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e View -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영경(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3년 6월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에서 선언한 ‘신경영’의 핵심 메시지다. 신경영은 양적 경영에서 질적 경영으로, 매출 위주에서 이익 위주로, 국내 제일에서 세계 일류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이건희 회장은 당시 적당한 수준의 제품을 만들어 무조건 많이 팔기만 하면 된다는 삼성 임직원들의 안일한 사고에 경종을 울리며 ‘월드 베스트’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강도 높은 개혁을 촉구했다. 그 옆에서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추진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사람이 있다. 바로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이다.
현명관 전 회장은 감사원에서 부감사관까지 지낸 공직자 출신 전문 경영인이다. 1978년 전주제지(현 한솔제지) 관리부장으로 입사하며 삼성과 연을 맺었다. 이후 호텔신라 부사장을 거쳐 삼성시계 사장, 삼성종합건설 사장을 역임했고 신경영 선언 직후인 1993년 10월부터 약 3년간 삼성그룹 비서실장을 맡아 이건희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했다. 오는 6월 신경영 선언 20주년을 앞두고 현명관 전 회장을 만났다. 21세기 한국 기업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지도자들이 지향해야 할 모범적인 리더십에 대한 원로 경영인의 조언을 정리했다.
오는 6월이면 이건희 회장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선언한 신경영 선포 20주년이 된다.
사실 신경영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한 게 아니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시작했다. 1993년 1월 말 이건희 회장은 당시 미국 주요 거래선과 지사를 둘러보기 위해 LA 출장을 떠났다. 그런데 갑자기 미국에 있던 비서실 비서팀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당장 LA로 건너오라는 것이었다. 당시 삼성시계 사장을 맡고 있던 나 외에 김광호 삼성전자 사장, 이대원 삼성항공산업(현 삼성테크윈) 사장 등 전자 관련 계열사 경영진도 똑같은 전화를 받았다. LA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만 해도 나는 ‘시계는 수출도 안 하는데 왜 나까지 부르나’라며 내심 의아해했다. LA에 도착한 첫날, 비서팀장이 와서 우리에게 달러를 쥐어주며 백화점과 마트에 가서 쇼핑을 하라고 했다. 이건희 회장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다들 마음 한편에선 ‘왜 미국까지 불러서 난데없이 쇼핑을 하라고 하나’ 하는 생각들을 하면서도 공돈이 생겼으니 실컷 쇼핑했다.
문제는 바로 그 다음날이었다. 회장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전자 관련 계열사 사장단을 향해 질문이 쏟아졌다. “삼성전자 TV는 백화점 진열대 어디에 있습디까?” “소니 같은 일류 제품과는 가격 차이가 얼마나 납디까?” “판매사원이 고객에게 제품 권유할 때 어느 브랜드 제품을 추천합디까?”… 그 다음날엔 호텔 연회장을 통째로 빌려 TV,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제품을 모조리 분해해 진열해 놓고는 “TV 리모콘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버튼은 뭡니까?” “무엇 때문에 삼성 TV는 3류 취급을 받고 있나요?”라며 반나절 동안 쉴 틈 없이 사장단을 다그쳤다. 국내에선 1등이라고 자만하지만 세계 시장에서 삼성은 꼴찌, 잘해봤자 3류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사장단 스스로에게 깨닫게 하려고 했던 이 회장의 깊은 뜻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후 이 회장은 LA 출장을 시작으로 도쿄와 프랑크푸르트에서 3개월간 50여 회에 걸친 강연을 통해 주요 임직원에게 불만을 쏟아내며 즉각 문제를 고치라고 지시했다. 현재와 같은 상태를 몇 년간 지속한다면 망하는 건 시간 문제라고 믿었고 그런 이 회장의 위기감이 프랑크푸르트까지 이어져 결국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꿔라”라는 선언을 하게 만들었다.
