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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고통에 품위를 부여한다, 끈기 있는 몰입으로 영혼을 치유하라

송규봉 | 242호 (2018년 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많은 직장인이 ‘글쓰기’를 ‘자기계발’의 중요한 영역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 글깨나 쓴다는 유명인들의 ‘글쓰기 방법론’ 책과 강의가 넘쳐나고 있다. 글쓰기 비법에는 특별한 게 있지 않다. 매일매일 글을 쓰는 습관, 좋은 글이 나올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고쳐가는 근성이 핵심이다. 평범한 주부, 직장인에서 ‘작가’로 변신한 사람들은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이 원칙을 만들어나갔다. 지도 분석, GIS 데이터 분석을 업으로 삼는 입장에서 보면 지도 제작과 글쓰기도 그 원리는 거의 일치한다. 독자를 나침반 삼아 가장 좋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점과 선, 면과 화소로 연결하며 마지막에 욕심을 버리고 최대한 덜어내는 것. 성공한 지도 제작과 분석, 사랑받는 글과 책은 이 지점에서 엄청나게 큰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
 
직장인의 글쓰기

직장인 97%가 글을 더 잘 쓰고 싶어 한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보고서와 문서작성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다’고 88%가 답했다. ‘글쓰기 능력이 성공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답변한 비율은 78%였다.1  본인의 글쓰기 점수는 10점 만점에 평균 6.4점을 줬다. 글쓰기의 중요성은 사원(84%), 대리(89%), 과장·부장(91%) 순으로 직급이 높을수록 비중이 올라갔다. 글쓰기의 어려움은 e메일(9%), 자기평가서·MBO(22%), 보고서(56%), 제안서·기획서(67%) 순으로 높아졌다.2

요즘 글쓰기 강의가 부쩍 늘었다. 인문학의 열기가 읽기에서 쓰기로 옮겨가는 것 같다. 그런데 글쓰기 강좌의 기본 특성은 여전하다. 유명 작가, 대학교수, 직업적 저자들이 노하우를 강의하면 일반인은 경청한다. 그 또한 나쁘지 않다. 그럼에도 정말 자신의 얘기처럼 받아들여질까? 그저 특별한 사람들의 얘기로 들리지는 않을까? 일부러 직장인의 실사례를 찾아봤다. 직장인 6명의 글쓰기 이야기를 하루 일정 속에서 담아보려 한다.

3:00∼6:30 - 중장비 대기업 직장인 김솔

그는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중장비를 만드는 대기업에 다닌다. 10년 동안 신춘문예에 계속 도전했다. 서른아홉에 등단했다. 등단에 목을 매지는 않았다. 좋아서 글을 써왔다. 회사 동료들 중 그가 소설가인지 아는 사람이 몇 안 된다. 그는 직장에서 중장비 수리를 컨설팅하는 업무를 한다. “굴착기 같은 중장비가 고장 나면 고칠 방법과 작동 원리를 알려주는 일을 합니다. 정해진 답이 있는 일이죠. 그래서 정반대 성격의 소설 쓰는 일이 제겐 즐거운 취미예요.”

직장생활 10년 동안 틈틈이 써온 단편들을 모아 책을 냈다. 휴대전화 환청과 진동을 착각하는 이들이 늘었다는 기사를 읽고 선 ‘환각지통(幻覺肢痛)’을 썼다. 봉급으로 병아리를 받은 우즈베키스탄 공무원들을 소개한 해외 토픽을 보고선 ‘병아리’를 썼다. 글을 쓸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200자 원고지 20장 내외의 초단편 소설을 주로 쓴다.3  작품집 세 권을 펴냈다.

