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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할 시간에 나 자신을 내맡겼다

한근태 | 245호 (2018년 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1970년대 초 경제학 박사 과정 중 깊은 내면적 체험으로 깨달음을 얻은 저자 마이클 싱어는 세속 생활을 접고 은둔하며 요가와 명상에 몰두한다. 이 책은 그가 내적 평화를 체험한 후 각종 사업과 봉사, 교육 활동에 활발하게 진출하게 된 40년간의 여정을 담고 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나 자신을 삶에 내맡겼더니 생각이 명료해졌고 어느새 연 매출이 수억 원에 달하는 회사의 CEO 자리에까지 오르게 됐다는 경이로운 체험을 소개한다.

세상만사가 개인 소망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세상은 내 소망과는 상관없이 흘러간다. 어떤 일은 일어나야 하고, 어떤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은 말 그대로 소망일 뿐이다. 뭐든 자기 뜻대로 세상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면 사는 것이 힘들다. 자기 마음대로 되는 일보다는 그렇지 않은 일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의지를 갖지 말라는 건 아니다. 의지는 필요하지만 의지를 갖는다고 해서 모든 일이 바라는 대로 일어나는 건 아니란 말이다. 삶 자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은 내 바람과는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이번에 소개할 책 『될 일은 된다』는 큰 기업을 운영하는 CEO의 회고록이다. 그는 한번도 이런 회사를 경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에 저항하는 대신 받아들였다. 힘들게 인생과 싸우는 대신 원하는 바를 내려놓고 우주의 힘에 모든 것을 맡기자고 생각했다. 일명 ‘내맡기기 실험(surrender experiment)’이다. 근데 인생이 잘 풀렸다. 한 가지 일이 다른 일과 맞물리면서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났다. 원하지 않았지만 거대 기업 사장이 된 것이다. ‘내맡기기’는 의지 없이 넋 놓고 사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펼쳐지는 일을 맑은 영혼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이를 지표 삼아 내 의지를 발휘했을 때 일어난다. 저자의 1인칭 대화법으로 책 내용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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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뭔가를 할 때 거기에 대해 늘 딴소리를 하는 또 다른 내가 있다. 계속해서 뭔가 코멘트를 달면서 “좋다, 싫다, 그건 불편하다”고 얘기한다. 이 목소리는 한시도 쉬지 않고 말을 했다. 영혼이 시끄러웠다. 끊임없이 내게 뭔가를 주장하는 또 다른 내 입을 다물게 하고 싶었다. 그 목소리의 정체는 무엇이고,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었다. 그러다 『선의 세 기둥(Three pillar of Zen)』이란 책을 만났다. 이 책의 메시지는 명쾌했다. 마음에 관해 읽고, 말하고, 생각하기를 멈추고 그것을 조용히 침묵시키는 일을 하라는 것인데 그게 명상이란 것이다. 이후 조용한 곳에 앉아 명상을 시작했다. 호흡이 들고 나는 것을 지켜보며 머릿속으로 ‘무의 소리’를 반복해 읊었다. 내쉬는 숨과 복부 온기를 하나로 잇는 부드러운 기운의 흐름 속으로 나를 맡겼다. 그 기운은 집중할수록 강해졌고 마침내 내 몸과 주변에 대한 모든 인식이 사라졌다. 복부 중심에 쌓이고 팽창하는 따뜻한 에너지 흐름만을 자각할 수 있었다. 이마로부터 내려온 어떤 기운이 단전까지 내려가면서 경계가 분명한 하나의 장을 형성했다. 수직으로 뻗은 에너지 흐름이다.

