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DBR이 기업을 운영하거나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계신 독자 분들에게 상담을 해드립니다. 최명기 원장에게 e메일을 보내주시면 적절한 사례를 골라 이 연재 코너에서 조언을 해드릴 예정입니다. 물론 소속과 이름은 익명으로 다룹니다. 이번 글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가상의 인물들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내공과 맷집
내공과 맷집이라는 말이 있다. 내공은 상대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낄 때 쓰는 말이다. 맷집은 시련을 당했을 때 얼마나 그것을 잘 견디는지를 나타낸다. 내공이나 맷집이 얼마나 강한지는 시험이나 출신학교를 통해서는 알 수 없다. 맷집과 내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인물이 있다. 바로 애플의 CEO인 스티브 잡스다.
스티브 잡스는 입양아다. 자식의 성격이 어디까지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고 어디부터가 보고 배운 것인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주제다. 흔히 이를 ‘본성 대 양육(Nature versus Nurture)’ 논쟁이라고 부른다. 태어날 때의 기질을 무시할 수 없지만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형제들의 성격이 제각각인 것을 보면 자라는 과정에서 보고 배운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스티브 잡스의 양부모가 그를 사랑하고 아꼈던 것은 틀림없지만 잡스는 아마도 자신과 양부모가 뭔가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자랐을 것이다. 그러한 인식이 그를 더욱 괴짜로 만들었을 수도 있다. 양부모와 일체화하면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잡스는 선(禪)을 통해, 그리고 인도 여행을 통해 자신을 찾고자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고민하던 잡스는 애플이 성공하면서 “나는 애플의 창업자다”라고 스스로를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됐다.
사람은 어렸을 때 “나는 아버지 OOO와 어머니 OOO의 자식이다”라는 형태로 규정된다. 성인이 돼서는 “나는 누구의 자식이다”가 더욱 강화되기도 하고, 때로는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기도 한다. 나중에 자신이 이루어낸 것들이 쌓이면서 자부심도 강해진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창업하면서 “나는 애플의 창업자다”라는 자아정체감을 확립했고, 이러한 자아정체감을 빼앗기지 않으려 애썼다. 이러한 노력이 두드러진 나머지 젊은 날의 스티브 잡스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독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잡스에게 애플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한 회사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가수에게는 노래가 가족들에 버금가는 애착의 대상이다. 스티브 잡스의 마음에서 애플은 가족에 버금가는 애착의 대상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어렸을 때 해외에 입양된 이들 중 성인이 된 후 부모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스티브 잡스에게 유명해진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생부 및 생모가 어디에선가 자신을 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따라서 스티브 잡스에게는 언론의 관심을 끄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언론에 노출되면 TV에 나오는 스티브 잡스를 생모 생부가 보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중의 시선 속에 부모의 시선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애플은 그러한 시선을 집중시키는 수단이었다.
권위에 의해 지배받지 않은 사람의 행동에는 장단점이 있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판단이 들면 남들이 반대해도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일 수 있는 추진력이 장점이다. 반면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취약하다. 자신도 옳고 남도 옳다는 생각을 하기 힘들다. 따라서 갈등을 일으키고 이러한 갈등은 스스로를 불안하게 한다. 20대의 스티브 잡스에게는 불안한 순간, 자신을 위로하고 제어해줄 만한 마음속 대상이 없었다. 잡스는 회사를 경영하기보단 회사를 지배하기 원했다. 애플을 홍보하기보단 자신을 홍보하기 원했다. 결국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난 것은 장기적으로 잡스를 위해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만약 잡스가 당시 계속해서 애플에 머물렀다면 재기불능의 상태로 몰락했을 수도 있다.
1985년 30세의 나이에 애플을 떠난 스티브 잡스, 그는 40대에 애플에 복귀했다. 공격적이고 지배적인 잡스의 성향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에 사람들에게 부담스럽게만 느껴지던 자신의 강점을 매력으로 변화시켰다. 애플을 떠나 있었던 10년 사이에 잡스에게 어떤 일이 있었기에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CEO로 바뀐 것일까?
고난의 세월은 성공의 밑거름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떠나 있는 동안 사실 그는 변변한 수익을 올리지 못했다. 매킨토시를 능가하는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넥스트라는 컴퓨터 회사를 만들었지만 판매는 신통치 않았다. 나중에 애플로 복귀한 후에는 자신의 생각과 시장의 방향을 잘 조화시킨 그였지만 넥스트에서는 항상 시장과 엇박자로 놀았다.
잡스의 가장 커다란 성공 중 하나였던 픽사 역시 처음부터 실사(實寫) 만화영화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픽사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팔 생각이었다. 픽사의 프로그램을 팔기 위한 홍보용 실사만화를 제작한 것이 시작이었다. 홍보용 영상이 단편 만화영화로 이어지고, 단편 만화영화가 장편 만화영화로 이어졌다.
이 10년 동안 스티브 잡스의 개인적 삶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자신의 생모 생부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양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으면서도 뭔가 자신은 다르다는 느낌을 갖고 살았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키우면서 세상이 보다 더 익숙한 곳으로 바뀌었다. 더 이상 남과 다투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시킬 필요가 없었다. 잡스의 마음속에서 내적인 변화가 일어나면서 기업가로서 그의 능력도 변했다.
특히 10년 동안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는 맷집이 강하고 내공이 강한 기업인으로 성장했다. 넥스트와 픽사는 누가 뭐래도 자신의 회사였다. 손해가 날 때마다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가야 했다. 넥스트와 픽사가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체면이 깎이는 일이었다. 그런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면서 잡스는 회사를 경영하는 어려움에 익숙해졌고 자신감도 얻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하면서 넥스트의 판매 대가로 받은 애플의 주식을 팔아치운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잡스 본인조차 애플의 미래에 확신이 없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필자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넥스트와 픽사를 경영하면서 잡스는 자신이 소유하는 회사를 책임지면서 경영하는 것이 지긋지긋해졌을 수 있다. 다시 복귀한 애플에서는 돈을 벌기보다는 새로운 삶을 살면서 확보한 자신만의 경영 능력을 펼쳐 보이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지 않았을까. 살다보면 때때로 지나간 인연들을 돌이켜보게 된다. 미숙한 젊은이였을 때 만났다가 어쩔 수 없이 헤어진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지금 다시 만난다면 잘 해볼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잡스에게 애플은 어쩌면 그러한 대상이었을 수도 있다.
흔히 스티브 잡스의 경영을 창조경영이라고 하지만 필자는 압박경영이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만들도록 직원들을 압박했다. 특히 디자인에 대해서는 디테일한 부분까지 집착했다. 압박은 당하는 사람뿐 아니라 압박을 가하는 사람에게도 큰 스트레스다. 압박축구가 엄청난 체력을 요하듯 압박경영 역시 엄청난 정신적 힘을 요구한다. 필자는 그것을 내공 혹은 맷집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스티브 잡스처럼 고난의 시간을 견뎌낼 수만 있다면 누구나 의미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놀라운 지능과 배짱을 갖고 태어난 사람도 있다. 큰 고통없이 승승장구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인생의 사이클에서 끝없이 상승곡선만을 경험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상승과 하락, 급등과 급락을 겪게 된다. 고난의 세월은 누구나 피할 수 없다. 고난의 세월을 통해 맷집과 내공을 키운다면 고난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성공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스티브 잡스처럼 자신의 가정을 꾸린 것과 같은 개인적인 변화가 직장생활이나 사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사업이나 회사일이 너무 안 풀릴 때는 과거와 다른 방향으로 개인의 발전을 모색하는 것도 슬럼프를 벗어나는 또 다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