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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고궁(君子固窮), 어려울수록 단단해진다

박재희 | 71호 (2010년 12월 Issue 2)
 
연평도 사태로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감이 더욱 높아지고 있고, 국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깊어가고 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 어디까지 갈지 지금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아이들은 전쟁에 대한 공포심에 빠져있고, 어른들 역시 그 불안과 위기 앞에 초연하기 쉽지 않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불안과 초조감이 아니라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빛나는 강한 정신력이다. 평소에는 잘 구별할 수 없는 인간의 정신적 역경지수는 위기가 다가와야 명확히 드러난다. 추운 겨울이 와서 세상이 모두 눈 속에 덮여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푸르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조선시대의 서화가이자 실학자였던 추사 김정희(金正喜) 선생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예술가이자 문학가였다. 특히 서화에 능했던 김정희 선생은 추사체라는 독특한 서체를 대성시켰으며 예서 행서의 새로운 전형을 남긴 분으로도 유명하다. 제주도 유배를 포함해 다양한 인생 역정을 겪었던 그가 1844년 제주도 유배 시절, 제자 이상적에게 준 그림 ‘세한도(歲寒圖)’는 국보 180호로 지정돼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엄동설한에도 시들지 않고 서있는 소나무()와 잣나무() 그림은 우리에게 어려운 시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세한도 왼쪽에는 추사가 직접 쓴 글이 있다. 바로 논어의 한 구절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가 들어있는 글이다, 뜻은 다음과 같다. ‘세월이 추워진 연후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 세상이 추워지고 온통 눈으로 뒤덮여 추위와 바람만이 가득할 때 푸름을 잊지 않고 서 있는 소나무의 기상을 그린 세한도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글이다.
 
위기가 닥쳐봐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평소에 그렇게 자신만만하고 정감 많은 사람이 위기가 닥치면 전전긍긍하며 어찌할 줄 모르고, 의리와 신념을 쉽게 포기할 때도 많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에 어떤 나무가 정말 강한 나무인지 알듯이 어렵고 힘든 위기 상황은 그 사람의 정신력과 위기 대응 지수를 알게 해 주는 좋은 기회다.
 
<논어(論語)>는 군자(君子)를 ‘어려울수록 더욱 단단해지고 강해지는 사람(君子固窮)’, 소인(小人)을 ‘어려움이 닥치면 쉽게 포기하고 넘쳐버리는 사람(小人窮濫)’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와 세상을 주유(周遊)할 때의 일이다. 그들은 진()나라에서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해 많은 제자들이 병들고 몸을 일으킬 힘조차 없을 때였다. 다혈질로 유명한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따졌다. “선생님! 군자가 이렇게 궁한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까?” 공자를 믿고 따르는 아무 죄 없는 제자들이 왜 이런 힘든 상황에 처해야 하는지를 따지고 든 셈이다.
 
공자의 답은 아주 간단했다. “군자는 어려울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사람이다(君子固窮). 그러나 소인은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곧 원칙을 버리고 넘치고 만다(小人窮斯濫).” 이 말은 어려움에 대처하는 인간의 두 가지 형태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있다. 즉 어려움() 그 자체보다 그 상황에 대처하는 인간의 정신이 더욱 중요하다. 궁()한 상황에서 더욱 단단해()질 것인가? 아니면 넘쳐() 흘러 이성을 잃고 우왕좌왕 할 것인가?
 
성공한 사람들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버텨낸 고궁(固窮)의 정신이 있었기에 그들은 성공할 수 있었다. 국민도 마찬가지다. 위기 때 애국심을 발휘해 자신의 조국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는 영원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반면 평소에 조국의 혜택만 받고 조국의 위기 앞에서는 의무를 저버리는 사람에게는 고국(故國)이 더 이상 그들의 나라가 될 수 없다. 어려운 상황에 더욱 강해지는 군자(君子)들이 많은 나라를 꿈꿔본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email protected]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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