신경영 선언 이후 비서실장으로 이건희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했을 당시에 삼성은 ‘국내 제일주의’의 덫에 걸려 있었다. 세계 제일이 아니면 죽는 판에 국내 1등이라는 허상에 취해 상황 파악도 못하고 안이하게 대처하는 임직원들에게 이건희 회장은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당시 비서실장에 나를 임명한 건 개혁을 향한 이건희 회장의 필사적인 의지가 상징적으로 드러난 것이었다. 그룹 공채 출신도 아닌 외부 인사, 그것도 공무원 출신인 내가 실질적인 그룹 부회장이나 다름없는 비서실장직을 맡는다는 건 매우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처음엔 고사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그룹에 과거부터 오랫동안 몸을 담지 않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변화를 추진하는 데 적격이라며 다른 소리 말고 그냥 맡으라고 명령했다. 아마 삼성그룹의 내부 구성원이긴 하지만 이른바 ‘성골’ 출신이 아니라 외부에서 영입됐기 때문에 그룹 주변부에서 일하며 기업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인사이드 아웃사이더(inside outsider)’로서의 시각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개혁은 필연적으로 자기부정을 수반하는 일이다. 구태의연한 과거로부터 단절하고 나쁜 관습을 깨뜨려야 하는데 서로 사정을 다 알며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그룹 공채 출신들이 개혁의 칼날을 휘두르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신경영의 핵심 철학은 무엇인가.
경쟁력을 높이자는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안타까운 것은 현재 기업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논의의 초점이 온통 지배구조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지배구조란 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절대적으로 좋은 지배구조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문화, 토양, 산업의 특성, 종업원의 의식, 가치관, 그 나라의 산업 발전단계에 따라 경쟁력을 제고시키기 위해 필요한 최적의 지배구조는 제각각 다르다.
비슷한 맥락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도 강자의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자신들이 해온 것을 글로벌 스탠더드라며 다른 이들이 따르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추격자 입장에서 이런 글로벌 스탠더드를 곧이곧대로 따른다면 기득권을 갖고 있는 경쟁자들을 뛰어넘기란 불가능하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더해 우리에게만 존재하는 차별화가 플러스돼야 한다. 즉, 창조적 파괴와 혁신을 통한 한국적 경영 모델을 추구해야 한다. 이는 결국 차별화에서 나온다.
차별화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해야 하나.
호텔신라에서 일할 때의 경험에 빗대어 이야기해 보겠다. 김 사장은 우리 호텔을 자주 이용하는 단골 고객이다. 호텔에 김 사장이 차를 몰고 갔는데 도어맨이 문을 열어주면서 “어서 오십시오”라고 인사하는 건 차별화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단골 고객의 차 번호판을 외운 도어맨이 “김 사장님 어서 오세요”라고 반갑게 맞는다면 그건 차별화다. 한발 더 나가서 “김 사장님, 다시 뵙게 돼 반갑습니다. 신문을 보니 최근에 미국 출장을 다녀오셨다는 것 같던데 언제 돌아오셨습니까?”라고 말한다면 훨씬 고차원적인 차별화가 된다. 식당이나 리셉션 데스크에서도 마찬가지다. 단골 손님에게 메뉴판을 가져다주면서 “무엇을 주문하시겠습니까”라고 묻는 대신 “김 사장님, 4일 전에 복요리를 맛있게 드셨는데 오늘도 같은 것으로 주문하시겠어요”라고 먼저 말을 건넨다거나 체크인하는 단골 투숙 고객에게 “김 사장님, 10번째 방문에 감사 드립니다. 지난 번에 남산이 보이는 쪽 방을 이용하셨는데 이번에도 같은 방을 원하시면 투숙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말을 건넨다면 고객에게 큰 만족감을 선사할 수 있다.
