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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한 상술이 브랜드를 죽인다

김정수 | 20호 (2008년 11월 Issue 1)
일본 도쿄의 하라주쿠(原宿)와 오모테산도(表參道)는 세계적 명품을 파는 상점이 즐비한, 그야말로 첨단 패션의 거리다. 필자는 도쿄에 살고 있던 올해 7월 아침에 우연히 이들 지역을 지나게 됐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거리에 사람들의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담요와 베개까지 들고 서있는 모습이 의아해 따라가 보니 이날이 바로 애플 아이폰의 일본 발매 첫날이었다. 아이폰을 판매하는 이동통신사 소프트뱅크 매장에는 이 회사의 손정의 회장까지 나와 구매자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밤을 새워 줄을 서고, 혹시 물건이 동날까 조바심한 끝에 뿌듯한 얼굴로 아이폰을 사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필자는 아이폰 인기의 비밀은 무엇일까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브랜드는 얄팍한 상술?
이번에 소개하는 책인 ‘Obsessive Branding Disorder’의 저자 루커스 콘리는 ‘애플’이란 브랜드의 인기 비결은 젊은이들에게 선사하는 ‘쿨(cool)’한 이미지라고 설명한다. 애플은 비즈니스위크와 인터브랜드가 공동 선정하는 ‘2008 베스트 브랜드 글로벌 순위’에서 지난해보다 9계단이나 상승한 24위를 차지했다. 137억 달러에 이르는 브랜드 가치는 우리나라 10위권 상장기업의 시가총액과 맞먹는다.
 
그러나 ‘Obsessive Branding Disorder’는 지금까지 나온 다른 책들과 시각을 달리해서 브랜드를 바라본다. 이전에 나온 많은 책은 판매전략 측면에서 브랜드의 중요성만을 강조하고, 브랜드 가치가 높은 기업들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 책은 실질적인 혁신과 품질개선이 아니라 브랜드라고 하는 ‘얄팍한’ 상술만이 고도화되는 현실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다. 실제 아이폰의 경우에도 ‘신기한 기능과 디자인이 돋보이지만 자판의 편리성이 떨어지고 배터리 수명이 짧다’는 다소 냉랭한 반응이 많았다.
 
사실 기업이 투자할 때 제품의 기능과 편리성을 높일 것이냐, 브랜드 이미지와 감성에 호소할 것이냐는 전적으로 기업의 전략과 판단에 달려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은 기업이나 사회, 소비자 입장에서 지나치게 많은 자원이 실질적인 문제 해결이 아닌 ‘환상(illusion)’에 쓰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상품의 품질과 무관한 브랜드 투자
우선 기업의 경우를 보자. 부동의 브랜드 가치 1위(약 670억 달러) 기업인 코카콜라는 광고비로 한 해에 7억 달러를 지출한다. 반면에 코카콜라 원재료에 들어가는 돈은 고작 갤런(약 3.8L)당 1센트 정도다. 어쨌든 코카콜라를 마신 사람이 상쾌한 기분이 든다면 그만일 수 있겠지만, 특히 미국 기업들의 경우 상품이나 서비스의 질과 전혀 무관한 곳에 너무 많은 돈을 투자한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필자는 그 이유가 이들 기업이 값싼 수입품과 확연하게 차별화할 수 있는 혁신적 기술이 없기 때문이며, 장기적으로는 이런 미봉책이 더욱 큰 경쟁력 손실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캐주얼 의류의 세계적 경쟁 기업인 미국 갭과 스페인 자라의 예를 보면 미국 기업들에 대한 우려가 큰 무리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자라는 80억 달러의 매출액 중 0.3%만을 광고비로 쓰고도 브랜드 가치 62위에 오른 반면에 갭은 마돈나, 세라 제시카 파커 같은 톱스타를 광고 모델로 등장시키는 등 매출액의 4%를 광고비에 쏟아 붓고도 순위가 61위에서 77위로 떨어졌다.
 
전통적인 브랜드 광고 이외에 최근 등장한 새로운 포맷의 광고에 들어가는 돈도 무시 못할 수준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자사 제품을 노출시키는 간접 광고인 이른바 PPL 시장의 규모는 2010년까지 매년 30% 이상 성장해 8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에는 소리나 향기를 브랜드화 하고 이를 활용한 마케팅을 전개하거나, 심지어 사람의 얼굴 표정을 분석해서 그에 반응하는 광고를 제작하는 등 브랜드를 강화하기 위한 돈 씀씀이는 규모도 커질뿐더러 사용처도 다양해지고 있다. 

뇌는 논리보다 감성에 더 민감
소비자 측면에서는 어떨까. 사람의 뇌는 논리적인 자극보다 감성적인 자극에 3000배나 더 빠르게 반응한다고 한다. 백화점에 가서 자기도 모르게 충동적인 지출을 하는 것도 이와 같은 ‘브랜드의 감성적인 자극’이 큰 원인이다. 나아가 브랜드에 대한 느낌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샀으니까 괜찮아’하는 식으로 지출을 합리화하게 되고, 장기적으로는 지출의 계획성을 잃게 만든다. 이런 불합리한 소비가 반복되다 보면 결국에는 오히려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충성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
 
그 동안 크게 주목받지는 않았지만 브랜드 마케팅의 사회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어린이의 1%, 부모의 7%가 ‘입소문 마케팅’의 대가로 돈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생활 속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특정 회사 제품에 대한 홍보를 해 주고 돈을 받는다는 말이다. 입소문 마케팅 등으로 인한 사회적 신뢰 저하 논란은 이미 진행형이다. 미리 상대에게 알리지 않는 경우 입소문 마케팅을 못하게 해 달라는 청원이 미국 공정거래위원회에 제기된 적도 있다. 외국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리 생활 중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광고인지 구별할 수 없는 상황이 황당한 상상만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우직하게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혁신에 투자하는 기업이 뒤처지고, 지나치게 과다한 자원이 브랜드에 투자돼 본말이 전도되는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우려다. 또 이로 인해 합리적이지 못한 소비가 일어나고, 사회적으로 만성적인 불신이 퍼질 수 있다는 것도 우려할 사항이다. 저자는 이러한 우려를 책의 부제와 같이 ‘비즈니스의 환상, 환상의 비즈니스(The Illusion of Business and the Business of Illusion)’라고 표현한다.
 
그렇다고 브랜드 없이 제품만 존재하는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과거 옛 소련에서는 실용주의를 강조하기 위해 모든 제품을 숫자나 문자로만 구분하도록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제품의 고유 번호와 생산 공장을 연결하고 품질의 차이를 알아내서 결국은 암암리에 숫자가 브랜드화한 사례가 있다고 한다. 이런 것을 보면 브랜드 없는 제품은 존재하기 어려운 것 같다.
 
따라서 오히려 브랜드의 순기능을 강조하는 방안이 훨씬 더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그 방안 중 하나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고객 경험 관리’라고 생각한다. 즉 브랜드는 단순히 고객이 제품을 사고 싶게 하는 것뿐 아니라 그 제품을 사용하고 사후 관리를 받는 과정을 통해서도 최대 만족을 보장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얄팍한 방법으로 구매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저 브랜드 물건을 사면 절대 후회하지 않아”란 말을 듣는 것이 브랜드 관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
 
필자는 산업자원부 국제통상 및 기획예산 담당 사무관으로 일하다가 2001년 베인&컴퍼니 컨설턴트로 입사했다. 금융, 소비재, 물류 부문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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