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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목고 잡는 공주 한일고

남자만 뽑는 허허벌판 기숙학교, 핏맞는 학생들, 스스로 강한 리더가 되다

조진서,연은모 | 164호 (2014년 1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HR

 

‘특목고 잡는 자율고한일고의 성공 비결

1)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기숙학교

2) 스파르타식 아닌 자율주도형 면학 분위기 형성

3) 단체생활, 자율학습에 맞는 학생을 뽑기 위해 1년에 걸친 철저한 필터링

 

 

충청도는 사람도, 산과 들도 둥글둥글하다.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거쳐 천안논산간고속도로를 타고 30분 정도 가다가 정안IC를 빠져나가면 충청남도 특유의 올록볼록한 구릉 지형이 펼쳐진다. 그 안에 논밭과 마을이 알알이 박혀 있다. 자율형 일반고인 한일고등학교는 인구 약 5000명의 정안면 마을에서 다시 1㎞ 정도 간선도로를 따라 산속으로 들어간 곳에 있다.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지역의 학교들과 구분하기 위해 흔히공주 한일고라 불리지만 실제 위치는 공주시내에서 20㎞ 떨어진 시골이다.

 

 

산과 냇물, 논밭에 둘러싸인 시골학교지만 명성은 전국적이다. 전국 일반고 중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오랫동안 이름을 알려왔다. 최근 한일고는특목고와 자사고도 이기는 일반고로 또 한번 언론에 보도됐다.

 

한 국회의원이 교육부로부터 2014학년도 대입 수학능력시험 성적자료를 입수해 학교별 성적을 발표했다.1 전국 1722개 교의 2013년 수능 성적을 비교한 이 자료에서 국어와 수학, 2개 영역의 성적이 상위 2개 등급 안에 드는 학생의 비율을 뽑아봤다. 예상대로 상위 50개 중 외국어고, 과학고, 국제고 등 특목고가 29, 자사고가 10개였다. 그런데 한일고는 일반고인데도 불구하고 쟁쟁한 특목고와 자사고를 제치고 용인외고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 1)

 

신현보 교장

 

 

사실 한일고는 글자 그대로의일반고는 아니다. 특목고나 자사고처럼 다른 학교들이 학생을 선발하기 전에 전국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골라서 뽑을 수 있는 이른바자율형 일반고(자율고)’. 똑똑한 학생들만을 받아 입학시키니 대학 진학 성적이 어느 정도 좋은 건 당연하다.

 

그런데 자율고 중에서도 한일고는 독보적이다. 자율고도 다른 일반고처럼 교육부가 정해주는 일반 교과과정을 따라야 하고 예산과 등록금 역시 교육부의 가이드라인을 지켜야 한다. 자사고처럼 학교 마음대로 등록금을 많이 걷을 수 없다. 따라서 자율고 학부모의 부담은 상위권에 있는 특목고, 자사고 학부모에 비해 월등히 적다. 한일고의 경우 2014년 학생 1인당 비용은 수업료, 기숙사비, 식비, 방과 후 수업료 등을 포함해 월 90만 원선이다. 방학을 고려하면 연간 1000만 원 미만이 들어간다. 이에 비해 기숙형 학교의 대명사인 강원도 횡성의 민족사관고는 연간 학생 1인당 비용이 2200만 원이다.2 기숙형이 아닌 통학형 특목교의 경우는 이보다 적게 들지만 사교육비와 식비 등을 생각하면 한일고만큼의 비용 대비 성적을 내는 학교는 대한민국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골에 있는 자율형 고등학교가 특목고와 자사고보다 효율적으로 운영되며 수능 1, 2등급 비율 전국 2위라는 우월한 성적을 낼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 비결을 듣기 위해 DBR이 한일고를 찾았다. 전교생이 500명도 안 되는 작은 학교지만 작은 대학교 캠퍼스만큼이나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었고, 교정에서는 인조잔디가 깔린 축구장 너머로 맑은 시냇물과 아늑한 앞산이 바라다 보였다. 마침 중간고사 기간이라 학생들은 대부분 자습 중이었다.

 

‘한국의 이튼스쿨을 꿈꿨던 설립자

한일고는 한의사였던 현제 한조해 선생이 세운 학교다. 함경남도 출신인 그는 월남해 서울 남산 아래 있는 후암동에한일한의원을 차렸다. 이 학교 신현보 교장에 따르면 창립자는 독학으로 한의학을 공부했으며 자격증을 따기 위해 10번 이상 시험을 쳤을 정도로 우직한 사람이었다. 교육에 뜻이 있었던 그는 한의원으로 모은 200억 원을 들여 1985년 한일학원을 세우고 1987년 한일고를 개교했다. 학년당 5학급의 작은 학교였다.

 

1997년 작고한 설립자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충남 정안면 일대를 선택한 이유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모습을 하고 있는 풍수 때문이었다고 한다. 신 교장은 이 지역이봉황새가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이며 동네 이름은 아홉 정승이 나온다는 뜻의 구작골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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