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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그 결정은 타당했을까

김현진 | 299호 (2020년 6월 Issue 2)

“비탄에 빠진 현 상황에서 우리는 반복해선 안 되는 과거를 고민해야 한다. 인간이 촉발한 이 위기(코로나19 사태)는 우리를 본질적인 시험대 앞에 서게 했다.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근 럭셔리 패션 브랜드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렉산드로 미켈레는 브랜드 공식 인스타그램과 온라인 기자회견을 통해 이렇게 밝혔습니다. 이어 봄•여름, 가을•겨울 등을 비롯해 프리폴(pre-fall), 리조트룩 등 계절에 맞춰 진행되던 5차례가량의 신제품 발표 주기를 2번으로 줄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미켈레의 발표가 패션계에선 ‘선언적’으로까지 여겨진 것은 그만큼 계절에 맞춘 패션쇼가 오랜 관행이었기 때문입니다. 구찌의 이 같은 행보는 비대면 시대, 디지털의 문법에 맞춰 효율성을 추구하려는 목적이 있겠지만 최근 패션계에 불고 있는 ‘시즌리스’ 트렌드와도 궤를 같이합니다. 패션업계가 계절에 맞춘 트렌드를 내세워 시즌마다 컬렉션을 선보이는 것은 고질적 이슈인 재고 관리에 부담을 줬을 것이고, 과잉 생산된 옷들은 ‘예쁜 쓰레기’만 발생시킨다는 환경에 대한 반성이 이어졌습니다. 구찌를 소유한 케어링그룹을 2005년부터 이끌고 있는 프랑수와 앙리 피노 회장은 지속가능 경영과 관련한 경영 원칙을 강조해왔으며, 지난해 G7 정상회담을 앞두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요청으로 패션산업을 위한 새로운 기후변화 표준 제정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피노 회장을 비롯한 이사회의 이 같은 지지가 구찌의 이번 발표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종종 인류가 거대한 역사 속에서 마주치게 되는 절벽 같은 위기는 폐쇄적인 럭셔리 패션쇼의 질서를 깨는 것처럼 수십, 수백 년을 다져온 세상의 룰을 하루아침에 바꾸게도 합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성장•성공 지향적으로 ‘직진’하던 본인의 삶을 돌아보고 ‘평범한 일상’ ‘함께하는 삶’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는 분들을 요즘 종종 뵙게 됩니다. 이러한 개인들의 변화는 기업의 원칙에도 영향을 줄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시대정신’의 변화는 코로나 사태 이전인 지난해 8월, 이미 큰 터닝포인트를 맞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최고경영자 단체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이 “우리에게는 고객, 종업원, 거래처, 커뮤니티, 주주 등을 아우르는 모든 ‘이해 관계자’가 중요하다. 우리는 회사, 지역사회 및 국가의 미래 성공을 위해 이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가치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기업의 존재 이유는 주주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라는 주주 자본주의적 관점을 수정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주주 자본주의 시대의 종말’과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시대의 도래’로 평가받는 이 같은 변화는 기업과 인간, 환경이 함께 빚는 유기적 관계에 대해 입체적으로 고민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어 지난해 12월 열린 다보스포럼 역시 같은 시대정신을 공유합니다. ‘결속력 있고 지속가능한 세계를 위한 이해관계자’를 주제로 한 이 포럼에선 특히 환경이 소주제로 부각됐습니다. 위기, 그리고 시대정신의 변화가 맞물리면서 기업과 최고경영진은 새로운 전략을 장착하지 않으면 안 될 ‘진실의 순간’을 맞았습니다. 특히 DBR가 이번 호 스페셜 리포트에서 지배구조, 그중에서도 이사회의 역할에 대한 다양한 제언을 청취한 것은 결국 기업의 리더, 그리고 기업 운영을 결정하는 이사회에 주어질 새로운 미션과 인사이트를 공유하기 위해서입니다. 린 페인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는 “특히 코로나19 위기는 주주가치를 극대화한다는 명목으로 위기 이전에 행해졌던 많은 결정, 즉 장기 R&D 투자를 줄이고, 물가가 저렴한 지역에서 비즈니스 활동을 아웃소싱하는 등과 관련된 결정이 과연 타당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오히려 위기는 소비자의 존재와 임직원의 안위, 위생 및 환경, 공공재의 역할 등 잊고 있던 가치들의 우선순위를 재배치하면서 ‘이해관계자들과의 조화’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달라진 시대정신에 발맞춰 이사회는 어떤 방향을 견지해야 할까요. 관여(engagement), 진정성(integrity), 최고경영자의 의지(tone at the top)…. 이번 스페셜 리포트에 담긴 주요 키워드들에서 힌트를 얻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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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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