유기농 식품 체인인 홀푸드는 학교를 대상으로 8월부터 ‘샐러드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홀푸드 반경 50마일 이내의 학교의 신청을 받아 샐러드바를 무료로 설치해주고 있다. 음식과 각종 시설은 홀푸드의 고객과 협력업체가 기부한다. 이런 활동이 당장 수익으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린이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먹여 어릴 때부터 올바른 식습관을 길러준다는 측면에서 사회적 의미가 크다. 300개의 학교에 샐러드바를 만드는 게 목표인데 벌써 272개 학교분(9월 현재)이 준비됐다.
이런 활동들은 직접적인 매출 향상을 위해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수단을 활용, 소비 욕망을 부추기는 데 집중했던 과거 마케팅 관행과 큰 차이가 난다. 하지만 펩시나 홀푸드 모두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려면 필수적인 활동이라고 입을 모은다.
'마케팅 석학’으로 꼽히는 라젠드라 시소디아 미국 벤틀리대학 마케팅 교수는 최근 DBR과의 인터뷰에서 “고객의 삶을 개선하고 고객을 기분좋게 하는 마케팅이야말로 고객의 마음을 사서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마케팅 교수로서의 좌절감을 언급하며 “마케팅은 쿠폰을 뿌리는 등 야단법석을 떨면서 소비자를 낚는(hoax) 활동이 아니다. 고객이 욕망하는 것이 아닌 필요로 하는 것을 소비하게 유도하는 게 진정한 마케팅이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적으로 소비자뿐 아니라 직원, 사회,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들의 이익 균형점을 찾아내서 이들의 이익을 정렬(align)시켜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소디아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한다.
나쁜 마케터와 좋은 마케터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마케팅을 20여 년간 가르치면서 매년 좌절을 느낀다. 판사나 소방관, 경찰관과 같은 직업들은 본질적으로 고귀하다. 하지만 ‘마케터들도 과연 이런 직업군에 속할까’라고 자문할 때 그렇다고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마케터를 떠올리면 과장하고, 사람들이 필요하지 않은 것을 사게 하는 사람이라고 오해한다. 실제로 2004년 전문가그룹 1000명과 일반 소비자 1000명 등 모두 2000명이 대상으로 마케팅에 대한 연구조사를 실시했다. 마케팅이라는 단어를 접하면 무엇이 생각나냐는 질문에 대해 일반인들은 ‘텔레마케터처럼 성가시다’ ‘마케팅은 뻥이다’ ‘광고가 지나치게 많다’ 등의 답변을 내놓았다. 마케팅에 대한 부정적인 일반인이 86%에 달했다. 전문가나 기업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이들은 ‘마케터들이 회사의 비용을 많이 쓰면서도 마케팅 효과는 적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나는 뭔가 아이러니한 게 있다고 직감했다.”
마케팅 비용이 느는데도 효과가 커지지 않는 이유는?
“마케팅이 고객에게 회사측의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 제품을 고객 당신이 쓰면 당신은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인기가 많아질 것이다, 멋져질 것이다 등 달콤한 유혹을 퍼붓는다.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마케팅에 대한 투자비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제조나 경영 부문에 대한 투자는 줄고 있다. 실제로 판매 비용은 1978∼1996년 30% 이상 늘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특히 광고비는 같은 기간 50%나 급증했다. 부정적인 효과가 늘고 있는데 도대체 왜 마케팅 비용을 늘리는 것일까? 마케팅의 상위 목적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다시 해야 할 때가 됐다.”
마케팅의 최종 목적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소비자의 삶의 질(quality of life)을 개선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고객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게(real needs)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원하는 것(wants)이나 욕망하는 것(desires)이 아니다. 우리는 원점으로 돌아가서,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을 되짚어 봐야 한다. 마케터는 사람들이 필요(needs)로 하는 상품을 원하도록(wants) 이끌어야 한다. 예컨대 마케터는 사람들이 담배나 알코올, 심지어 립밤에 중독되게 할 수 있다. 립밤도 자꾸 쓰면 입술이 건조해져서 립밤을 더 필요로 한다. 제품 사용 과정에서 또다시 새로운 수요가 만들어지도록 설계된 셈이다. 마케팅은 중독이나 욕망을 창조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가 정말로 필요한 상품을 사게 하는 것이다. 마케팅은 쿠폰을 뿌리는 등 야단법석을 떨면서 소비자를 낚아서도(hoax) 안 된다. 필요하지 않은 수요를 창출하는 게 아니라,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태도를 바꾸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와 관련한 사례를 소개해달라.
“맥도날드가 대표적인 사례다. 맥도날드의 탄생은 과거 비싸지 않으면서도 청결하고 믿을 만한 음식이 마땅히 없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여행할 때에는 언제 나올지 예측할 수 있고, 편리한 음식이 필요했다. 맥도날드는 당시 시대의 이런 필요에 잘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비만 문제가 제기될 정도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맥도날드는 거대 점포망과 수십 억 달러의 마케팅 비용을 무기로 사람들의 입맛을 바꾸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장난감을 주면서 햄버거 세트를 파는 해피밀을 생각해보라. 좋지 않은 마케팅이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불에 구워 당근을 곁들인 치킨이나 유기농 커피 등 건강에 좋은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마케팅은 고객을 ‘좇는(following)’ 게 아니라 고객을 ‘이끌어야(leading)’ 한다. 올바른 수요를 창출해 소비자의 입맛을 점차 올바른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맛과 영양은 트레이드 오프(trade-off·상충 관계)라는 고정 관념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 맛있으면서도 영양가 높은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진정한 마케팅은 이런 트레이드 오프를 깨뜨리는 것이다.” 발볼이 넓은 운동화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뉴발란스 스니커즈의 탄생은 180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보스턴에서 영국인 이민자 윌리엄 라일리는 신발 착용감을 향상시키기 위해 운동화 내부에 아치 모양의 받침을 깔았다. 이후 반응이 좋자 그는 발에 문제가 있는 사람을 돕기 위해 신발을 만들기로 했다. 이후에도 신발 전문가를 지속적으로 고용해 발의 편안함을 살리는 기본 정신을 그대로 유지했다. 또 뉴발란스는 아웃소싱하지 않고 미국에서도 운동화를 제조한다. 임금이 비싼데도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을 통해 이런 정책을 유지할 수 있었다. 뉴발란스의 광고에는 흔한 운동화 광고와 달리 남자다움이 없다. 오히려 중년기를 강조한다. 정신적 에너지가 충만한 중년이 된 베이비붐 세대의 가치를 더욱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젊고 남성적이면서 자기애가 강한 사람에게 어필하는 나이키의 광고와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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