이런 차별화는 업(業)에 대한 정의부터 새롭게 해나가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호텔업을 단순히 식당에서 밥 먹고 커피숍에서 사람 만나고 객실에서 잠 잘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업으로 정의한다면 호텔 직원들은 손님들에게 “어서 오십시오”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정도의 말을 친절하게 건네는 것으로 임무가 끝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호텔업을 ‘상대방을 알아주는 사업’이라고 정의해보자. 김 사장을 불러주고 알아주기 위해 노력하는 식으로 모든 서비스의 초점이 바뀌게 된다. 김 사장의 차량 번호는 물론 과거 투숙 경력이나 식사 내역 정보까지 훤히 꿰고 있어야 한다. 모든 게 마찬가지다. 술집을 단순히 술을 파는 곳으로 정의하느냐, 아니면 샐러리맨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곳으로 정의하느냐, 가정 주부를 단순히 가사 노동을 하며 가족을 돌보는 사람으로 정의할 것이냐, 아니면 가정의 행복 창조자로 보느냐에 따라 제공하는 서비스나 마음가짐이 달라질 것이다.
물론 차별화가 업을 새롭게 정의하기만 한다고 저절로 얻어지지는 않는다. 방향성을 정해놓은 후에는 실제 조직원들이 차별화를 만들고 실행해 나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한 예로 나는 호텔신라 재직 시절 도어맨들을 대상으로 ‘고객 차량번호 맞추기 대회’를 열었다. 고객의 차량번호를 시험문제로 내놓고 차량 번호 옆에 고객의 이름과 특징을 써 넣게 한다든가, 자주 오는 고객의 사진을 놓고 차량 번호를 적게 하는 식으로 점수를 매겼다. 이런 이벤트를 계기로 차량 번호를 외우는 도어맨들 수는 몇몇 센스 있는 직원들에서 거의 전 직원으로 늘어났다. 별 것 아닌 일 같지만 작은 혁신의 불씨라도 전체로 확산될 수 있도록 제도와 시스템을 만드는 게 지도자가 할 일이다.
신경영 당시 추진했던 경영 원칙 가운데 오늘날에도 특히
시사점을 갖는 게 있다면.
스피드 경영이다. 스피드 경영을 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의사결정의 단계 자체를 축소하는 것이다. 흔히 유통업을 예로 든다면 중간상인을 거치지 않고 산지 직거래로 신선식품을 조달하는 예 등을 꼽을 수 있다. 두 번째 방법은 의사결정의 단계는 그대로 두되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식의 변화를 통해 일처리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무실에서 컵 같은 비품 하나를 구입한다고 할 때에도 대리가 물품 구매 기안을 한 후 과장과 부장의 결재를 거쳐 상무까지 결재를 해야 한다면 너무 시간이 걸리고 비효율적이다. 이건희 회장도 이 점을 지적했다. 물건 하나를 사는 데 대여섯 개 도장을 단계단계 거쳐가며 받아선 스피드를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도장을 받지 말라는 게 아니다. 결재라인에 있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 놓고 그 자리에서 다 결재를 진행하면 결재 단계를 줄이지 않고도 충분히 스피드를 확보할 수 있다. 즉, 공장에 필요한 물품을 구매할 때에도 물품 구매를 요청하는 부서와 실제로 물품을 구매하는 부서, 또한 공장에서 물품을 기술적으로 검수하는 부서 등이 모두 한데 모여 토론하고 끝내도록 했다. 기술적 문제, 가격 이슈, 납기 문제 등 제각각 부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들을 동시에 이야기하게 함으로써 의사결정이 빨리 이루어지도록 유도했다.
이런 의사결정 방식은 사실 관공서에서 가장 먼저 도입해야 한다. 건설 공사 하나 하는 데 백 개가 넘는 도장이 필요하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건설 관련 업체들과 공무원들이 합심해 협의체 같은 기구를 만들어서 마치 법원에서 판결하듯이 일주일 중 특정 요일에 한자리에 모여 처리한다면 훨씬 더 신속하게 처리될 것이라 본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원로 경영인으로 꼽힌다.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보나.
