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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이 멋있으면 이가 시원찮다

박재희 | 69호 (2010년 11월 Issue 2)
 
 
어느 대형은행 지주회사 회장이 50년간 몸담았던 은행계를 떠나면서 각자무치(角者無齒)란 말을 남겼다. 뿔이 멋있는 순록이나 사슴은 날카로운 이빨이 없다는 뜻으로 한 사람이 모든 재주를 두루 가질 수 없다는 의미로 많이 쓰이는 사자성어다. 사슴의 뿔은 우아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이빨은 풀 정도 뜯어 먹을 기능 밖에 안 된다. 단 세 개의 점포로 시작했던 신생은행을 전국 규모의 우량 은행으로 일군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 회장의 마지막은 초라해보였다. 참으로 성공을 이루는 것도 힘들지만, 그 성공을 어떻게 마무리 하는가도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퇴임하는 회장은 심경을 토로하는 기자 간담회에서 작년에 연임을 재고해보라는 측근의 충고에 귀 기울이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고도 했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 대목이다.
 
노자 도덕경에도 공을 이루었다면 몸을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공성신퇴(功成身退). 공을 이루었다면 몸은 빠져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보다 더 위대한 것은 그 성공을 어떻게 영원한 성공으로 남게 하느냐다. 노자는 물에서 그 답을 찾고 있다.
 
‘물을 보라! 세상에 가장 위대한 것은 물처럼 사는 것이다(上善若水). 물은 모든 만물을 이롭게 한다(水善利萬物). 그러나 남과 그 공을 다투려 하지 않는다(不爭). 오히려 모든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임한다(處衆人之所惡). 그래서 진정 위대한 도와 가장 닮아있다(故幾於道). 낮은 곳으로 임하고(居善地), 못처럼 깊은 마음을 가졌다(心善淵). 남에게 인정을 아낌없이 베풀고(與善仁), 신뢰를 갖고 흐른다(言善信). 세상을 깨끗하게 씻어주고(正善治), 어떤 일이든 능력을 발휘하고(事善能), 얼고 녹을 때를 알아 처신한다(動善時). 아! 남과 공을 다투지 아니하니(夫唯不爭), 누구에게도 원망을 듣지 않는다(故無尤).’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세상 모든 생명체를 길러내는 물은 오히려 그 공()을 버리고 낮은 곳으로 임한다. 그러기에 강이 되고 바다가 돼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 물이 만약 자신의 공을 주장해 위로 흐른다면 산 속 웅덩이가 돼 결국 썩은 물로 변할 것이다. 어느 은행가도 성공에 자만하지 않고 노욕을 줄이며 조금만 겸손하게 처신했다면 그 성공은 위대한 성공으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나라 통일의 주역이었던 한 고조의 오른팔 장량(張良)은 킹메이커로 자신의 소임을 마치고 홀연히 떠났고 그 공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었다. 반면 한신(韓信)은 자신의 공을 주장하고 무리하게 머물러 결국 토사구팽의 불운한 종말을 맞았다. 성공을 과신하면 그 성공의 덫에 빠져 결국 파멸에 이른다.
 
‘만물을 만들어도 말로 자랑하지 마라(萬物作焉而不辭). 내가 만들었어도 소유하려 하지 마라(生而不有). 내가 했어도 과시하지 마라(爲而不恃). 공을 이루었다면 그곳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功成而弗居). 그것이 내가 버림당하지 않는 방법인 것이다(是以不去).’
 
노자 <도덕경(道德經)>의 생존 철학이다. 각자무치(角者無齒). 뿔이 아름다운 짐승은 이빨이 시원찮다는 어느 은행가의 사퇴의 변을 들으면서 인생은 결국 더하고 합하면 제로섬이 된다는 인생무상의 생각에 잠시 젖어본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email protected]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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