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부호를 꿈꿨던 제논은 사업에 실패하고 소크라테스 사상에서 깨달음을 얻으면서 스토아학파를 이끄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그가 98세까지 장수한 비결은 불행이나 격정에 흔들리지 않는 태도인 ‘아파데이아(apatheia)’의 실천과 정제된 말을 신중하게 하는 ‘로고스’의 존중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제논은 ‘행복은 욕망 분의 성취’라는 공식에서 분모인 욕망을 줄이는 길, 즉 금욕과 절제로써 행복에 이르고자 했다. 아테네의 청년들은 그의 가르침을 존경하면서 최선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왕조차 부러워한 철학자 제논
마케도니아의 왕 안티고노스 2세(기원전 320~239)는 마음이 헛헛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후계자로서 막강한 위세를 떨쳤던 할아버지 안티고노스 1세가 세운 왕국을 물려받았고, 정치적 혼란과 외세의 침략을 막아내며 권력과 명예로는 최정상의 자리에 있었음에도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이 허전함은 왜일까? 행복하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것이 뭘까?’ 물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는 한 사람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행운과 명성에서는 당신보다는 훨씬 앞서지만 이성과 교양뿐만 아니라 당신이 누리는 궁극의 행복에서는 한참 뒤진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나는 당신을 초청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부디 나와 모든 마케도니아의 사람들의 스승이 돼 주십시오.” 왕은 자신이 누리는 권세와 부귀영화보다도 그 사람이 누리는 행복과 그를 행복하게 만든 고귀한 사상을 부러워했다.
이 편지의 수신인은 헬레니즘 시대 스토아철학을 창시한 제논이었다. 그는 어떻게 왕조차 부러워할 행복을 누리는 철학자가 됐을까?
필자는 서울대 불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 및 서양고전학 석사, 서양고전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에서 서양고전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신화와 축제의 땅 그리스 문명 기행』 『천년의 수업』이 있으며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 교수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