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이 날로 증폭되고 환경이 급변하는 요즘, 갑작스러운 위기나 돌발 상황이 닥쳤을 때 신속하고 기민하게 대응하는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21세기 초경쟁 환경에서 기업 생존을 위한 필수 요건으로 조직 민첩성(organizational agility)이 꼽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첩성과 연관지어 경영 의사결정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주제로 ‘순간적 판단(snap judgment)’이 있다. 말콤 글래드웰은 그의 저서 <블링크(2005)>에서 “첫 2초간의 판단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한마디로 순간적 판단의 위력을 설파했다. 찰나의 직관적 사고에 따른 신속한 판단이 오랜 시간 분석을 통해 내리는 신중한 결정만큼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게 그의 핵심 메시지다.
굳이 글래드웰의 통찰이 아니더라도, 과연 장시간의 분석이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정보는 넘쳐나고 있지만 과거의 경쟁 패러다임이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되는 시대에 아무리 장기간 분석을 한다 해도 미래 변화를 정확히 예측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직감에 의존하는 순간적 판단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된다.
하지만 순간적 판단이 모든 의사결정에 적용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2008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NSW) 대학 연구진은 NSW 대학생들에게 학교 근처 아파트 임대, 자동차 구입 문제 등에 대해 결정을 내려보게 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그 결과 심사숙고(conscious deliberation)해 내린 결론이 무의식적 사고(unconscious thought)를 통해 내린 결정보다 나을 수 있음을 실증적으로 밝혔다. 더욱이 무의식적 사고에 근거한 결정은 판단에 필요한 정보가 제시되는 순서에 따라 결정이 달라지는 ‘최근 효과(recency effect·가장 최근에 접한 정보를 더 중시)’ 등의 영향으로 최선의 선택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하는 경우도 있음을 보였다.
블링크나 NSW대학 연구진의 메시지가 시사하는 바는 전적으로 본능과 감에 의존하라는 것도, 매사 심사숙고하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신속한 결단과 신중한 결정은 동시에 양립해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새삼 확인시켜 준다고 볼 수 있다.
신속함은 초경쟁 환경의 핵심 역량인 민첩성의 주된 속성이지만 민첩성과 동일한 개념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순간적 판단은 의사결정의 핵심 영역이지만 전부가 아니다. 인간의 의사결정 체계는 본능적·경험적·무의식적으로 빠르게 반응하는 ‘직관적 사고(전문용어로는 system 1)’와 이성적·논리적·의식적으로 느리게 판단하는 ‘분석적 사고(system 2)’의 이중 체계(dual-system)로 이루어져 있다는 게 많은 결정이론가들의 정설이다. 따라서 균형 잡힌 의사결정을 내리려면 순간적 판단(system 1)과 신중한 판단(system 2)을 적시적소에 사용하는 분별력과 지혜가 필요하다.
특히 순간적 판단이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려면 판단에 필요한 경험과 전문성을 쌓아야 한다. 순간적 판단의 신봉자인 글래드웰이 그의 또 다른 저서 <아웃라이어(2008)>에서 “어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1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경험과 전문성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본능에만 의존하다가는 큰 화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 더욱이 사람들은 개인적 경험에 의거해 어림짐작으로 직감적 결정(heuristics)을 내릴 때 여러 심리적 편향에 빠지기 쉽다.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끊임없이 전문성을 쌓으며, 우리의 판단을 지배하는 보편적 편향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해 나갈 때 동물적 본능이 예리한 통찰로 이어질 수 있다.
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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