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햇살이 쏟아지는 아침. 회사에 출근한 유부단 대리는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일만해 주임뿐 아니라 조아라 사원도 출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아라의 책상 위에는 ‘출장 중’이라고 쓴 A4용지가 붙어 있었다.
“저어기, 부장님. 조아라 씨는….”
“조아라? 일 주임이랑 같이 프랑스 출장 갔잖아. 아, 내가 말 안 했던가?”
“!”
“생각해보니 조아라가 영어도 잘하고 사근사근하잖아. 아무래도 그런 사람이 가는 게 낫지 않겠나 싶더라고.”
“저도 영어는 바이어 상대할 정도는 되는데….”
“조아라는 프랑스 한 번 가보는 게 소원이랬잖아. 유 대리 자네는 지난번에 방글라데시도 갔다 왔고. 한 번쯤은 양보해도 되는 거 아냐?”
“!!!!”
2주일 전, 유 대리와 일 주임은 부서 회의에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2009 국제 생활용품 박람회’ 파견 직원으로 선정됐다. 회사에서는 이번 박람회를 유럽 지역 진출을 위한 중요한 기회로 판단했다. 따라서 전사적 대응을 위해 해외뿐 아니라 국내 영업부 직원들도 출장 명단에 넣기로 했다.
김기본 차장은 직접 현장에서 뛰고 있는 유 대리와 일 주임을 추천했다. 이후 출장 계획과 준비는 무리 없이 진행되는 것 같았다.
물론 박람회 현장에서 바이어들을 만나 협상하고 물품 수주를 받는 일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유 대리와 일 주임은 박람회 참여가 흔치 않은 경험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컸다. 게다가 일정 중 하루 정도는 여유가 있어 시내 관광도 할 수 있다고 하니 그 어느 때보다 신이 났다.
파리 박람회는 회사에서 사활을 걸고 있는 사안이라 미리 준비할 것도 많았다. 유 대리와 일 주임은 우선 각 나라별 라이프스타일과 인구 통계 자료를 분석하고, 그 결과에 따라 국가별로 품목 조견표를 만들어야 했다. 동시에 3박 4일의 박람회 기간 동안 만나야 할 바이어 미팅 스케줄과 파견 인원들의 업무도 세부적으로 조정했다. 이런 준비에만 꼬박 1주일이 걸렸지만, 두 사람은 출장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모처럼 스트레스 없는 야근을 즐겼다.
출장 준비를 거의 마무리할 즈음, 강 부장이 두 사람을 저녁 식사 자리에 불렀다. 식당에는 조아라도 강 부장과 함께 나와 있었다.
“출장 준비는 잘되고 있나? 설명 좀 해보게.”
“네, 일정 컨펌은 모두 마쳤구요. 부스 준비는 물류팀 박 대리가 이틀 먼저 출국해 마무리 짓기로 했습니다. 현지 도우미 채용은….”
“어때, 조아라 씨? 이해가 되나? 궁금한 것이 있으면 유 대리한테 다 물어보라고. 서류도 꼼꼼히 챙겨 받고.”
“이번 출장 건에 대해 조아라 씨가 왜 궁금해 하죠?”
“조아라 씨가 원래 해외 영업에 관심이 많았다잖아. 어허! 후배가 하나라도 더 알려고 하는 걸 칭찬해주지는 못하고!”
조아라는 강 부장의 위세를 등에 업고 이것저것 꼬치꼬치 물어봤다. 심지어 숙소 위치와 박람회장까지 가는 교통편도 질문했다. 순진한 유 대리는 별다른 의구심 없이 모든 질문에 정성껏 답해줬다.
하지만 출국 날짜가 며칠 앞까지 다가왔는데도 총무과에서 여권을 달라는 요청이 없었다. 직접 총무과로 찾아간 유 대리는 깜짝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럴 수가! 비행기 티켓은 이미 발권이 끝났지만, 자신은 출장 명단에 없는 게 아닌가!
김 차장에게 물어보니 본인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의아해 했다. 옆에서 자초지종을 들은 강 부장이 다가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아, 내가 말 안 했던가? 자네가 남아서 처리해야 할 일이 좀 있어서 말이야. 1분기 직영점 매출 분석을 다음 주까지 끝내주게.”
“부장님, 그건 조아라 씨 업무 아닌가요? 그냥 취합만 하면 되는, 어렵지도 않은 일을 굳이 출장까지 취소시켜가면서….”
“조아라가 뭘 알아서 혼자 하겠나. 자네가 해야지. (버럭) 왜! 하기 싫다는 거야? 엉?”
결국 유 대리는 출장 당일이 되어서야 프랑스에 가는 게 소원이라는 조아라에게 자신이 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