그의 소설집 『망상, 어』에 실린 글들은 직장인들이 출퇴근하는 짧은 시간에 한 편씩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썼다. “짧다 보니 배경도 필요 없고, 에피소드 하나, 상황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분량이 채워지더라고요. 이것저것 다 걷어내니 오로지 이야기만 남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제게도 의미 있는 작업이었어요.” 하루 중 가장 글이 잘 써질 때는 출근 전 30분이란다. 소설을 쓰는 데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을 메우기 위해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6시30분 집을 나설 때까지 글을 쓴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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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8:30 - 지방행정공무원 홍도의

그는 서울에 산다. 경기도 북부 직장까지 편도 2시간 출근길이다. 뭔가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스마트폰을 꺼내 이어폰을 꽂고 좋아하는 음악을 튼다. 스마트폰은 딱 거기까지다. 일부러 책을 읽기 시작했다. 출근 시간 전철에서 책 읽는 사람은 한 칸에 두세 명 정도다. 평소 관심 있던 역사서와 문학책을 다양하게 읽었다. 어느 순간부터 알 수 없는 충만감이 찾아왔다. 해를 더할수록 책 읽기에 빠져들었다. 자연스럽게 독서기록장을 쓰기 시작했다.

지난 6년간 그가 읽고 기록한 책은 600여 권에 달한다. 공직생활에서 글쓰기는 보도자료와 보고서처럼 규격화된 글쓰기가 대부분이다. 시립도서관에서 주관하는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일대일 글쓰기 코칭도 받았다. 이젠 매일 글을 써서 온라인 동호회 카페에 올린다. “글쓰기는 나의 삶을 나날이 고양시킨다. 20명 카페 친구들의 글을 읽고 서로 응원하는 댓글을 쓰거나 공감하며 쓰기를 이어간다.” 처음에는 원고지 5장 쓰기도 버거웠는데 이제는 10장 분량도 부담이 없다. 읽고 쓰는 동안 그는 자신을 더 자주 만났다. 평소 그냥 지나쳤던 일상도 새롭게 바라보게 됐다.5

9:00∼12:00 - 대기업 부서장 황명구

개발부서 부서장으로 일할 때다. 전년도 사업부 경영실적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면서 모든 간부가 주말에도 비상근무를 했다. 실적 개선을 위해 매일 초긴장 상태로 업무에 매달릴 때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되는 업무에 대한 압박감은 마치 유령처럼 황 부장을 에워싸다 갑자기 덮칠 것 같았다. 불안한 주말을 보내고 출근하자마자 시작된 업무회의는 11시를 넘겨 끝났다. 팽팽한 긴장감으로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간 것 같았다. 부서원들을 불러 후속회의를 하려고 했지만 그만뒀다.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황 부장은 사무실 책상 모니터를 켜고 메모장 하나를 띄웠다. 마음속에 흐르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입력하기 시작했다. “임원에게 감히 대들기도 하고, 지시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글을 쓰다 보니 순간 마치 평화롭게 흐르는 강 위를 조용히 떠다니는 듯한 느낌이었다. 순식간에 한 시간이 흐르고 메모장은 격한 감정들을 쏟아낸 글로 가득 채워졌다. 발갛게 상기되고 굳었던 얼굴도 어느새 부드러워지고, 회의실을 나올 때 스트레스로 주름졌던 마음의 구김살도 펴져 편안해졌다. 새로운 에너지가 시나브로 생겨났다.”6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에 품위를 부여하는 일이다.’ 『쓰기의 말들』 서문에서 만난 문장이다. 글쓰기 모임에서 익명의 참가자가 남겨준 표현이다. 문학 치료에 참여하는 환자들은 자신이 글을 써놓고도 ‘내가 왜 이런 구절을 썼나’ 놀라는 경우가 많다. 글쓰기가 ‘감정의 객관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채정호 교수는 “감정은 말로 내뱉으면 상당 부분이 의미 없이 흩어지지만 글로 표현하면 더욱 명확해진다”면서 “자신도 몰랐던 내면의 감정이 정리되는 효과를 얻는다”고 했다. 글쓰기에는 치유 효과가 있다. 마음속에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가 글쓰기를 통해 외부에 표출돼 심신 건강을 도와준다.7

12:00∼13:00 - 시청역의 점심시간

점심시간을 이용해 공부, 운동, 쇼핑 같은 개인적인 시간을 활용하는 직장인들이 있다. 런치투어족(Lunch Tour 族)이라 부른다. 2013년에 서울시청 주변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들이 작은 공동체를 만들었다. 공동체 이름은 ‘시청역의 점심시간’으로 지었다. 글쓰기, 스터디, 워크숍, 북클럽 다양한 수업을 진행했다. 일주일간 모은 영수증을 활용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이야기하고, 아무에게도 보내지 않을 편지를 쓰기도 한다. 이 모임에 참여하는 회원들이 ‘런치투어’ 하는 대상은 바로 자신이다.

