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와 마늘, 커피, 은행나무와 같은 수많은 식물은 자신만의 생존 무기로 ‘독’을 갖고 있다. 식물만이 아니라 작지만 오래 살아 온 꿀벌이나 개미와 같은 곤충들도 효과가 강력한 독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크기가 작아도 확실한 자기만의 무기가 있다면 장수할 수 있다.
“아니, 왜 못 먹어?”
“진짜 못 먹는 거야?”
자장면을 먹을 때면 이런 말을 듣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생선 뼈 발라내듯 고명인 오이를 샅샅이 발라내기 때문이다. 대체로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의 표정엔 미처 다 하지 못한 말들이 남아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거 참 유난하네. 몇 조각 되지도 않은 걸. 그냥 먹어도 될 텐데, 굳이 그렇게까지….’ 시원하고 맛도 좋은데 말이다. 하지만 이건 오이를 골라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우리는 미각 수용체를 통해 맛을 인지하는데 기본적으로 쓴맛에 민감하다. 단맛과 감칠맛을 감지하는 미각 수용체는 한두 종류인 데 반해 쓴맛을 느끼는 수용체는 수십 가지나 되기 때문이다. 오이를 싫어하는 이들은 이에 좀 더 예민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데, 특히 오이에 들어 있는 쿠쿠비타신(cucurbitacin)이라는 박과 식물 특유의 쓴맛 나는 성분에 유난히 민감하다. 입맛이 까다롭거나 편식을 하는 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비린내를 맡으면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2016년 미국 유타대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의 7번 염색체에 있는 특정 유전자(TAS2R38)는 쓴맛에 민감한 유형(PAV형: 프롤린-알라닌-발린)이 있고 둔감한 유형(AVI형: 알라닌-발린-이소류신)이 있는데 민감형은 둔감형에 비해 쓴맛을 100∼1000배 정도 더 잘 느낀다. 몇십 배도 아니고 수백 배 정도인 셈이니 아무리 맛있는 자장면도 오이를 샅샅이 발라내지 않고는 먹기 힘들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