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Manners
Article at a Glance – 자기계발
흔히 ‘동남아 시장’을 생각할 때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를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 달리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큰 문제없이 넘긴 필리핀 역시 최근 새롭게 떠오르는 중요한 시장이다. 우리나라처럼 국가 형성 과정과 이후 역사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컸고, 이슬람 문화보다 우리에게 친숙한 가톨릭 문화권이란 점이 매력도를 높인다. 그러나 익숙하고 비슷한 측면이 많이 보인다고 쉽게 생각했다가는 큰 어려움에 봉착할 수도 있다. 금기시되는 손가락 제스처 하나, 단어 하나로 비즈니스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
편집자주
과학화된 최신 경영기법과 최첨단 IT 솔루션을 바탕으로 비즈니스가 이뤄지는 지금 시대에도 결국 거래를 성사시키는 건 ‘사람’입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 활약하고 있는 요즘에는 각국과 지역의 문화와 관습을 이해하고 그에 걸맞은 매너와 에티켓을 지켜야 비즈니스에서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고객 서비스와 커뮤니케이션, 비즈니스 매너를 연구하고 강의해 온 박영실 박사가 국가별 비즈니스 매너를 연재합니다.
한때 아시아 ‘민주주의의 모범’이었고 ‘부국’ 진입을 앞둘 정도였던 나라. 그러나 오랜 마르코스 군부 독재 등으로 ‘아시아의 환자’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던 나라. 바로 필리핀이다.
그 어느 아시아 국가보다 먼저 발전을 이루기도 했고 1986년 국민의 힘으로 독재를 몰아낸 경험이 있는 나라다. 분명 저력이 있다. 동남아 시장을 떠올릴 때 보통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부터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슬람 문화권이 아닌 천주교 문화권이고 미국의 영향력이 강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필리핀 시장은 우리 기업들에는 문화적으로 더 친숙하고 접근하기 좋은 곳일 수 있다.
한국과 많은 공통점이 있고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갖고 있지만 우리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필리핀에서의 비즈니스 매너를 정리해본다.
선물과 호칭의 매너학
필리핀 사람들은 상대방의 사회적 지위에 민감하다. 상대가 의사, 변호사, 박사 등 전문적인 직함을 갖고 있는 경우 그 직함을 불러주는 게 좋다. 미국 문화에 익숙할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관계 초기부터 친숙함을 표현하기 위해 ‘미국식’으로 이름부터 부르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름이나 별칭은 상대가 먼저 그렇게 불러달라고 하기 전까지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비즈니스 관계에 있는 상대에게 소개 또는 인사를 건넬 때에는 오히려 더욱 엄격하게 Mr. 또는 Ms.와 함께 성을 부르는 것이 좋다. 영어를 쓰는 나라이기 때문에 영어로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는 것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필리핀에서 영어보다 더욱 널리 사용되는 말레이폴리네시아어파 언어인 타갈로그어(Wikang Tagalog)로 첫인사를 한다면 친밀감 형성에 효과적이다. How are you?/ Kumusta po kayo?(꾸무스타 뽀 까요?) 등 간단한 인사말 정도는 기억해두자. 더불어 필리핀에서는 상대가 무언가를 권유할 때 적어도 한두 번은 거절해야 미덕이라는 인식이 있다. 강요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 선에서 두세 번 정도를 권하는 것이 좋다. 필리핀 사람들은 상대방이 좋아하면 기꺼이 주고자 하는 호의적인 성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손님이 자신의 집에 있는 물건을 좋다고 말하면 그 물건을 기꺼이 주려고 한다. 그러니 어떤 물건이 좋아 보인다고 칭찬을 하더라도 너무 지나치지 않은 선에서 할 필요가 있다.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필리핀에서도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기 전에 비싼 선물을 주는 것은 비즈니스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차라리 비싸지는 않더라도 의미가 담긴 한국의 전통차 혹은 기념품 등을 선물하는 것이 훨씬 좋다. 시간이 흐른 뒤 격조 있는 선물을 하고 싶다면 한국 인삼을 준비해보자. 필리핀에서는 한국 인삼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좋다. 우리나라처럼 필리핀 역시 연말에는 주요 거래처 또는 관계자에게 선물을 하기도 하고 출장이나 여행을 다녀온 뒤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방문한 지역의 특산물 등을 주는 것도 일반적이다.