대구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장인옥 씨는 워킹맘이다. 그녀는 자투리 시간 활용의 고수다. “자투리 시간은 우리가 느끼지 못하지만 하루 일과의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자투리 시간에 그녀는 읽고 쓴다. “쓰기를 권하는 이유는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하고, 정리하면서 답을 찾아간다. 나를 만나는 시간이 없다면 매일 되풀이되는 일상에서 다시 일어나는 힘을 얻지 못할 것이다.”8

장인옥 씨는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6년 동안 2000권의 책을 읽었다. 자신의 독서 체험을 담아 『일일일책』을 써서 저자가 됐다. 그녀가 전문대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은 변호사 사무실이었다. 남편의 실직 후 외판원과 마트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게 됐다. 매사를 부정적으로 대하고 마음속의 분노를 다스리기 어려웠다. 원형 탈모를 겪기도 했다. 서른아홉 생일을 맞아 ‘정말 잘살아 보고 싶어서’ 절실한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독서는 쓰기로 이어졌다. 읽기와 쓰기로 인생을 바꿨다.

15:45∼19:45 -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한 최종 프레젠테이션

직장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글쓰기는 제안서 작성이다. 제안 내용을 평가자들로부터 승인받는 과정은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제안 작업은 한정된 시간 안에 경쟁 프레젠테이션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올림픽 유치가 그렇다.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는 제123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결정했다. 2011년 7월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렸다. 평창은 세 번째 도전에 나섰다. 평창 올림픽 유치의 주역으로 보통 김연아와 나승연을 기억하지만, 또 한 명의 핵심인사가 있다. 테렌스 번스다. 그는 평창을 두 번이나 좌절시킨 장본인이었다. 그는 2010년 캐나다 밴쿠버와 2014년 러시아 소치의 동계올림픽 유치 준비를 총괄한 스포츠마케팅사의 CEO였다.

테렌스 번스(Terrence Burns)는 올림픽·월드컵 대회 유치 전문가다. 동시에 뛰어난 스피치 라이터(Speech Writer)다. 2008년 베이징, 2010년 밴쿠버, 2014년 소치, 2018년 평창,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유치를 진두지휘했다. 국제경기 유치 경쟁은 극도로 치열하다. 2011년 평창은 독일 뮌헨과 프랑스 안시와 경쟁하고 있었다. 7월6일 최종 프레젠테이션은 독일 뮌헨이 오후 3시45부터 시작했다. 프랑스 안시는 오후 5시25분부터, 평창은 오후 7시5분부터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해 7시45분에 끝났다.

평창준비위원회 나승연 대변인이 모두 발표를 시작했다. 그녀는 올림픽 정신에서 ‘끈기(Persistence)’와 ‘인내(Patience)’ 두 단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스포츠 정신은 모두 ‘끈기’와 ‘인내’가 기본이라며. 평창은 지난 10년 동안 두 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배우며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대한민국의 역사 자체가 ‘끈기’와 ‘인내’의 표본이라며 올림픽 정신과 근본적으로 연결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단어 두 개를 가지고 ‘올림픽’ ‘한국’ ‘평창’을 하나로 연결했다.

