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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하는 자가 결국 이긴다

박재희 | 54호 (2010년 4월 Issue 1)
국가 간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기업들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는 도를 넘어 그 끝을 알 수 없다. ‘전쟁은 확대된 양자 결투’라는 전쟁 철학자 클라우제비츠의 정의만 놓고 보면 어느 편에 서 있건, 살기 위하여 상대방을 쓰러트릴 수밖에 없는 것이 결국 전쟁의 가혹한 현실이다.
 
그래서인가.. ‘상대방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말이 상식이 되어버린 사회다. 혹독한 사회적 환경에 암초를 만나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기업이 있으면, 한편에서는 뒷짐을 지고 상대방이 침몰하는 상황을 즐기는 기업도 있기 마련이다. 승리는 한쪽에는 기쁜 일이지만, 다른 한쪽에는 슬픈 일이다. 그래서 동양의 모든 병법서는 이구동성으로 ‘상처 없이 이기는 싸움이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승리’라고 정의하고 있다.
 
<손자병법>은 ‘싸우지 않고 다치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승리’라고 정의한다. “백전백승(百戰百勝), 비선지선자야(非善之善者也). 백 번 싸워 백 번 이긴다 한들 진정 최고의 승리라고 할 수 없다. 부전이굴인지병(不戰而屈人之兵), 선지선자야(善之善者也). 싸우지 않고, 다치지 않고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 가장 아름다운 승리다!”상대방과 내가 상처가 나고 찢겨져 있는 승리라면 승리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손자병법>에서는 승리의 네 가지 유형을 정의하면서 가장 위대한 승리를 ‘벌모(伐謀)’라고 했다. 상대방의 싸우려는 의도를 애초부터 꺾어놓아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뜻이다. 그보다 하책이 ‘벌교(伐交)’다. 주변의 외교 관계를 끊어놓아 싸우려는 의지를 꺾는 것이다. 다음 하책이 ‘벌병(伐兵)’이다. 적의 병력과 직접적인 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마지막 하책이 ‘공성(攻城)’이다. 적의 성을 직접 공격하여 대규모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벌병과 공성은 싸워 이겨도 상처가 너무 많이 남고, 그 승리 또한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손자의 경고다.
 
전쟁과 싸움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마지막 선택이어야 한다.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상대방의 싸움에 응해야지 먼저 공격하거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전쟁을 벌여서는 안 된다. 동양에서 이런 사상을 신중할 신(愼), 싸울 전(戰)을 모아 신전(愼戰) 사상이라고 한다. 신전은 전쟁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전쟁 그 자체의 비극성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나온 사상이다. 노자는 신전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가 살던 춘추전국 시대는 전쟁과 경쟁이 치열해 사람 목숨이 너무나 가볍게 여겨졌다. 전쟁은 하루아침에 일 년간 고생해서 지어놓은 농토를 황폐화시켰으며, 가족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생사를 모르는 상황이 됐다. 이런 난세에 노자는 전쟁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며,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오로지 방어만을 위해서 수행돼야 한다고 보았다. 노자의 신전 사상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싸움을 먼저 걸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절대로 전쟁의 주체가 돼서는 안 된다. 오로지 객체가 돼야 한다(吾不敢爲主而爲客). 한 치 앞으로 나서기보다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라(不敢進寸而退尺).” 둘째는 상대방을 가볍게 보지 말라는 것이다. “상대방을 가볍게 보고 싸우려고 달려드는 것보다 더 큰 실수는 없다(莫大於輕敵). 상대방을 가볍게 보고 싸우려고 한다면 나의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輕敵幾喪吾寶).”
 
노자의 이 철학은 공격보다는 방어를 해야 하며, 상대방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감정을 신중하게 다스리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 싸움에 대한 노자의 결론은 간단하다. “싸움은 슬퍼하는 자가 이길 것이다(哀者勝矣)!”
 
이 구절이야말로 노자 신전(愼戰) 사상의 백미다. 부모와 자식이 싸우다 부모가 지는 이유는 슬프기 때문이다. 자식과 갈등의 결과가 너무 슬프기 때문에 자식에게 져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부모의 슬픔이 마지막에는 자식의 머리를 숙이게 만든다. 싸움은 눈앞의 잠깐의 승리로 끝나지 않는다. 끝까지 가봐야 그 승부를 알 수 있다. 영웅은 승리를 슬퍼하는 사람이지, 승리에 도취돼 교만한 사람이 아니다. 슬픔을 갖고 싸움에 임하는 자가 결국 이긴다(哀者勝)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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