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를 ‘누군가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면 모든 사람이 강사라고 볼 수 있다. 강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상대방의 머릿속에 각인될 수 있는 좋은 강의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강의는 수강생들의 장기 기억 속에 남아 궁극적으로 수강생을 변화시켜야 한다. 필자는 우리 뇌의 인지 프로세스를 감안한 효과적인 강의법으로 1) ‘chunking(덩어리 짓기)’으로 한 번에 기억해야 할 개수 줄이기 2) ‘If I were…’의 사고방식으로 교육생들의 동기에 맞추기 3) 퀴즈나 말하기를 통해 교육생의 반복적 학습 유도하기를 제시했다.
초연결(hyper connectivity)로 대변되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아 사람과 사람 간의 연결 수단으로서 강의의 중요성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있다. ‘강의의 시대’라고 부를 만하다. 기업에서 강의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더라도 기업 교육시장 5조2000억 원 중에서 강의와 강연이 57%인 2조9960억 원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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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는 보편적인 소통 수단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또 기업에서도 강연 형태의 소통을 통해 조직의 전략이나 철학에 대해 소통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 질문 한 가지를 던져보자. 강사란 누구인가? 강의를 직업으로 하는 전문강사만 강사인가. 강사를 ‘누군가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폭넓게 정의하면, 강사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즉, ‘우리는 모두 강사’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라는 의미다. 역사, 문학, 과학 등 전통적으로 전달자의 전문지식이 요구되는 분야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다양한 형태로 생활 속에서 겪은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강의'라는 이름으로 전달하고 있는, 말 그대로 ‘강의의 시대’다. 강의나 강사와 관련된 분야가 현재 양적인 면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이유다.
강의 시장의 양적인 성장은 자연스럽게 질적인 접근, 즉 ‘좋은 강의’에 대한 요구로 이어진다. 강의를 이용하는 수요자, 즉 청중이나 교육생들은 무수히 많은 강의 중에서 어떤 기준으로 듣고 싶은 강의를 선택할까? 그들의 선택 기준은 바로 ‘좋은 강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좋은 강의’란 무엇이고, 그 성공을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뇌과학 원리와 기업교육 현장에서 쌓은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자 한다.
“좋은 강의란 청중이나 교육생의 입장에서 유익하게 ‘장기 기억’으로 남는 강의다.”
그럼 어떻게 강의하는 것이 청중과 교육생들에게 강의 내용을 장기 기억시키는 데 효과적일까? 이에 유용한 세 가지 방법으로 ‘뾰족하게’ ‘촉촉이 적신 후에' ‘기억을 사용하게'를 꼽을 수 있다.
뾰족하게! 한 번에 기억해야 할 개수를 줄여라!“강의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강의나 강연 기회가 많은 임직원이나 교육담당자가 종종 묻는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질문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좋은 질문이 좋은 대답을 만드는 법이니까. 이 경우 질문을 바꿔서 거꾸로 자신에게 질문해보자. “교육생이 당신이 말하는 것을 기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로. 기억되지 못하는 강의는 결코 좋은 강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강의의 목적은 궁극적으로는 전달받은 사람들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다. 변화의 내용이 지식수준이든, 동기(動機)의 정도든, 또는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든지 간에. 그런데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는 먼저 외부 자극에 대한 지각(perception)이 바뀌어야 하는데 이 지각에 영향을 주는 것은 단기 기억이 아닌 장기 기억(long-term memor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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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처리의 위킨스 모델에서 보듯이 만약 강사에게서 전달받은 지식과 경험이 그들의 장기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으면 지각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결국 어떠한 반응(response)도 불러일으킬 수 없다. 즉, 변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강의는 결코 좋은 강의라 부를 수 없다.
따라서 강의를 잘하고 싶다면 이 ‘기억’이라는 키워드를 깊이 파고들 필요가 있다. 우리들이 외부 자극에 대해서 지각하고 처리하는 과정을 인지 프로세스(Cognitive Process)라고 한다. 자극을 기억으로 저장하는 정보 처리 과정이다. 여기에서 기억은 인지 프로세스의 일부분이 아니라 시작과 끝, 즉 인지 프로세스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청중과 교육생들에게 자신의 강의내용을 보다 효과적으로 기억하게 할 수 있을까? 전달 내용을 파이프로, 장기 기억을 땅으로 비유해보면 아래 그림(CaseⅠ)과 같이 기억시킨다는 것은 파이프를 땅에 깊게 고정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땅에 파이프를 깊이 박기 위해서는 A와 B 중 어떤 경우가 효과적일까? 직관적으로 봐도 알 수 있듯이 A다. 기억의 과정도 이와 동일하다.