이전에 평창이 내건 핵심 슬로건은 ‘한반도의 평화’였다. 한반도의 평화를 다져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 메시지였다. 테렌스 번스는 기존 슬로건을 버렸다. 대신 ‘새로운 지평(New Horizon)’을 중심 개념으로 제시했다. ‘한반도 평화’는 한국인에게는 절실하지만 다른 나라 IOC 위원들에게는 와 닿지 않았다. 그는 동계스포츠의 불모지인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를 주목했다. 겨울 스포츠의 기반을 전 세계로 넓히자고 ‘새로운 지평’을 내세웠다. 김연아는 바로 자신이야말로 ‘새로운 지평’의 산증인이라며 설득했다. 다시 나승연 대변인이 발표를 마무리했다. 역대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세계지도에 표시했다. 미국 6번, 유럽 12번, 아시아 2번. ‘새로운 지평’을 아시아로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득은 먹혀 들었다.

테렌스 번스는 한 인터뷰에서 설득의 비결에 대해 대답했다. 첫째, ‘스토리’와 ‘왜’ 두 가지를 독창적으로 창조해야 한다. 그는 “최초 컨셉을 만들기 위해 최소한 3개월 이상 도시, 역사, 트렌드, IOC 위원들의 관심사를 조사하고 연구해서 분석한다”고 말했다. 둘째, 정서적인 공감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추가한다. 번스는 “하고 싶은 이야기 대신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기까지 심사위원들에 대해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9  셋째, 지속적인 고치기다. 그는 초안을 작성하고 최종 발표까지 2년 동안 수백 번 새로 고쳐 썼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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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24:00 - 전국은행연합회 김태훈 부장


직장생활의 단조로움을 떨치기 위해 스포츠나 다양한 문화 취미에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김태훈 씨는 독서를 선택했다. 그의 나이 서른 즈음이었다. ‘역사’와 ‘전쟁’이란 분야에 흥미를 느꼈다. 매일 반복되는 생활과는 전혀 다른 거대한 사건들과 인물들의 다채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순신을 만났다. 몇 년 동안 자료를 찾아 공부했다. 읽기는 쓰기로 번져갔다. 첫 저서 『이순신의 두 얼굴』은 13쇄를 찍었다. 마흔 즈음이었다.

김 부장은 영문학과 출신이다. “제 한문 실력은 형편없습니다. 이렇게 책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학자들의 연구 성과 때문입니다.” 그가 말하는 이순신의 매력은 평범한 사람이 비범해지는 과정에 있다. 그는 이순신을 “보통 사람도 그처럼 노력하면 최고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존재”라고 해석했다. “이순신은 언제나 자신에게 충실했던 분이었습니다.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밝은 미래를 본 그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을 위한 이순신’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를 출간했다. 쉰 즈음이었다.

저자가 되는 것은 평범에서 비범으로 가는 여정이었다. 글 쓰는 데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술자리를 삼가고 수면시간도 줄였다. 토요일 이른 새벽부터 쓰기 시작해서 ‘좀 쉬어야겠다’ 하고 고개를 드니 일요일 아침이 돼 있던 적도 있다고 했다. 힘들지 않았냐고 기자가 물었다. “전혀. 정말 재미있었다. 그냥 몰두해서 쓰기만 했다”고 답변했다.10  글쓰기가 고통스럽기만 한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글쓰기의 고통보다 기쁨이 더 큰 사람들은 쓰며 전진한다. 자신이 무엇을 쓰면 즐거워지는지 알아낸 김 부장은 지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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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장벽

글쓰기를 가로막는 첫 번째 장벽은 ‘재능론’이다. 국문학과 3학년까지는 꾸준히 글을 썼다. 창작반에서 읽고, 토론하고, 쓰기를 계속했다. 문득 어느 날 주변을 둘러봤다. 국문과는 글을 잘 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문단에는 눈부신 재능을 발휘하는 작가들이 넘쳐났다. 내 글을 들여다 봤다. 한심하고 절망스러웠다. 그래서 글을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글쓰기 재능이 없다”고 스스로 포기했다. 그 후로 10년 동안 같은 생각을 유지했다.

