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학의 시조인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은 존재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한 방법으로 판단 중지(epoche´)와 현상학적 환원(pha..nomenologische Reduktion)을 제시한다. 후설이 볼 때 존재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가장 큰 요인은 경험주의와 실증주의를 금과옥조로 삼는 자연과학적 태도다. 이를 극복하려면 우선 기성 가치와 관습적 생각, 이론들을 머릿속에서 지우고(판단 중지) 초연한 순수 주관성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현상학적 환원)는 주장이다. 장자 역시 사람의 눈에 나타나는 현상은 존재의 본질과 다르다며 비본질적인 존재의 모습을 망량(罔兩, 그림자의 그림자)이라고 불렀다. 진재(眞宰), 즉 존재의 본질에 접근하려면 감각기관을 통한 지각을 중지하고 판명(判明)한 정신을 통해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편집자주 Fable Management의 연재는 이번 호로 마칩니다.
지름이 1㎝인 원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는 평면을 상상해보자. 두 원 사이의 간격은 3㎝다. 간격이 그다지 넓지 않으므로 두 원은 동시에 일별할 수 있고, 정상 시각을 가진 사람의 눈으로 볼 때 같은 크기로 지각된다.
만약 왼쪽 원의 둘레에 지름이 0.5㎝인 원을 빙 둘러 가면서 그려 넣고, 오른쪽 원의 둘레에는 지름이 2㎝인 원을 그려놓을 경우 두 원의 크기는 어떻게 보일까? 이번에는 왼쪽의 원이 더 크게 보인다. 큰 원에 의해 둘러싸인 원보다 작은 원에 의해 둘러싸인 원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지각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올바른 지각이 아니라 일종의 착시 현상이다. 주변 환경이 변화됨에 따라 본질적인 원의 모습은 사라지고 본질과는 동떨어진 변형된 원이 인간의 시야에 새롭게 현상된다. 철학의 한 분파인 현상학은 이러한 점에 착안, 존재의 본질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사회문화적 조건들을 찾아내 심문한 후 존재가 가진 원래의 제 모습을 찾으려는 학문적 시도다.
판단 중지와 현상학적 환원
진리에서 멀어진 존재에 제자리를 찾아주는 방법은 뭘까? 현상학의 시조인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은 판단 중지(epoche´)와 현상학적 환원(pha..nomenologische Reduktion)이라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후설이 볼 때 존재의 본질을 왜곡하는 가장 큰 요인은 경험주의와 실증주의를 금과옥조로 삼는 자연과학적 태도다. 개인의 경험에는 편차가 있으며 필연적으로 오류가 따른다. 경험을 기준으로 삼으면 어떠한 보편적 진리도 정초할 수 없다. 존재의 본질을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성 가치와 관습적 생각, 이론들을 머릿속에서 싹 지워야 한다. 후설은 이를 판단 중지라고 한다. 그런 후 이런 것들로부터 초연한 순수 주관성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현상학적 환원)고 주장한다. 그곳에서 선험적으로 주어진 순수한 자아(주체)를 통해 의식과 지각의 본질을 규명하는 것이 현상학의 학문적 목표다.
『장자』 ‘소요유’ 편에서는 존재의 본질, 진리의 본질을 진재(眞宰)라고 표현한다. 장자에 따르면 이러한 진재는 우리 가까이에 있다. 다만 우매한 인간들이 진재를 추구하는 방법론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실마리를 찾지 못할 뿐이다.
“참된 진리를 주관하는 실체가 존재한다. 그것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 작동 방식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若有眞宰 是亦近矣 而不知所爲使 而特不得其朕, 약유진재 시역근의 이부지소위사 이특부득기짐)”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실리콘밸리로 간 노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