설득력이다. 리더의 비전, 리더가 생각하는 경영 목표를 조직 구성원들에게 전달해 그 사람들이 리더를 믿고 따르도록 해야 한다.
설득력 있는 리더십을 갖추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인가.
전문성이다. 전문성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처음 신라호텔에 부임했을 때 호텔에 대해 알 턱이 없는 나는 매일같이 새벽 5시에 출근했다. 당시 직원들의 아침 교대근무 시간이 오전7∼8시였지만 그보다 두세 시간 일찍 나와 23층 꼭대기부터 지하5층 기계실까지 죽 돌아다녔다. 소화기는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주방 냉장고는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는지, 행주와 도마 소독은 제대로 돼 있는지, 객실 화장실 청소는 깨끗하게 잘 돼 있는지 등을 일일이 점검하다 보면 최소한 3시간이 지나 금방 아침 회의 시간이 된다. 이렇게 한 바퀴 돌고 회의를 주재하다 보면 누가 어떤 거짓말을 하는지 다 보인다. 문제 없다고 보고하는 직원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직접 질책하지 않고 “19층에 올라 가서 소화기 상태를 점검해 보세요” “식재료 보관 창고에 한 번 가본 후 상태를 알려주세요”라는 식으로 지시를 내렸다. 그렇게 2주를 매일같이 했더니 조직 장악력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었다.
CEO가 너무 세세한 사항까지 일일이 챙기는 건
비효율적이지 않나?
삼성물산 부사장 시절 내 별명이 ‘현 대리’였다. 당시 분당에 백화점(삼성플라자 분당점)을 새로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새벽 2시에 관리자에게 문을 열게 해서 불시 점검을 했다. 전략기획실장과 단 둘이서 암행을 나간 셈이다. 다른 곳은 가지 않고 푸드코트만 집중적으로 돌아보면서 문제가 있는 곳에는 포스트잇에 지적 사항을 꼼꼼하게 적어 붙여 놓았다. 냉장고면 냉장고, 도마면 도마, 어디고 가릴 것 없이 위생사항이 문제가 되는 곳이나 안전 사고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곳에는 노란 딱지를 붙였다. 이런 불시 검문 이야기가 이건희 회장의 귀에 들어갔던 것 같다. 그 후 며칠 뒤 열린 사장단 회의에서 이건희 회장이 “요즘 현 부사장을 현 대리라고 한다면서요?”라며 웃으셨던 기억이 난다.
내가 불시 검문을 했던 이유는 식중독이나 안전 사고처럼 미리 예방할 수 있는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식을 조직원들에게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안전 관리나 위생 관리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몸에 배야 하는 일상 업무라는 점을 피부로 느끼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는 입주상인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였다. 백화점 푸드코트에 들어오는 입주 상인들은 어떤 형태로든 삼성과 연줄이 닿아 있는 사람들이었다. 실력이 아닌 이런저런 연줄로 들어오는 사람을 100% 막을 수는 없지만 일단 입주했다면 최고의 스탠더드에 맞춰서 일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였다.
현 대리가 아니라 현 주사라고 불린다 하더라도 나는 CEO라면 세세한 부분까지 다 알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매일 매장을 돌아다닐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당연히 믿고 맡겨야 한다. 하지만 알고 맡기는 것과 모르고 맡기는 것은 천지 차이다. 일단 맡겨놓고 일절 신경을 안 쓰는 것과 한번 맡겼더라도 불시 검문을 통해 경각심을 주는 것은 다르다. 이런 소소한 부분에서부터 전문성이 생긴다고 믿는다.
세부적인 사항 하나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말로
들린다.
언제나 기본이 중요하다. 이병철 선대 회장 때의 에피소드다. 하루는 이병철 회장이 신라호텔 중식당으로 연락해 군만두를 만들어 장충동 자택으로 가져오라고 했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이 만두 하나를 맛보고는 더 이상 손을 대지 않았다는 기별이 왔다. “하얏트호텔 군만두는 맛이 있는데 왜 우리 군만두는 맛이 없노”라며 심기가 불편해했다는 전갈과 함께 말이다.
