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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트렌드

창업의 첫 단계는 ‘공동 창업자 찾기’

이기대 | 255호 (2018년 8월 Issue 2)
편집자주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가 그동안의 경험과 노하우를 토대로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주목할 만한 흐름과 변화, 그 주역들을 소개한 ‘스타트업 트렌드’는 이번 회를 끝으로 마칩니다.

“어떤 사람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선택지가 재앙이라면 변화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모터스 최고경영자(CEO)의 말이다. 직장인의 평균 체감 정년이 40대 후반인 한국에서 홀로서기를 미리 준비하는 것은 합리적 행동이다. 그러나 막상 언제, 어떤 아이템으로, 어떻게 시작할지 가르쳐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우선 나이부터가 걸린다. 창업은 언제 하면 좋은가? 가장 흔한 답은 ‘딸린 식구 없을 때’이다. 한 살이라도 젊을수록 좋다는 믿음의 뿌리는 실리콘밸리다. 저명한 벤처투자가인 폴 그레이엄은 2013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투자자 머릿속에서 (창업자는) 32세가 끝이다. 더 나이가 많다고 하면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고 했다. 팔란티어사의 CEO 피터 틸은 더 심하다. 22세 이하인 대학 중퇴생만 지원 가능한 ‘틸 펠로우십’을 운영한다. 2011년부터 매년 20∼30명씩 선발해 지분 달라는 소리도 하지 않고 1인당 10만 달러를 창업 자금으로 준다. 미국의 IT 스타트업은 임직원마저 젊다. 기업 가치 상위 다섯 개 IT 회사의 임직원 중간 연령은 불과 30.6세다. 페이스북이 28세로 가장 낮고 마이크로소프트가 33세로 가장 높다. 구글, 애플, 아마존 모두 30세 언저리다.

이 ‘젊은이 선호 사상’에 반격을 가한 것은 올 초의 일이다. 지난 3월, 전미경제연구소(NBER)와 MIT의 경영대학 교수들이 미국 인구조사국의 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논문이 기존의 통념을 깨뜨렸다. 미국 정부의 세금 보고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07년부터 2014년 사이에 직원 1명 이상을 고용한 270만 개 기업 창업자의 평균 나이는 41.9세였으며 우리가 흔히 스타트업으로 분류하는 성장률 상위 1000곳의 창업자 평균 나이는 45세나 됐다.

창업자의 생체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젊은 창업자는 지혜와 인맥을 지닌 선배들을 영입하고, 나이 든 창업자는 기술 쪽을 일임할 인재를 영입해서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젊은 창업자들은 장시간 집중적으로 일할 수 있고, 고정관념에 젖지 않은 신선한 아이디어가 있으며, 과학기술 분야의 최신 지식을 갖췄다. 반면 나이 든 창업자들은 동원 가능한 인적 자원, 사회적 자원이 더 다양하고 풍부하며 자금도 여유롭다. 또한 자기 분야의 시장 상황이라든가, 기업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나 경험, 인간에 대한 이해도 면에서 젊은 창업자보다 우위에 선다.

그렇다면 좋은 창업 아이디어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결론을 미리 말하면, 나이가 좀 있는 경력직은 자기가 잘 아는 영역에서 개선책을 찾는 것에서 시작한다. 본인이 근무했거나 거래 관계에 있던 업종이다. 사회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들은 다른 나라의 성공 모델을 베끼거나 기존 시장을 분석하며 틈새를 찾는다. 또 나이와 무관하게 무언가의 ‘진지한 사용자(heavy user)’로 살아본 경험도 창업 아이디어에 도움이 된다. 창업에 있어서 공급자의 마인드냐, 사용자의 마인드냐에 따라 접근방법이 다르다. 공급자는 서비스의 흐름을 개선하고, 사용자는 아쉬웠던 기능을 추가한다. 미국에서는 사용자 출신 창업자의 성공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한다. 사업의 본질이 고객이 지갑을 열도록 만드는 것이기에 ‘고객 출신’ 창업자가 무엇이 필요한지 더 잘 안다.

