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저축은행이 영업정지 하루 전에 VIP 고객과 임직원 친인척의 예금을 대량 인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금융 역사에 영원한 치욕으로 남을 것이다. 신뢰를 가장 중시하는 금융회사의 파렴치하고 이기적인 행동은 그 동안 정부가 추진해 온 공정사회의 틀을 깨는 것이며, 서민들의 가슴 속에 깊은 상처를 남길 것이다.
<논어(論語)>는 국가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족식(足食)’ ‘족병(足兵)’ ‘민신(民信)’을 들고 있다. ‘족식(足食)’은 경제력이고, ‘족병(足兵)’은 국방력이고, ‘민신(民信)’은 사회적 신뢰다. 공자는 가장 마지막까지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을 ‘민신(民信)’이라고 강조했다. 사회적 신뢰가 무너지면 조직의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의 화두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2010년 2월15일자 DBR 51호 참조)
신뢰는 자신에게 얼마나 정직한가에서 시작된다.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속이지 않는 것이 신뢰의 시작이다. 우리가 은행을 믿는 것은 은행원들이 남이 보지 않아도 스스로를 속이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은행 직원이 자신을 속이고, 나아가 고객을 속인다면 고객들의 신뢰는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자금이 모자라고 조직이 부실해진 은행은 다시 자금을 충전하고 조직을 새롭게 개선하면 일어설 수 있지만 고객들의 신뢰를 잃으면 영영 회생이 불가능하다.
‘홀로 있을 때라도 나를 속이지 마라!’
조선의 선비들이 그토록 중요시 여겼던 ‘독처무자기(獨處無自欺)’의 철학이다. 조선 중종 때 문신이었던 정곡(靜谷) 임권(任權) 선생은 홀로 있을 때 자신을 속이지 않는 독처무자기의 철학을 평생의 화두로 삼았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다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은 속일 수 없기에 나에게 정직한 게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 것이다.
<대학(大學)>과 <중용(中庸)>도 ‘나를 속이지 않는 철학’을 신독(愼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홀로(獨) 있을 때를 삼가야(愼) 한다’는 의미다. 조선의 선비들이 어느 산 속 깊은 곳, 아무도 없는 곳에 홀로 거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단단히 지키며 정직하고 당당하게 인생을 살아갔던 것은 바로 신독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도 유배생활이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이 무자기와 신독의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군자는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유지할 수 있다. 반면 소인들은 남들이 안 보는 곳에서 온갖 불법을 저지른다. 남이 보고 감시하면 자신의 불법을 감추려고 애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 진실은 속일 수 없다. 평소에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는 저절로 드러나게 돼 있다. 내 마음 속이 진실 되면(誠於中) 밖으로 드러난다(形於外). 그래서 군자의 삶은 남이 안 보는 곳에서 더 엄밀하고 삼간다(君子必愼其獨也).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을 속이지 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너를 보고 있다. 열 사람의 눈이 너를 지켜보고, 열 사람의 손이 너를 가리키고 있다. 이 얼마나 무서운 현실이냐!”
눈을 가리고 자신의 불선함을 숨기더라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보고 있다. 오로지 자신만 모를 뿐이다. 남이 안 보는 가운데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는 소인(小人)들이 가득한 조직은 자금이 넘쳐나고 구조가 잘 짜여 있어도 지속가능한 생존을 얻을 수 없다. ‘나 자신을 속이지 마라(無自欺). 홀로 있을 때 더욱 삼가야 한다(愼獨). 신뢰가 없으면 존립이 불가능하다(無信不立)!’ 신뢰가 땅에 떨어진 어느 은행의 모습을 보면서 몇 번이고 다짐해야 할 도덕적 화두다.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