효과적으로 기억시키기 위해서는 끝을 뾰족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는 기억할 정보의 개수를 줄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우리 뇌는 한 번에 많은 양을 동시에 처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린스턴대 조지 밀러(George A. Miller) 교수는 ‘매직 넘버 7’이란 개념으로 우리 뇌의 처리 용량의 한계를 설명했다. 밀러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이 단기간에 기억할 수 있는 정보, 정확히 말해서는 작업 기억의 정보 개수는 7±2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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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전달할 내용이 많다면 한 번에 전달할 개수를 줄여야 한다. 이 경우 줄인다는 것은 전체 정보의 양이 아니라 우리 뇌가 한 번에 작업 기억으로 처리할 양의 수를 줄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chunking(덩어리 짓기)’가 필요하다. 만약 전달할 내용이 고양이, 아파트, 휴대폰, 장미, 휴지, 독수리, 우산, 유조선, 노트북, 코끼리, 라일락, 볼펜이라고 해보자. 기억시킬 정보가 총 12개로서 한 번에 처리하기엔 양이 너무 많다. 이대로 전달한다면 CaseⅠ의 끝이 무딘 파이프(B)처럼 땅속, 즉 교육생의 장기 기억에 파고 들어가기 힘들어진다. chunking으로 한 번에 처리해야 할 기억의 개수를 줄여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생물과 무생물로 chunking하는 식으로 말이다. 생물에 대한 정보량이 많다면 이것을 또 동물과 식물로 chunking할 수 있다. 한 번에 기억할 정보량을 줄이는 것, 이것이 효과적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첫 번째 방법인 ‘뾰족하게'이다.
촉촉이 적신 후에! 먼저 교육생들의 동기에서 강의를 시작하라!“교육생들을 동기부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나요?”
이 질문을 하면 대부분은 순간 멈칫거리며 ‘강사는 교육생들의 참여 동기를 올려 강의에 몰입하게 하는 것인데, 이런 엉뚱한 질문이라니…’라는 반응을 보인다. 물론 필자도 동기부여는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누군가에게 동기를 부여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책을 읽기 싫어하는 아이나 매사에 무기력한 직원에게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독서나 일하고 싶은 동기를 부여하는 일에 성공한 경험이 있는가? 아마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효과적일까? 여기에 도움이 되는 사례로 『설득의 심리학2』의 저자인 로버트 치알디니 교수의 재미있는 비유가 있다.
“말을 잘 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말이 가고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우선 말이 가고 있는 방향에 맞춘 다음, 그러고 나서 가고 싶은 곳으로 천천히 용의주도하게 고삐를 조정해도 늦지 않는다. 처음부터 대뜸 원하는 방향으로 말을 잡아당긴다면 우리는 쉽게 지칠 것이고 아마 우리를 태운 말도 성질을 부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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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타는 것처럼 처음부터 강사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교육생들의 고삐를 죄지 않아야 한다. 고삐를 죈다고 교육생들이 말처럼 성질을 내지는 않겠지만 결코 좋은 강의 방법이라 할 수는 없다. 교육생들이 가지고 있는 동기를 파악한 후 거기에서부터 강의를 시작한 뒤 점차 의도했던 목표로 천천히 조정해 나가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강사의 역할은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생의 동기를 발견하고 확장시키는 것이다. 사전에 교육생들과 접촉할 시간이 없어 동기를 발견하기 어렵다면 ‘If I were…’ 방법을 활용해보자. 역지사지로 자신이 교육생인 것처럼 생각하고 스스로 묻고 답하는 것이다. ‘만일 내가 OO 업무를 한다면, 이 강의에서 무엇이 궁금할까?’라는 식으로.
그리고 강의 도입부에서 ‘If I were’로 생각한 것들을 질문을 통해 교육생들에게 확인해 보자. 그 과정을 통해 교육생들은 강사가 그들에게 ‘의미 있고 필요한 것’을 전달해 주리라는 기대감도 가지게 된다. 그때가 기억의 필수 요건인 주의집중(Attention)이 시작되고 뇌가 활성화되는 순간이다.
파이프 비유로 돌아가보자. 파이프의 끝이 똑같이 뾰족하다면 마른 땅과 젖은 땅 중 어디에 파이프가 더 잘 들어갈 수 있을까? 당연히 젖은 땅일 것이다.