당시 손영희 호텔신라 사장과 나는 직원들과 함께 하얏트호텔은 물론 롯데호텔, 플라자호텔 등 다른 호텔에 가서도 만두를 시켜먹고 샘플을 가져와 분해하며 재료를 분석했다. 만두 한 개에 콩나물이나 녹두나물은 각각 몇 그램 정도 들어가 있는지, 밀가루는 어디 밀가루를 쓰는지, 돼지고기는 얼마나 들어가는지 등을 면밀히 따져봤다. 직원들과 함께 밤을 새워가며 난리법석을 떨면서 원가, 품질, 맛에 대한 비교표를 만들었고 이튿날 손영희 사장이 이병철 회장에게 문제점과 개선책에 대해 보고했던 기억이 난다.
이 일로 느낀 게 많았다. 고작 만두 하나지만 만두 하나를 팔아 얼마나 돈을 벌 수 있는지 알고 파는 것과 그냥 대량으로 재료를 구입해 만들어 파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점을 몸소 체험했다. 사실 만두 하나에 들어간 재료나 원가를 계산하기는 쉽지 않다. 돼지고기 한 근을 사서 만두를 만든다고 할 때 그 한 근 중에 한 개의 만두에 돼지고기는 얼마나 들어가는지, 밀가루 1kg으로 만두피를 만들 때 만두피 1개에 밀가루가 몇 그램이나 들어가는지 신경을 쓰는 사람도 많지 않다. 비슷한 맥락에서 호텔 종업원 중에 커피를 한 잔 팔아 얼마나 남을지 생각해 본 사람들은 단언컨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은 뜬금없이 “이 커피 한 잔을 팔면 얼마나 이익이 나노?” 같은 질문을 던지곤 했다. 평범하고 일견 사소한 질문 같아 보이지만 동시에 매우 기본적이면서도 당혹스러운 질문이다. 이병철 회장이 이 질문을 던졌을 때 회사의 전체 이익과 전년도 이익, 경쟁사 이익은 속속들이 알고 있었어도 호텔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음식인 커피 한 잔의 원가 구조에 대해 알고 있던 간부는 나를 포함해 단 한 명도 없었다. 회사의 대표 제품에 대한 원가 구조 하나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큰 그림을 맞출 수 있느냐를 깨닫게 하려는 게 선대 회장의 깊은 뜻이 아니었나 싶다.
오늘날 삼성을 있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보나.
인재 제일주의다. 삼성은 창업부터 지금까지 최고의 인재를 뽑아 철저하게 교육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서라면 최고경영진이 태평양을 몇 차례씩 건너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굳이 공채 출신만 고집하지 않은 것도 성공요인 중 하나다. 타 기업 출신은 물론 공무원들도 적극 영입했다. 감사원에서 일하던 내가 삼성에 오게 된 것도 이처럼 다양성을 중시하는 삼성의 인재 철학 덕분이다.
문제는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하드’한 인재가 각광받았지만 지금은 소프트웨어적 가치관이 필요한 시대다. 즉, 예전에는 근면성실하고 숙련된 노동력이 필요했다면 지금은 창의성과 도전정신이 요구되는 시대다. 지금까지 삼성은, 또 우리나라 기업들은 근면 성실한 노동력 양성에 인재 양성의 주 초점을 맞춰왔다. 이제는 인재양성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시대가 달라져도 변치 않고 지켜져야 할 원칙이 있다. 바로 다양한 인력들을 포용할 줄 아는 문화다. 미국이 오늘날 세계 최고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용광로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피부색과 종교, 국적을 불문하고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할 수 있었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우수한 인재를 영입한다 한들 그들을 조직에서 품지 못한다면 성공할 수 없다.
이방실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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