공급자로서 서비스의 흐름을 개선한 사례는 무엇이 있을까? 대기업에서 20년간 축산물 MD를 했다면 국내 육류 유통구조의 문제점에 대해 모를 수가 없다. 육가공 제품 온라인 플랫폼인 ‘미트박스’를 창업한 김기봉 대표가 그런 예다. 미트박스와 달리 B2C 영역에 집중하는 ‘고깃간’은 권현주 대표의 외가가 수도권 최대 규모의 축산기업이었다. 공급자만이 접근 가능한 정보와 제품 우위를 가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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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가 불편함을 사업으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사례는 세계적인 스타트업인 우버, 에어비앤비가 있다. 국내 사례로는 간호사들의 ‘최애’ 앱인 ‘마이듀티’가 있다. 간호사를 위한 교대근무 캘린더 관리 앱이다. 이 회사 정석모 대표의 어머니가 간호사였기에 교대근무 일정에 특화된 서비스가 탄생했다. 또 바지를 벗기지 않고도 교환이 가능한 기저귀 ‘대디포베베’는 전영석 대표의 육아 경험에서 나왔다. 전세 버스를 빌려 삼척으로 서핑을 하러 가던 임수열 대표의 열정이 없었다면 야외활동 전문 플랫폼인 ‘프립’은 생기지 못했다. 이렇듯 자기 주변의 불편함에 적응하는 대신 대안을 찾아보고 그 대안을 사업화하겠다고 나섰을 때 창업이 시작된다.

작은 성공이 소소한 주변 관찰에서 시작한다면 위대한 성공은 시대의 흐름을 읽는 데서 출발한다. 스티브 잡스는 “고객은 만들어서 보여줄 때까지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말로만 한 게 아니라 컴퓨터를 욱여넣은 스마트폰을 만든 뒤 그 위에서 구동하는 앱 생태계를 구축했다. 애플이 만든 장터에 누구나 들어와 앱을 팔 수 있게 해줘 2017년에만 12조 원의 수수료를 챙겼다. 스티브 잡스가 보여주기 전에는 그렇게 돈을 벌 수도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이렇게 시장을 예측하고 기술의 흐름을 분석해가며 하는 창업은 개인이 하기 어렵다. 기업이라면 가능하다. 국내에서는 컴퍼니빌더인 패스트트랙아시아가 그 길을 가고 있다.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할 때, 대상 산업을 의식주·교육·건강으로 국한하고 오프라인 시장 크기가 최소 10조 원 이상인 곳을 공략한다. 기존 오프라인 서비스보다 편의성 우위에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 그 부가가치로 고객의 지갑을 연다.

패스트트랙아시아나 애플 수준의 시장 분석 능력과 기획력이 없는 개인이 자기가 잘 모르는 영역에 도전해 창업을 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그들은 주로 외국, 특히 미국의 성공 모델을 베낀다. 2010년, 우리나라에 제2의 창업 붐을 가져왔던 사업 모델은 당시 미국에서 한참 뜨던 소셜커머스, 그루폰과 리빙소셜이었다. 당시 25세였던 신현성 대표가 대학 친구들과 티몬을 창업했고, 같은 해 김범석 대표가 쿠팡을 창업했다. 창업팀의 학벌과 집안 배경이 워낙 내로라하다 보니 창업 단계부터 투자금이 들어왔다. 이들의 성공에 자극받은 소셜커머스 업체의 숫자가 한때 200여 개에 달했다. 8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모두 사라지고 오픈마켓으로 전환된 쿠팡, 티몬, 위메프의 3강만 남았다.

창업 결정에서 시기, 아이디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훌륭한 공동 창업자들이 존재해야 창업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안 돼도 최소한 두 명은 있어야 하며, CTO는 필수다. 시제품부터 외주 제작을 맡긴다거나 창업한 뒤 CTO를 뽑겠다는 생각은 비현실적이며 그 회사의 성공 가능성을 0에 수렴한다. 방금 만들어진 직원 두세 명짜리 회사에 직원으로 취업할 CTO도 없고, 창업 동지 두 명도 못 구하는 CEO가 수십 명, 수백 명 회사를 운영할 역량이 있을 리도 없다. 창업의 진짜 첫 단계는 시간을 두고 공을 들여가며 CTO를 구하는 것이다.

흔히 스타트업이 성공할 확률은 10%도 안 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망할 확률이 90%라는 뜻은 아니다. 다들 세상을 바꿔보고 싶다며 시작하지만 시제품도 제대로 못 만들어보고 접는 친구들이 태반이다. 서비스를 출시했으나 생각만큼 시장의 반응이 없을 때 흐지부지 팀이 무너진다. 이때 공동 창업자와의 팀워크만 좋다면 아이템을 바꿔서 살아나기도 한다. 출시한 서비스에 시장이 반응하면 자연스럽게 투자자들이 붙는다. 한국에서도 매년 1000개가 넘는 기업이 최소 10억∼20억 원의 투자를 받는다. 가장 어려운 고비를 넘긴 것이다. 이때부터는 비슷한 기업끼리 합병해 몸을 불리기도 하고, 정 안 되면 중소기업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창업자란 죽지 않고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 기회가 온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필자소개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 [email protected]
이기대 이사는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 버펄로 캠퍼스에서 컴퓨터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피치트리컨설팅, 드림서치 대표를 지냈고, IGAWorks에서 COO와 HR 담당 부사장으로 근무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네이버 등 인터넷 선도기업들이 함께 만든 민관협력네트워크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서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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