유학 시절 한국에서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인터넷 잡지를 만드는데 글을 보내달라는 것이다. 원고료는 없지만 꼭 써 달라고 했다. 마지못해 ‘써보마’ 약속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길 때 한 편씩, 유학생활의 고달픔을 달랠 겸 공부하는 내용을 써서 올리기 시작했다. 그다음엔 다른 친구가 만든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친구의 영어 논문을 한글로 옮기는 출판작업을 자청했다. 조금씩 글쓰기에 관한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 친구들 덕분이다. 너그러운 사람들과 더불어 글쓰기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2010년 ‘상상력 시리즈’의 일환으로 지도에 관한 책을 쓰게 됐다. 함께 작업한 경험 많은 저자들이 이끌어줘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책을 쓸 때 진정 내가 아는 것이 얼마나 부족한지 깊이 깨달았다. 초안에서 100쪽 분량을 완전히 들어내고 다시 쓰기도 했다. 겨우겨우 책을 끝냈다. 마라톤 같았다. 기록은 형편없지만 완주자로서 뿌듯했다. 글쓰기 태도가 좀 더 바뀌었다. 『미슐랭가이드』에 실리는 스타 셰프의 요리만 맛있는 것은 아니다. 텃밭에서 손수 길러 밥상 위에 내놓은 소박한 상차림은 어떤가. 누군가에겐 그것도 특별하다. 특급 요리는 아니어도 의미 있는 요리가 될 수 있다. 글쓰기도 뛰어난 필력을 펼치는 경우도 있고, 소박하고 진솔한 내면을 담아낼 수도 있다. ‘재능’은 ‘진심’과 더불어 성장한다.

자신만의 루틴 만들기

교보문고는 2006∼2015년 동안 소설의 누적 판매량을 집계했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국내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EBS는 베르나르를 직접 취재했다. 방송인 이윤석 씨는 “첫 작품부터 바로 인기가 높았는지” 물었다. “첫 작품 『개미』는 처음 6년 동안 여러 출판사에서 거절당했고 20번을 고쳐서 12년 만에 출간됐다.” 베르나르의 대답이다. 좌절하는 대신 “더 발전해야 할 부분이 있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출판사에서 별로라고 할 때마다 새로운 버전으로 다시 썼다. 슬픔이나 절망 대신 ‘책이 잘 읽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칠 것에만 몰두했다.11  베르나르의 재능은 오래 견디며 고치는 것이다.

글쓰기의 두 번째 장벽은 자기엄격성이다. 작가 수준의 잣대를 자신에게 적용한다. 자신의 미숙한 초본을 뛰어난 필자의 최종본과 비교한다. ‘역시 난 안 돼’ 한탄한다. 제대로 비교하려면 뛰어난 작가의 데뷔 이전 습작 시절에 휴지통에 버렸던 문장들과 지금 자신의 것을 비교해야 한다. 20번 다듬어서 출간된 『개미』가 아니라 처음 출판사에 들고 간 초고를 상상해볼 일이다. 결국 글쓰기는 초고를 대하는 태도가 좌우한다. 포기할 것인가? 고칠 것인가? 포기하면 끝이고 고치면 나아진다. 모든 초고에 따듯하고 합리적인 격려가 필요하다. 스무 번 고쳐 쓰면 아주 훌륭해질 것을 굳게 믿어야 한다.

세 번째 장벽은 자신만의 일상적 습관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우연과 영감에 의존한다. 우연히 영감이 찾아오지 않으면 쓸 수 없다. 기다리지 말고 찾아 나서야 한다. 베르나르는 오전 8시부터 12시까지 쓴다. 40년 된 습관이라고 했다. 직장인 김숨은 새벽같이 쓴다. 황명구 부서장은 메모장에 자신의 이야기를 일단 채워나간다. 장인옥 저자는 인터넷 카페 ‘주부독서연구소’에 수시로 글을 올린다. 테레스 번스는 2∼3년 동안 매일매일 고쳐 쓴다. 김태훈 부장은 자신의 열정이 꽂히는 대상자를 물색해서 퇴근 후 몰아치듯 쓴다. 가장 창의적으로 글쓰기할 수 있는 나만의 시공간 패턴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눈 뜨자마자 노트북을 열어 ‘아침일기’ 쓰기를 습관으로 만들고 있는 중이다.