손가락 제스처를 조심하라
앞서 언급한 매너들은 사실 대부분의 나라에서 통용될 수 있는 일반적인 매너와 많은 부분 일치한다. 그러나 우리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금기나 주의해야 할 점이 있으니 이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우선 ‘제스처’부터 살펴보자. 필리핀에서는 손가락이나 손으로 탁자를 두드리는 것은 여성에 대한 모욕의 의미가 될 수 있다. 가끔 초조하거나 무료할 때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는 습관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필리핀 출장을 갔다면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또한 필리핀에서는 우리가 쓰는 OK 사인(손가락 모양)이 돈을 의미한다. 만국 공통의 제스처라 생각하고 손가락으로 OK 표시를 했다가는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한국인들이 절대 생각하지 못하는, 아주 재미난 ‘이색 에티켓’도 있다. 필리핀에서는 식사 후에 트림하는 것이 결례가 아니다. 음식이 아주 맛있었고 또한 주님께 음식을 주셔서 감사한다는 표시도 된다.
명심해야 할 사항이 또 하나 있다. 바로 ‘stupid’라는 단어다. 보통 영어권에서 친한 사람들끼리는 장난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이 단어가 필리핀에서는 절대적 금기어다. 필리핀이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을 당시 스페인 사람들이 필리핀인들을 가리켜 “stupido”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 탓에 ‘stupid’라는 단어는 필리핀에서 그 단어 자체 의미보다 더 큰 부정의 의미를 지닌다.
교통 체증, 약속시간, 그리고 거절
필리핀은 국가적 차원의 인프라 투자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탓인지 교통 체증이 심한 곳이 많아 이동 시 소요시간을 예측하기 힘들다. 한때 ‘Filipino Time’이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로 약속시간에 늦는 사람이 많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필리핀에서도 민주화 이후 본격적인 경제개발 과정을 거치면서 Filipino Time이 사라지고 있다. 필리핀에서도 최근 비즈니스 약속시간 엄수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어설픈 옛 지식으로 필리핀 사람들은 ‘원래 늦는다’고 생각하고 여유부리다가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지난 회 연재에서 살펴봤던 인도네시아처럼 필리핀 사람들도 직접적인 거절이나 싫다는 표현을 잘하지 않는다. 이런 문화는 비즈니스에서도 나타난다. 비록 상담 시 긍정적인 말을 들었다 하더라도 성사가 안 되거나 심지어 연락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오랜 시간 연락이 되지 않을 경우 기다림에 지쳐서 독촉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오히려 ‘제대로 상황 판단을 못하고 귀찮게 한다’고 생각하고 이후의 비즈니스도 어렵게 하는 등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으니 조심할 일이다. 마지막으로 필리핀 비즈니스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화교계 기업 문화의 특징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이 회사들은 혈연관계 가족경영 체제로 이뤄진 곳이 많다. 가족을 가장 우선시 여기고 의지하기 때문에 ‘가문’에 대한 존중과 칭찬은 상대의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
박영실PSPA(박영실서비스파워아카데미) CEO [email protected]
필자는 연세대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를, 숙명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된 연구 분야는 고객서비스와 커뮤니케이션, 비즈니스 매너 등이다. 삼성에버랜드 경영지원실 서비스아카데미 과장, 호텔신라 서비스아카데미 과장 등으로 일했다. 현재 숙명여대 취업능력개발원 자문위원 및 멘토 교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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