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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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리에겐 없고 정 과장에게 있었던 것은?
IT기기 제조기업인 A전자 해외영업팀의 김철수 대리는 새로 출시될 상품 보고서를 쓰려고 자료를 찾느라 분주하다. 안타깝게도 자료조사는 쉽지 않았다. 부서 내에서는 추가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상품개발팀을 찾아가 여기저기 알아보려고 노력했지만 모두들 바빠 타 부서인 김 대리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평소에 같은 팀원 외에 교류가 부족했던 김 대리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섣불리 요청하지 못했다. 김 대리가 타 부서원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면 업무가 난관에 봉착하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정소영 과장은 최근 사이버 명품관 프로젝트의 신규사업팀 리더로 선발됐다. 서비스 기획팀 과장인 그를 리더로 선발한 것은 상당히 예외적인 일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회사의 중장기 주요 전략의 일환으로 회사에서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사업이다. 프로젝트 성과에 따라서 특별 진급까지 가능하고 이후 사내 벤처로 키운다는 소문도 들렸다. 정소영 과장에게 이런 행운이 찾아 올 수 있었던 것은 평소에 다져놓은 인간관계 덕분이다. 업무특성상 여러 타 부서들과 협업할 일이 많았던 그녀는 항상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고 타 부서의 요청이 오면 항상 적극적인 자세로 도와주곤 해서 회사 내에서 평판이 좋았다.
평소에 잘 관리해온 인적 네트워크는 내가 곤경에 처했을 때, 조직 내에서 갈등관계에 휘말렸을 때 내 편이 돼줄 수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업무에서도 이들의 협조에 따라서 업무성과가 나타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따라서 내부 정보에 둔감하지 않고 가급적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러한 조직 내 인간관계는 다른 부서와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데 힘을 발휘하기도 하고 효과적인 정보관리에도 도움을 준다.
신입사원이나 대리급일 때는 현재 주어진 업무에만 관심을 기울이면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관리자로 성장하게 되면 동료들과의 관계가 원활해야 의사결정이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 따라서 더 늦기 전에 조직 내의 메커니즘과 입장을 이해하고 동료들과 사내 및 업계 정보를 교류해나가야 한다.
사연(社緣) 있는 직장인이 되라
할리우드 배우 케빈 베이컨의 게임으로 잘 알려져 있는 ‘6단계 게임(Six Degrees)’은 여섯 다리만 거치면 지구상의 어떤 사람이라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세상은 60억 명 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다는 거대한 곳이지만 언제든지 누구와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작은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이다. 오히려 나와 만나서 이야기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상당히 제한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잠시라도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인연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인연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맺어질 수 있는데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사연(社緣)이다. 직장인에게 직장생활을 통해서 만나는 인연만큼 깊고 진한 것도 없다.
동료들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하루의 3분의2 이상을 한 곳에서 함께 보내기도 하고, 중대한 업무를 공유하기도 하며, 결정적인 순간에 후원자가 되기도 한다. 또한 이들은 회사를 옮긴 후에도 서로의 업무 영역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이직의 순간에 결정력을 발휘하는 중대한 스피커가 되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각종 경조사나 개인적 행사에 참여하는 인적 구성의 비율도 혈연을 제외하고는 직장생활을 통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직장을 통해 만난 사람들을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다.
그러나 사연의 특징 중 하나는 무조건적인 인간관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공적인 관계에서 사적인 관계로 매우 친밀하게 발전해 나가는 사례들도 있지만 처음부터 인간적인 관계를 지나치게 기대하다 보면 조직의 규칙을 그르치고 상처를 받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사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합리적인 이성이다. 사연을 통해 만난 관계는 조직 내에 있는 동안은 비즈니스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비즈니스는 각자의 자아실현을 위한 바탕이며 중요한 일상이다. 따라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업무에 있어서 자기 역할을 명확히 하고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타인의 영역을 존중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간혹 조직 내의 위치와 역할을 무시하고 다른 부서의 일에 참견하거나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예기치 않았던 새로운 갈등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만, 나의 유익을 위함이 아니라 상호 윈윈이 되고 전체 조직의 유익을 가져다주는 것이라면 상대방의 양해를 구하고 조금 더 적극적일 필요는 있다. 이러한 현명함이 발휘될 때 현재의 조직을 떠난 후에도 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할 수 있다.
비공식의 공식 만들기
외국계 물류기업 P사 인사팀의 황기훈 대리와 구매팀의 박성호 대리는 함께 사내에서 운영 중인 등산 동호회에 참여해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모임 활동 이외에 별다른 커뮤니케이션이 없었던 그들의 관계는 동호인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모임이 끝나고 몇몇이 술자리를 갖게 됐고 황 대리가 사내 커플이라는 비밀스러운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남모를 비밀을 공유하게 된 둘은 몇 차례 상의를 하면서 관계를 돈독히 만든 덕분에 현재는 업계와 사내 정보까지 교류할 수 있는 돈독한 네트워킹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이렇게 관계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박 대리가 꿋꿋이 비밀을 지켜줬던 것도 한몫했다.
나의 비밀을 누군가와 공유하게 될 때 상대방이 느끼는 친밀감은 배가 된다. 물건을 팔 때도 영업사원이 고객에게 “손님, 이건 비밀인데요… 손님께만 특별히 서비스 상품을 드리겠습니다. 절대 다른 분들께는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라는 말을 하면 고객은 “에이, 누구에게나 다 주는 거 아니예요”라고 반문할지라도 결국 상품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져 상품을 구입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은밀한 정보는 더욱 가치 있어 보이고 상대방은 그 비밀을 자신과 공유했다는 사실만으로 신뢰감을 높일 수 있다.
비공식적인 비밀을 공유한 사람과는 높은 신뢰감 덕분에 갈등을 일으킬 확률이 상당히 낮아진다. 따라서 동료와의 어색한 관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싶을 경우에는 비밀을 공유해보는 것도 좋다. 단, 이러한 비밀은 타인을 험담하거나 비방하는 내용이어서는 안 된다. 또한 반드시 비밀로 해야 하는 조직 내의 기밀이나 치명적인 해를 입힐 수 있는 내용이어서도 안 된다. 즉, 되도록이면 친밀함을 높일 수 있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주제로 하는 것이 좋다. 상대방의 비밀을 듣게 된 사람은 그의 비밀을 유지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