기억도 마찬가지다. 교육생들은 그들의 뇌가 활성화돼 있을 때 강사가 전달하는 내용을 훨씬 잘 기억한다. 비유하자면, [그림 Case Ⅱ]와 같이 강사의 메시지 파이프는 교육생의 뇌가 촉촉이 젖어 있을수록 더 깊이 잘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교육생들의 뇌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의 동기와 주의집중을 유도하는 방법 외에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들의 알고 있는 사전지식에서 강의를 시작하거나 강사와의 감정적 교류(Rapport)를 강화하는 것도 뇌의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좋은 강사의 공통점 중 하나가 이 세 가지 방법 중 어느 것을 더 많이 사용하든지 간에 교육생들의 뇌를 충분히 활성화시킨 후 강의를 시작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기억하자. 파이프를 깊게 박고 싶다면 항상 땅을 촉촉이 적셔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을 사용하게! 묻고 그들이 답하게 만들어라!강의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아래 질문을 한 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교육생들이 열심히 강의 슬라이드를 보는 것 같은데 막상 슬라이드 내용을 물어보면 대답을 잘하지 못합니다. 강사의 문제인가요? 교육생의 문제인가요?”
누구의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강사일까, 교육생일까? 누구의 문제도 아니다. 단지 외부 정보를 피상적으로 기억하는 것이 우리 뇌의 기본적인 특징일 뿐이다.
『더 브레인』의 저자 데이비드 이글먼 스탠퍼드대 신경과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해 간단한 실험을 했다. 옆의 그림인 일리야 레핀의 ‘뜻밖의 손님(The Unexpected Visitor)’을 피실험자들에게 3분 동안 보여주고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그들의 기억을 확인했다.
“벽에 그림이 몇 개 걸려 있었나요?”
“아이들은 몇 명이었나요?”
“방 안에 어떤 가구가 있었나요?”
“바닥은 카펫이었나요, 아니면 마루였나요?”
“뜻밖의 손님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죠?”
질문을 받기 전에는 피실험자 모두 그림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안다고 말했다. 그런데 막상 세부사항을 묻는 위의 질문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림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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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그 이유를 우리 뇌의 아주 기본적인 작동원리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이 얘기할 수 있다. 우리 뇌는 전체 몸무게의 2%이지만 전체 에너지의 20%를 소비하는 기관이다. 뇌는 에너지 소비량이 많기 때문에 자기보존 원리에 따라 필연적으로 에너지를 매우 절약해서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이러한 특징을 강조해서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라고 부른다.
에너지의 효율적 사용이라는 숙명을 안고 있는 우리 뇌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 중 자신에게 의미 있고 필요한 것만 마치 구두쇠처럼 최소한의 양만 처리해 기억하려고 한다. 앞의 그림을 우리 뇌가 피상적으로 처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닥이 마루인지, 카펫인지는 질문을 받기 전에 의미 있는 정보가 아니므로 여기에 귀중한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사는 청중이나 교육생들이 강의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부분이라면 그들의 기억을 확인하고 반복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강사가 강의 내용을 다시 말해주는 것보다 교육생들에게 그들의 기억을 사용하게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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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인출(retrieval)이라고 한다. 기억은 사용할수록 공고화되고 오래가기 때문이다. 기억의 사용에 효과적인 방법은 퀴즈 같은 간단한 기억 시험이나 강의 내용을 자신들의 언어로 요약하기 등이 있다.
강의의 성과는 결국 ‘기억'으로 귀결된다. 기억하는 내용도 없었는데 막연히 좋았다는 느낌만 있는 강의를 ‘좋은 강의’라 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냥 게임과 같이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으나 성과와는 거리가 먼 활동에 불과하다. 기업 현장에서 성과란 유익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변화란 기억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메시지 전달을 통해 성과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이 ‘기억'이란 키워드를 항상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한다. 강사든, 발표자든, 영업사원이든지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이다.
필자소개이수민 SM&J PARTNERS 대표/소장 [email protected]필자는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EMBA)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대자동차 교수실에서 전임교수로 활동한 후 교육컨설팅사인 SM&J PARTNERS를 운영하고 있다. ‘뇌과학을 활용한 강의법’과 ‘잡 크래프팅을 통한 업무 몰입’이 주된 강의 분야이며, 저서로는 『강사의 탄생: 뇌과학을 활용한 효과적 강의법』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http://www.smnjpartners.com 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