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들어 각종 요직에 추천된 후보자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자리를 내려놓았다. 일부는 검증과정에서 문제가 되기도 하고, 일부는 자진해서 자리를 포기했다. 어떤 이유든 모두가 선망하는 정부 요직에 추천됐다가 그 자리에 오르지 못하게 된 것은 당사자들의 입장에는 인생에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특히 어쩔 수 없이 타의에 의해 낙마한 인사들의 충격은 다른 어떤 사람보다 컸을 것임에 분명하다.
인생을 살면서 때로는 마음을 비우고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내려놓아야 할 때도 있다. 특히 직접 오랫동안 키워온 조직의 대표직에서 물러나거나 큰 공을 세우고 그 공을 남에게 양보해야 할 때면 누구든 아쉽고 서운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공을 이루는 것도 어렵지만 그 공을 내려놓는 것이 더욱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도덕경(道德經)>의 많은 경구(警句)는 내려놓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내용이다. ‘내가 낳았어도 소유하려하지 마라(生而不有)!’ ‘공을 이뤘으면 그 공에 머물지 마라(功成弗居)!’ ‘성공했다면 몸은 물러나라(功遂身退)!’ ‘성공했다고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지 마라(功成不名)!’ ‘공이 이뤄지고 일이 완수됐다면 백성들이 스스로 했다고 생각하게 하라!(功成事遂, 百姓皆謂我自然)’ ‘내가 스스로 자랑하지 않으면 더 위대한 성공을 이루게 된다(不自伐有功)’. 이런 경구들의 한결같은 내용은 결국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내려놓음을 통해 성공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되고, 또 다른 위대함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잡고 있는 것을 내려놓으면 모든 것을 잃을 것 같지만 결국에는 더 큰 성공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임원 재계약 시즌이 되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자신이 배제되면 회사에 섭섭하고 서운한 감정이 먼저 드는 것을 보면 인간은 내려놓는 것보다 놓지 않는 것에 더 익숙해져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은 거사를 앞둔 윤봉길 의사에게 중국의 선시를 인용해 내려놓음의 결단에 대해 이야기했다. ‘득수반지미족기(得樹攀枝未足奇), 나뭇가지를 잡고 있는 것이 힘든 일이 아니다! 현애살수장부아(懸崖撒手丈夫兒), 벼랑 끝에서 잡은 손을 놓는 것이 진정 장부의 결단이다.’ 송(宋)나라 야보도천(冶父道川)선사의 게송(偈頌)이다. 벼랑 끝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것도 힘들지만 때로는 그 나뭇가지를 잡은 손을 놓는 것도 장부의 중요한 결단이라는 것이다. ‘현애살수(懸崖撒水)’, 벼랑(崖)에 매달려(懸) 잡고 있는 손(手)을 놓는다(撒)는 뜻이다. 천 길 낭떠러지에서 나뭇가지를 잡고 있는 손을 놓는 것을 상상해 보면 아찔하다. 손을 놓는 순간 그 결과는 너무나 분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바쳐 자식을 잘 키운 부모들이 내가 그토록 공들여 키운 자식이 섭섭하게 대할 때면 섭섭함을 넘어서 서러움이 북받칠 것이다. 내 젊음을 바쳐 근무한 회사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물러나는 입장에서 보면 아쉬움과 심난함이 클 것이다. 내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면 분노도 일고 가슴은 동요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집착하고 지키려고 하는 것을 내려놓는 순간 또 다른 자유와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는 현애살수(懸崖撒水)의 게송(偈頌)을 통해서 지금 내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고, 무엇을 놓지 못하고 있는지 돌이켜 봐야 한다. 내려놓음이 비록 힘든 결정이지만 그 결정의 뒤에는 무한한 자유와 행복이 있음을 천하에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행하는 사람은 참으로 드물도다!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 [email protected]
필자는 조부에게 한학을 배우고 성균관대에서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수학했다. 고전의 재해석을 통한 새로운 미래사회 가치를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지내고 현재 포스코 전략대학 석좌교수,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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