글을 마치며: 지도공의 글쓰기

지도를 그리고, 지도를 연구하는 일을 한 지 꽤 오래됐다. 또 글을 쓰고 있다. 생각해보면 글과 지도 제작은 그 메커니즘이 거의 일치한다. 필자의 지도 작성 경험을 바탕으로 ‘직장인의 글쓰기’에 관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즉, 지도 제작에서 배운 교훈을 글쓰기에도 적용하겠다는 얘기다.

필자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독자가 나침반이다. 지도는 타인이 사용할 때 생명력을 얻는다. 쓸모없는 지도는 가치를 잃는다. 사용자의 필요와 지도의 내용이 연결될 때 가치가 만들어진다. 모든 지도는 나침반 방위표에 따라 제작된다. 글쓰기엔 독자를 나침반 삼아야 길을 잃지 않는다. 특정 대목에 푹 빠졌다면 다시 나와 나침반을 확인한다.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 왜 이 글을 쓰고 있는지, 전체 여정을 살펴야 한다.

둘째, 가장 좋은 데이터를 확보한다. 상상력에만 의존하는 지도는 쓸모가 없다.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장의 가장 생생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취재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지도제작자가 자신의 지도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된다. 지도를 넘겨받는 사람은 우물쭈물하며 건네는 지도를 신뢰하지 않는다. 글도 그러하리라. 지형과 맥락이 장악된 지도처럼 글을 쓰면 좋겠다. 데이터 확보가 빈약하면 수사법에 기대게 된다. 수사법만 가득한 글은 공허하다.

셋째, 점·선·면·화소로 연결한다. 복잡해 보여도 지도는 점(點), 선(線), 면(面), 화소(畫素) 네 가지로 만들어진다. 지도 위에 데이터를 올려놓고 찬찬히 들여다본다.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개의 지점이 서로 만나 새로운 의미로 연결될 때 흥미로운 지도가 시작된다. 마치 스타벅스 매장 분포와 상장기업 본사 위치가 유사한 패턴을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참신한 연결을 선(線)에 비유한다면, 글쓰기의 범위는 적당한 면적 안에서 멈춰야 한다. 경계선을 정해놓고 써야 한다. 화소(畫素)는 색감을 반영한 밀도와 강도를 표현한다. 어디를 어떻게 물들일 것인가? 지도는 시각화가 생명이다. 글도 시각화될수록 생동감이 높아진다.

넷째, 최대한 덜어 낸다. 지도 제작 초보 시절엔 스스로를 과시하는 데 골몰했다. 지금도 다 버리지 못했다. 한 장 안에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의욕 과잉이 드러난다. 그런 지도를 1인칭 시점 지도라고 한다. 상대방에게 꼭 필요한 내용을 간결하고 명료하게 압축하려면 에고(ego)를 최대한 버려야 한다. 3인칭 관찰자 시점을 높여야 한다. 내 눈에 좋아 보이는 내용부터 다시 의심해볼 일이다. 독자에게 꼭 필요한지 되짚어야 한다. 여기까지 작업하고 다시 첫째 원칙으로 돌아간다. 최대한 여러 번 되돌아간다.   

편집자주

DBR은 지리정보시스템(GIS)을 활용해 경영 효율성을 높이거나 혁신에 성공한 사례를 소개하는 ‘Management by Map’ 코너를 연재합니다. 지도 위의 거리든, 매장 내의 진열대든, 선수들이 뛰는 그라운드든 공간을 시각화하면 보이지 않던 새로운 정보가 보입니다. 지도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지혜와 통찰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글쓰기는 고통에 품위를 부여한다.

송규봉 GIS 데이터분석가 [email protected] 
필자는 컴퓨터 지도로 공간 데이터를 분석하는 GIS 애널리스트로 활동한다. 펜실베이니아대에서 GIS(지리정보시스템) 석사를 마치고 와튼경영대학원 GIS 연구소에서 일했다. 지금은 연세대 디자인경영 과정과 국민대 빅데이터 MBA 과정에서 겸임교수로 강의한다. 『지도 - 세상을 읽는 생각의 프레임』과 『빅데이터 전략지도』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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