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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인 이야기

상인 윤리와 ‘채근담’의 한계

조영헌 ,정리=백상경 | 398호 (2024년 8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15세기에서 16세기로 넘어가던 시기, 중국에선 ‘자본주의 없는 시장’이 최고조로 발달한다. 주목할 점은 혁명적인 수준의 시장 발전에도 불구하고 서양과 달리 자본주의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자본주의 정신의 부재다. 유럽에선 종교개혁 이후 확산한 프로테스탄티즘 윤리가 소명으로서의 직업윤리, 현세적 금욕주의를 형성해 궁극적으로 부의 축적을 가능케 했다. 중국 상인의 윤리는 비슷하지만 달랐다. 중국 휘주 상인 출신인 홍응명의 저작 『채근담』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채근담에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같은 근면과 검약이 등장하지만 그저 군자의 몸가짐이자 자기방어를 위한 개념일 뿐 부의 축적을 이끌어 낼 근본 철학이 되진 못했다. 정직의 개념 역시 속고 속이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당대 중국 상거래 환경에서 남에게 속지 말라는 점을 일깨우는 내용에 가까웠다. 자본주의와 비슷한 외형은 여럿 등장했지만 결국 부의 축적에 대한 관념이 바뀌거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수준엔 이르지 못했다는 얘기다.



자본주의 등장의 역사적 맥락

오늘날 자본주의의 압도적 영향력에 불만을 가진 이들은 있겠지만 이 시대를 자본주의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좋으나 싫으나 현재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과 세계는 자본주의 세상이다. 물론 자본주의에도 워낙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며 최근에는 ‘미국식 자본주의’와 ‘중국식 자본주의’ 가운데 누가 승리할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될 뿐 ‘진화’하는 자본주의의 종말과 새로운 시대를 예언하는 자는 극히 드물다.1

인류 역사에서 자본주의는 언제 나타났을까? 사업의 밑천이 되는 ‘자본’이나 자본주의적 현상은 꽤 오래전부터 등장했지만 ‘자본주의(capitalism)’라는 정치·경제 용어의 등장은 1860년대 이후의 일이다. 저명한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1848년에서 1875년까지의 약 25년의 시대를 ‘자본의 시대’라고 명명했다.2

자본주의의 폐단뿐 아니라 그 특징을 논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카를 마르크스의 기념비적인 저서인 『자본론』 1권이 처음 출간된 것이 1867년이다. 그나마 『자본론』에서도 ‘자본주의’라는 용어는 등장하지 않았고 ‘자본적 생산양식’이라는 표현으로 이를 묘사했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캐피털(capital)’은 ‘거액의 자금’이 아니라 ‘머리’를 뜻하는 용례로만 사용됐다. 대신 18세기에 전성기를 누린 단어는 ‘스톡(stock)’으로, 오늘날 ‘자본(혹은 주식) 시장(stock market)’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주로 ‘배금주의(拜金主義)’와 비슷한 부정적 뉘앙스로 개념화한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유행한 것은 19세기 후반의 일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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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영헌 [email protected]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필자는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중국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의 방문 학자와 하버드-옌칭 연구소 방문 연구원을 거쳐 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근세 시대에 대운하에서 활동했던 상인의 흥망성쇠 및 북경 수도론이 주된 연구 주제이고, 동아시아의 해양사와 대륙사를 겸비하는 한반도의 역사 관점을 세우는 데 관심이 있다. 저서로 『대운하 시대, 1415-1784: 중국은 왜 해양 진출을 ‘주저’했는가?』 『대운하와 중국 상인: 회양 지역 휘주 상인 성장사, 1415-1784』 『엘로우 퍼시픽: 다중적 근대성과 동아시아(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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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리=백상경[email protected]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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