그런 경험을 반복하자 ‘나’란 존재는 사라졌다. 매번 할 때마다 그 상태는 고양됐다. 그 상태에 머물고 싶었다. 그곳에는 한없이 깊은 평화만이 존재했다. ‘절대적 고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고요’. 나는 진정한 침묵의 소리를 경험했다. 무엇보다 재잘거리는 수다쟁이가 사라졌다. 남은 것은 존재에 대한 자각뿐이다. 걸으면서도 내가 변한 것을 알아차렸다. 발의 작은 움직임이 느껴졌고 근육의 움직임까지 모두 느껴졌다. 발걸음은 물 흐르듯 유연하게 이어졌고 난 그 움직임에 취했다. 이 상태가 몇 주간 이어졌다. 누구에게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거의 말을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너무 아름답고 고요했다.

명료한 상태로 변한 나

내 자신이 명료한 상태로 변했다. 아주 강렬하고 흔들림 없는 일념이다. 절대 이 상태를 떠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고 그게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그 평화를 무너뜨리거나 초월적 고요함을 방해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가끔씩 피우던 마리화나도 끊었다.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이후 명상을 좀 더 길게 하기 위해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났다. 시간이 있고 앉을 곳만 있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명상을 했다. 외부 생활이 차지하는 부분은 점점 작아지고 혼자만의 시간은 늘어났다. 모든 관심을 평화롭게 존재하는 법을 배우는 데 썼다. 무엇을 볼 때도 눈이 아닌 이마를 통해 그 대상을 응시했다. 그곳에 소용돌이 같은 압박을 자주 느꼈다. 명상을 하지 않을 때도 명상 상태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노력하지 않아도 그런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삶이 예전보다 가벼워졌다. 혼자서 쓰는 드라마가 여전히 올라오긴 했어도 그것이 나를 끌어내리지는 못했다. 내면의 에너지 흐름 덕분에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개인적 자아로부터 벗어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게 됐다. 깊은 진리를 찾고 있는 명상가가 되고 싶었다. 어디에 살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혼자 있을 수 있으면 됐다. 내 삶은 아주 단순해졌다. 명상을 하고, 요가를 하고, 정기적으로 수업에 나가는 게 내 생활의 전부였다. 갖고 있는 물건도 거의 없었고, 점점 은둔자가 되고 있었다.

명료함이 준 선물

난 박사 과정에 있었는데 학위의 의미도 없어졌고 수업도 점차 시들해졌다. 그래도 지도교수 권유에 따라 기말보고서는 쓰기로 했다. 하지만 수업도 제대로 듣지 않고 자료 조사도 하지 않아 막연했다. 뭘 써야 좋을지 몰랐다. 어느 날 보고서를 쓰기로 했다. 그 주제에 대해 아는 것을 다 써보기로 했다. 일단 쓰기 시작하자 생각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써야 할지 아이디어가 전혀 없었다. 그러다 하나둘 생각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쓰고, 또 쓰면서 순식간에 보고서를 썼다. 일필휘지한 것이다. 중간에 아무것도 방해하지 않았다. 모든 과정이 저절로 펼쳐지도록 방치했을 뿐이다. 시작하면서 보고서 전체에 대한 영감이 떠올랐고 그것을 소화해 구체화한 게 전부였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림이나 음악에서는 시상이 떠오르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내가 쓴 건 그런 소프트한 것이 아닌 딱딱한 경제학 보고서였다. 며칠간 초고를 다듬은 후 보고서를 제출했다. 3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었다. A 학점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교수는 자기 밑에서 박사 논문을 쓸 것을 제안했다. 그날 창조적 영감과 논리적 사고 간 차이를 분명히 봤고 생각이 어디서 오는지도 알았다.

그 영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훨씬 깊은 곳에서 왔다. 완벽한 고요 속에서 인위적이고 부산한 노력도 없이 저절로 흘러왔다. 아무리 애를 쓴 들 내 노력만으로, 내 논리적 지식만으로 그 보고서를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탁월한 영감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점점 더 깊은 내면으로 가고 싶은 열망이 커졌다. 누군가와 미칠 것 같은 사랑에 빠졌는데 그 상대를 만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장소를 찾으러 다니다 그런 장소를 찾았고, 집을 직접 짓기 시작했고, 마침내 명상용 오두막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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