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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조직은 ‘자율’을 먹고 큰다

한근태 | 323호 (2021년 0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제조업이 주축을 이루는 한국에서 연구개발은 기업의 기본이 되는 일이다. 연구 조직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연구원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연구원들이 몰입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구축해야 한다. 연구원들은 자율적인 분위기를 선호하고, 연구 방향이 제대로 잡혔을 때 무섭게 집중한다. 연구소에서 자율적인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연구원들이 스스로 연구 과제를 찾아내고, 관심 있는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환경과 제도를 조성해야 한다. 연구 조직의 목표 설정은 효율보다 효과를 관리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연구 조직의 리더들은 열정과 전문 지식을 갖춰야 하며 타인의 역량을 동원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한국을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산업은 무엇일까?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배터리 산업 등이 아닐까?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이미 강국 반열에 올랐고, 자동차 배터리는 현재 강국을 향해 진군 중이다. 그런데 세계에서 인정받는 자동차 배터리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어떤 과정을 거쳤고, 얼마나 많은 돈과 땀과 눈물이 들어갔을까? LG화학 기술연구원을 이끌었던 유진녕 전(前) 원장이 연구개발(R&D) 현장의 이야기를 다룬 책 『연구원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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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전 원장은 1981년 LG화학 기술연구원에 입사해 39년간 오로지 연구에만 전념했다. 14년간 연구원장을 하면서 오늘날 LG화학의 자동차 배터리를 만든 주인공이다. 필자는 유 전 원장과 같은 연구원에서 3년간 일하며 그가 LG화학의 개발 역사를 쓰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다. 80년대 초반 LG화학은 비누, 치약, 레진 정도를 만들던 회사였고 자동차 배터리 개발은 상상조차 못했다. 도대체 연구원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화학 산업의 비즈니스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한두 사람의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 한두 해 투자한다고 이뤄지는 건 더더욱 아니다. 심지어 투자한다고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방향을 정하고 꾸준히 믿고 지원하는 경영진의 의지다. LG화학이 배터리 사업을 시작하고 이끌게 된 배경에는 구본무 LG그룹 전 회장의 지지가 가장 컸다. 지금이야 배터리가 각광을 받지만 과거에는 돈만 들고 성과가 나오지 않는 그룹 내 골치 아픈 존재였다. 검토 회의 때마다 “배터리 사업을 접자”는 얘기가 수도 없이 나왔지만 그때마다 구 회장은 뚝심 있게 프로젝트를 지켰다.

하지만 배터리 사업의 성공 주역은 역시 연구개발 조직이다. 배터리의 원조, 일본을 제치고 오늘날의 한국 자동차 배터리를 만든 데는 연구원들의 역할이 가장 컸다. 연구개발이란 무엇인가? 기술이란 게 꼭 필요한가? 예전에 내가 다녔던 한 회사의 오너는 기술을 중시하지 않았다. 그때그때 필요한 기술을 사서 쓰면 된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연구원보다는 재무나 전략 직원들을 중용했다. 결국 그 회사는 사라졌다. 지금도 사회적으로 기술에 대한 무지는 계속되고 있다. 한국 정치인 중에도 공대 출신은 거의 없다.

여기서 퀴즈 하나. 씨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기술이 뭘까? 호미걸이, 뒤집기, 배지기, 잡채기? 답은 들배지기다. 상대를 자기 앞가슴으로 당겨서 배 위로 힘껏 들어 올린 다음, 한 번 더 추켜올리는 순간 몸을 돌려 상대를 넘어뜨리는 기술이다. 씨름 선수들은 이 기술을 연습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사용한다. 들지 않으면 다른 기술을 응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들배지기는 잔재주가 아니라 힘으로 정면 승부하는 기술이다.

그렇다면 제조업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건 뭘까? 바로 연구개발이다. 압도적인 기술의 우위를 갖고 있으면 부르는 게 값이다. 한국은 제조 강국이다. 제조업으로 성장했고, 앞으로도 제조업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연구개발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유다.

이 책은 연구원 경영 철학에 관한 책이며 조직문화에 관한 책이다. 연구 조직에서 성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조직문화를 잘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증명한다. 우선 연구원들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연구원 하면 무엇이 연상되는가?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다. 꽉 막혀 있고, 소통도 못하고, 협력하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모습을 떠올린다. 저자는 연구원의 특성을 이렇게 얘기한다. “자율적인 분위기를 좋아하고 관리자의 감독을 아주 싫어한다. 고도의 기술개발 활동에서 자아를 성취한다. 조직의 방침이 자신이 설정한 목표에서 벗어날 때 일할 맛을 잃는다. 조직에 대한 충성보다는 연구원 집단의 원칙과 윤리 의식에 더 충실하다. 조직 목표에 열광하지는 않지만 제대로 방향이 잡혔다고 생각하면 무섭게 집중한다. 독립성이 강하지만 지나친 경쟁 분위기는 연구에 차질을 빚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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