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즉통(窮則通), 궁하면 통하리라.’ 요즘처럼 힘들고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메시지로 쓰이는 구절 가운데 하나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사용하고 있지만 대체로 2가지로 해석된다.
첫 번째는 ‘세상은 힘들고 어려울수록 결국 통하게 돼 있다. 기다려라.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로 해석된다. 두 번째는 ‘어려울 때일수록 끝까지 파고들어 답을 찾자. 그러면 반드시 통하리라’는 뜻으로 쓰인다. 두 번째의 궁(窮)은 ‘끝까지 궁구(窮究)해 답을 찾는다’는 뜻이다. 조금 자의적인 해석이 가미되긴 했지만, 부지런히 노력하면 반드시 답을 찾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원문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 궁하면(窮) 변하고(變), 변하면 통하고(通), 통하면 오래간다(久)는 뜻이다. ‘주역’은 변화에 대한 철학적 사유다. 세상은 변한다. 자연은 음양이 교차하고 춘하추동이 순환한다. 인간 세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변화에는 어떤 원리가 있다.
‘변화의 원리를 찾아내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하자’는 생각을 64괘(卦)와 384효(爻)의 범주를 통해 증명하려고 노력한 고대인들의 결과물이 바로 ‘주역’이다. 그래서 ‘주역’은 미래 변화 예측이라는 측면에서 점서(占書)로도 해석되고, 변화에 대비하는 인간의 절제와 겸양 및 수양에 대한 이론서로도 활용된다. 공자는 ‘주역’에 너무나 몰두한 나머지 위편삼절(韋編三絶), 즉 3번이나 책을 묶은 끈이 끊어질 정도로 읽었다고 한다.
‘주역’의 변화 철학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궁즉통’의 논리는 기본적으로 4단계로 이뤄져 있다. 핵심은 궁(窮), 변(變), 통(通), 구(久)다.
첫째, ‘궁’은 양적 변화가 극에 달한 상태다. 경제가 심각한 상황으로 갈 때까지 갔다든지, 부부간 갈등이 더 이상 해결할 수 없는 극한 상황이라든지, 노사 간의 갈등이 극에 다다랐다면 궁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변화는 이런 극도의 상황을 기반으로 일어난다. 궁하지 않으면 변화에 대한 생각도 없다.
둘째, ‘변화’가 일어나 답을 찾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오는 것처럼 부부간의 화해나 노사 간의 화합과 같은 변화가 일어나 문제를 푸는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 ‘주역’은 여기서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존재한다고 했다.
셋째는 ‘통’의 단계로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는 안정의 단계, 어떤 방식으로든 상처가 아물고 상호간의 화해가 무르익는 단계다. 추웠던 겨울은 어느새 가고 따뜻한 봄날이 계속되듯 경제는 안정기에 접어들고, 문제가 해결돼 만사형통하게 된다.
넷째는 ‘구’의 단계로 평화가 지속되는 단계다. 사람들은 이 단계에서 지나간 변화와 극한 상황을 모두 잊어버리고 나태와 안락에 빠지기 쉽다. 언제 경제 위기가 왔냐며 과거를 잊어버리고, 지금의 호황이 계속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이것이 거듭되다 보면 결국 다시 궁한 상태로 빠져들고 만다.
‘주역’에 따르면 세상에는 영원한 평화도, 영원한 불안도 없다. 변화는 늘 존재하고, 인간은 그 변화 속에서 지나간 과거를 거울삼아 현명한 대안을 찾는 노력을 하고 있을 뿐이다. 무왕불복(無往不復)이라! 세상은 가서 돌아오지 않음이 없나니! 한 번은 닫혔다가 한 번은 열리는 것을 ‘변’이라 하고(一闔一闢 謂之變), 가고 오는 게 끝이 없는 것을 ‘통’이라 한다(往來不窮 謂之通). 이것이 ‘주역’이 바라보는 세계관이자 역사관이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다. 궁하면 반드시 통한다는 희망의 철학이 더욱 필요한 시기다. 바닥을 느끼고 처절하게 고민할 때 변화와 변통(變通)이 가능하다. 아픈 만큼 성숙한 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궁(窮)하면 반드시 통(通)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