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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패왕 항우가 긍정의 힘을 믿었다면...

박재희 | 64호 (2010년 9월 Issue 1)
중원의 패자를 놓고 다투던 초(楚)나라 항우(項羽)는 한(漢)나라 유방(劉邦)과의 전쟁에서 결국 지고 말았다. 항우는 해하성(亥下城) 전투에서 패해 사랑하는 여인 우미인도 잃고 서른한 살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병력과 물자 등 모든 면에서 우세했던 항우가 무릎을 꿇고 만 이유는 뭘까. 패인은 다양하다. 혹자는 오로지 자신의 우세한 전력만 믿고 상대방을 과소평가했다는 점을 꼽는다. 승리에 대한 대책도 없이 무리하게 군대를 일으켜 운영한 점도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병사들과 함께 승리의 성과와 이익을 공유하지 못했고, 감정과 분노로 무리한 결정과 판단을 내려 거사를 그르쳤다는 비판도 있다.
 
무엇보다 항우의 가장 큰 패착은 새로운 기회에 대한 희망을 잃었다는 점이다. 잠깐의 분노와 수치를 참고 다시 병사들을 모아 새로운 기회를 모색했다면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었을 텐데, 그는 위기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절망이라는 재앙 앞에 스스로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당시 항우를 밀어주는 초(楚)나라는 물자가 풍부하고 인구가 많았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 재기의 칼을 갈고 때를 기다렸다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한 항우는 폼 나는 장군은 될 수 있을지언정 역사의 승자는 아니다. 그를 믿고 투자했던 초나라 원로들은 파산의 멍에를 썼고, 그와 함께 전쟁터를 누비던 병사들은 객귀(客鬼)가 돼 전장에서 쓰러져갔다.
 
천 년이 지난 어느 날 당(唐)나라 시인 두목(杜牧)은 항우가 마지막 숨을 거둔 오강을 지나면서 ‘제오강정시(題烏江亭詩)’라는 시(詩)를 지어 재기의 아쉬움을 노래했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에서 반드시 기약할 수 없는 불확실한 것이다(勝敗不可兵家期)! 지금의 실패에 부끄러움을 가슴에 새기고 치욕을 참는 것이 진정 남아로다(包羞忍恥是南兒)! 네 고향 강동의 젊은이들 중에는 준걸이 많은데(江東子弟多才俊), 흙먼지를 휘날리면서 다시 재기하여 올 수 있다는 것을 어찌 알지 못하였는가(捲土重來未可知)!’
 
지금은 비록 패하였지만 다시 전열을 재정비해 새로운 기세(氣勢)로 지나간 패배를 반드시 설욕하리라는 각오가 담겨있는 구절이 권토중래(捲土重來)다. 시인은 이 판단을 놓친 항우를 아쉬워했다. 잠시의 치욕과 분노를 참고 훗날을 기약하는 권토중래의 철학은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희망이 있다’는 교훈을 전한다. 신(神)이 아닐진대 어찌 이기는 게임만 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 성공한 기업들 중에는 권토중래의 철학으로 위기를 이겨내고 재기에 성공한 기업이 많다.
 
문제는 힘들고 어려울 때 포기하지 않고 답을 찾아내는 긍정의 힘이다. 이른바 자득(自得)의 낙관주의(樂觀主義)야말로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재기에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이다. 미래의 성공과 생존이 중요하기에 피눈물을 흘리며 잠시 뒤로 물러설 수도 있는 것이다.
 
‘장수가 전쟁터에 나가 공격을 명령함에 명예를 구하고자 해서는 안 된다. 또한 후퇴를 명령함에 죄를 피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공격과 후퇴의 모든 판단 기준은 오로지 국가의 생존과 병사들의 안전에 있는 것이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진퇴에 대한 장군의 철학이다. 항우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돌아오겠다는 권토중래(捲土重來)의 각오로, 자신을 믿고 목숨을 건 병사들과 자신에게 인생을 건 고향 원로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면 역사는 그의 손을 들어주었을지도 모른다. 절망을 용기 있게 끊어버리는 순간, 눈앞에 새로운 희망이 보인다는 진리를 항우는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권토중래는 어렵고 힘들 때마다 새로운 재기를 꿈꾸며 외치는 리더들의 생존 화두다.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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