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경 한신대 교수가 ‘알아 두면 쓸모 있는 돈의 사회학’ 연재를 시작합니다. 비즈니스와 돈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레트로, 페미니즘, 채식주의 등 요즘 사람들이 주목하는 사회적 현상은 어떤 맥락에서 탄생했을까요. 비즈니스 리더에게 필요한 사회학적 지식을 전합니다. 당연시 여겼던 우리의 일상을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Article at a Glance
산업혁명 이후 일터와 가정이 분리됐고, 여가 또한 노동으로부터 분리됐다. 임금 수준이 오르고 노동시간이 줄어들자 사람들은 여가와 소비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했다. 특히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상위 계급은 과시적 소비를 통해 자신의 지위를 드러낸다. 소셜미디어에도 ‘험블브래그(humblebrag)’, 즉 ‘겸손한 척하지만 자랑하는’ 게시물이 넘쳐난다. 그러나 남들에게 보이는 이상적 자아와 실제 자아의 격차가 클수록 생활 만족도는 줄어든다. 최근에는 1인 가구가 증가하며 사람들이 여가 시간의 ‘소확행’을 통해 자신의 취향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욜로’에서 ‘갓생’으로 여가의 트렌드가 변한 현상 역시 사소한 실천으로 자기 삶에 통제권을 갖겠다는 선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얼마 전 가족과 휴가를 다녀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3년간 억눌러온 여행의 충동을 더는 이기지 못해 해외로 떠났다. 10대인 딸은 현관을 나서면서부터 모든 일정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도시 풍경은 물론 이동하는 차 안에서, 슈퍼마켓에서, 식당에서, 기차에서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영상에 담으려고 애썼다. 숙소에서는 밤마다 영상을 편집해 소셜미디어에 올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 손에 늘 휴대전화를 들고 있으니 다른 물건들을 잘 흘리기도 했다. 잔소리가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지만 모처럼의 가족여행을 망치기 싫어 꿀꺽 집어삼켰다.
그러다 문득 깨달음이 왔다. 10대의 딸과 40대의 나에게 여행이 갖는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소셜미디어가 모든 것을 증명하는 10대들에게 여행은 자신의 정체성을 전시하고 증명하는 중요한 소재이다.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 즉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것’이 아니라면 여행은 아무 의미가 없다. 40대인 내게 여행은 사회적 자아를 잠시 내려 두고 본래의 자아로 돌아가는 시간이라면 10대인 딸에게 여행은 성적이 증명하지 못하는 또 다른 사회적 자아를 증명하는 수단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