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환경이 완전히 바뀌는 격변기에는 대전환이 필요하다. 단순한 방법의 변화가 아니라 새로운 생존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방법과 방식은 비슷한 듯하지만 다르다. 어떤 문제에 대한 일시적이고 개별적인 해법이 방법이라면 방식은 이런 방법들을 일련의 순서로 정렬하거나 배치해 무언가를 이루는 과정이다. 방식 전환이 좀 더 전면적인 혁신인 셈이다. 자연사의 변곡점에서 새 시대의 지배자로 거듭난 주인공들도 모두 새로운 방식을 찾아낸 이들이다. 5억4000만 년 전 등장한 ‘눈(eye)’. 3억6000만~3억7000만 년 전 등장한 ‘다리’처럼 말이다. 대전환의 시대에는 지금까지 해오던 걸 열심히 하는 정도로는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근본적인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페이팔과 테슬라로 결제 시스템과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은 일론 머스크처럼 말이다.
감옥이란 곳은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 작은 세상이지만 여느 곳과는 사뭇 다른 속성을 갖고 있다. 죄와 벌이 강하고 거칠게 직접 부딪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서 20년을 살면 어떻게 될까? 평범한 수감자들이라면 죄를 더하거나 더는 것에 그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자신을 완전히 다르게 변화시킨 사람도 있다. 고립을 이용해 자기만의 경지를 이루는 것이다. 오랜 수감 생활 동안 공부에 매진해 순도 높은 세상의 이치를 터득했던 고(故) 신영복 선생이 좋은 예다.
물론 과정이 순조로운 건 아니었다. 그는 사실 수감 초기 왕따 신세였다고 스스로 털어놓은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해서다. 나중에야 원인을 알았는데 자신도 모르게 사람을 분석하는 습관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자신을 업신여기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11신영복, 담론, 돌베개,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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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그는 바깥세상과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걸 빨리 깨우친 덕분에 ‘자기 개조’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들을 분석하는 대신 인정하고 존중하자 새로운 인식을 얻을 수 있었다. 어떠한 죄를 짓고 감옥으로 들어온 사람을 보면 그가 처했던 똑같은 상황에 자신이 놓아봤다. 나라면 과연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까? 그럴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사고의 중심을 바꿨고 나아가 가슴에서 발에 이르는 사고의 확장을 시도했다. ‘가슴’이 인정과 공감이라면 ‘발’은 실행을 의미한다. 신영복 선생은 몸을 쓰면서 기술을 배우는 ‘건강한 노동’으로 옷과 구두를 만들었다. 그 덕분에 왕따를 벗어난 것은 물론 양화공 반장을 3년 넘게 할 수 있었고, 감옥에서의 20년이라는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이뿐인가? 세상의 이치 또한 터득할 수 있었다.
날씨가 아니라 기후가 바뀌면 변신이 필요하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고, 사막에 가면 사막에 맞는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느리게 흐르는 강에서는 여유롭게 노를 저어도 되지만 급류에서는 달라야 하듯 주어진 환경에 맞는 적응력을 길러야 한다. 살아가는 환경이 완전히 바뀌는 격변기에서도 마찬가지다. 날씨가 아니라 기후가 바뀐다면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단순한 변화를 넘어 변신을 해야 한다.
우리는 생존이 흔하고 멸종이 드물다고 생각하지만 생명의 역사를 보면 반대다. 멸종이 흔하고 생존이 드물다. 아니, 사실 생존은 예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죽는 건 쉽지만 사는 게 어렵고, 잘 살아가는 건 더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학자들은 지금까지 지구에 출현한 생명체 중 99.9%가 멸종한 것으로 추산한다. 이 수치는 개체 수가 아니라 종(種)이다. 하나의 종은 대체로 넓은 지역에서 수많은 개체로 살아가는데 이런 종 전체가 사라지는 일이 흔하다는 건 멸종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 있다는 뜻이다. 종이 멸종하면 그 유전자는 완전히 사라진다.
이런 멸종은 특히 격변기에 두드러지는데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만큼 생존력을 변화시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격변이란 생존의 규칙이 빠르게, ‘완전히’라고 할 정도로 바뀐다는 것이다. 이러면 그때까지 유리했던 장점일수록 더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에는 두꺼운 털옷을 많이 껴입을수록 좋지만 여름 날씨가 되면 지옥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옷이야 벗고 입을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다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